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랑 다르면 그걸 열등하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거든"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거침없이 살아가는 재희와, 그런 재희에게 동성애자임을 들킨 흥수가 서로를 아껴가며 자신들을 욕하는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수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숨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드러내는 순간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아서, 세상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두려움을 혼자 안고 살아왔을 흥수를 생각하면, 재희에게 들킨 날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 왜 "내 약점이라도 잡은 것 같냐"였는지 이해가 된다. 그건 공격이 아니라, 먼저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였을 것이다. 재희는 그 말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돼?" 짧은 한마디였지만, 흥수가 스스로에게 한 번도 해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괜히 눈이 뜨거워졌다. 누군가 나의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보고도 "그게 왜 약점이야"라고 말해준다면,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알기 때문이다.
재희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좋아하던 구두와 옷을 포기했던 사람. 겉으로는 거침없어 보이지만, 사실 재희도 세상의 시선 앞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훗날 흥수가 재희에게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장면이 울림이 큰 이유는, 처음에 재희가 흥수에게 건넨 말이 결국 재희 자신에게도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스스로는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 이 둘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 둘을 그저 헤픈 여자와 게이로만 볼 뿐이다.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얼마나 깊은 우정을 쌓아가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클럽을 밥 먹듯 다니니까, 그런 애들은 뻔하니까, 세상이 정해둔 '일반적인 범주'에 들지 않으니까.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불필요한 조언을 얹고, 따갑게 시선을 꽂는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분하기도 했고,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보이는 것 하나로 싸잡혀 버려지는 게 너무 억울해서.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둘은 서로가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가지고 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랑을 원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피하는 사람. 그 간극은 때로 둘 사이를 갈라놓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둘이 격하게 부딪히며 싸우는 장면이 불편하지 않았던 건, 그 싸움이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아프게 찌를 수 있는 사이. 하지만 욕하고 토로하면서도 결국 서로의 가장 약한 모습까지 꽉 안아주는 그 과정이, 이 둘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나는 그 장면에서 알았다.
우리가 이상해? 아니, 전혀!
흥수의 첫 커밍아웃은 재희를 구하러 달려간 경찰서에서 이루어졌다. 가장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순간에도 재희는 흔들리지 않고 곁에서 소리쳐준다. 이상하지 않다고. 커밍아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 장면이 왜 그렇게 뭉클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흥수에게 그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재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재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그 결혼식에서 흥수는 축가로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을 부르며 춤을 춘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신나는 노래와 반짝거리는 결혼식 장면인데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극장을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노래에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면서'라는 가사가 나온다. 흥수는 그 가사에 맞춰 수많은 동창과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며, 자신이 가장 오래 숨겨왔던 부분을 스스로 꺼내 보이는 중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축가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라는 선언. 오랫동안 자신을 숨겨왔던 흥수가 가장 환한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결국 흥수와 재희는 자신들을 욕하고 단정 짓던 세상을 기꺼이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은 여전히 이 둘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둘은 여전히 서로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세상의 시선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세상이 몇 번이고 힘들게 하더라도 함께 살아갈 것이고, 그때마다 서로를, 또 세상을 끌어안을 것이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걸 꺼려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나를 울린 이들의 이야기처럼, 세상에는 사랑을 넘어선 우정이 존재한다. 관계의 형태와 상관없이, 그저 내가 나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휘청거리면서도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의 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길, 혹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길. 내가 나인 채로 충분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