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처럼 바쁜 기간이 되면 특히 더 그렇다. 할 일은 쌓여 있고, 그중 하나가 손에서 빠져나가면 어김없이 그 말이 따라온다.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시간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꽤 자연스럽게 별 생각없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조금 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툭, 내뱉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말들의 성질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나? 돌이켜보면 진짜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상황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뭔가를 포기하거나 놓아버린 건 맞는데 그게 꼭 어쩔 수 없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어떤 때에는 뭐라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어쩔 수 없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지키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책을 앞세우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려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의 형태를 띄고 있는것 같다.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을 때 혹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내 쪽이 아닌 상황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더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면 내 잘못이 조금 희석되는 느낌이 든다. 책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에 중독되어서 자꾸 그 말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방어 자체가 나쁜 거라고 할 순 없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이 존재하기도 하고, 그럴 때 자신을 탓하는 것은 오히려 더 해롭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대로 된 상황파악 없이 이루어지는 방어가 반복되면 언젠가부터 그것은 방어가 아니라 회피에 가까운 무언가로 변해간다.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일과 그냥 어쩔 수 없다고 말해버린 일이 뒤섞이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어느 쪽이 뭐였는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 번은 그 말을 제대로 뜯어보고 싶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따지고 보면 굉장히 무거운 말이다.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는 것. 어떤 방법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진짜로 그런 상황이라면 그건 결코 가볍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무게를 잘 모른 채로 너무 많은 순간에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무기력함을 표현해야 할 자리에 쓰는 말을, 그냥 귀찮거나 두렵거나 불편한 상황에서도 똑같이 가져다 쓴 것이다.
사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핑계이기 이전에, 내가 얼마나 두려움을 품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말인지도 모른다. 실패할까 봐, 부족해 보일까 봐, 아니면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결과를 마주하는 게 무서워서. 그 두려움을 직접 인정하기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뒤에 살짝 밀어 넣는 것이 더 쉬우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해서 포기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처럼 느껴지니까. 커가면서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 더욱 그렇다. 보고 느끼는 게 많아지는 만큼 내 부족함이 더욱 두려워진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함부로 어떻게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에도 일단 뛰어드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머뭇거림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물론 그들에게도 두려움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한 치의 주저함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움직이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든 어쩌고 있는 그 모습이 동경스러운 이유는 단순히 대단해 보여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핑계로 삼는다는 걸 깨닫고 나니, 나도 그만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는 대신, 그 말이 나오려는 순간 잠깐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두렵고 불편해서 어쩔 수 없고 싶은 것인지 그 차이를 먼저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그 구분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정직하게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고 싶지 않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말이 가진 무게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있게 만들면 된다. 모든 건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되새겨야 한다. 어쩔 수 없는지 있는지 그 판단까지도 포함해서.
더 이상 상황 탓을 할 수 없다는 건 결과가 어떻든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는 뜻이기에, 조금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내가 어쩌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을 가지고도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연습해야 할 일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