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사람]

계획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글 입력 2023.06.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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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이 되면 대학생들은 종강을 하고, 초·중·고등학생들은 조금 더 지나 방학을 할 것이다. 직장인들을 회사 운영 체계에 맞춰 휴가를 가기도 하고, 슬프지만 그것조차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도 짧은 방학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종강을 하고 방학을 맞았다. 나는 방학을 맞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방학 계획 세우기’이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지킨 적은 거의 없지만 일단은 그렇다. 방학 계획은 뭐랄까. 지키지 않아도 세우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한 기분이 든다. 자기합리화와 자기만족 그 어딘가에 마음이 자리를 잡아 버리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학만큼은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지키기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사회로 나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현실감을 이제야 느끼나 보다. 이번 방학에 내가 하고자 한 일은 크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 하나를 배우고, 하다 말기를 반복한 관심 분야 공부를 하고, 더 나이 먹기 전에 운동을 시작하고, 자격증을 따고….

 

나에게는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도구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습성이 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초보 중에도 초보인 나는 도구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때문에 종강 전부터 악기를 구매했고, 공부할 책을 샀고, 편안한 운동화를 새로 사기도 했다. 읽을 책 목록도 짰다. 그리고 종강 이후 며칠이 지나서까지 책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제대로 손도 대지 않았다. 물론 종강을 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또 다시 개강 앞에 있을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믿었다. 무작정 A4용지 하나를 꺼내다 해야 할 일 목록을 마구 적었다. 그리고 요일 별로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에 해야 할 일이 밥 먹는 거나 잠 자기 같은 인간적인 일을 빼고 다섯 가지는 족히 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그것을 시간이 적힌 원에 담았다. 8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악기 연습을 하고, 자격증 공부를 했다가……. 원 안에 빼곡하게 넣고 나니 드는 생각을 딱 하나였다.


아, 하기 싫다.


전에 누군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하게 하는 것이다. 매우 맞는 말이면서도 조금은 모순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꾸준히 한다는 것은 매일은 아니더라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습관으로 자리잡으려면 매일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문득 계획이라는 것은 지키게 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인데, 세우기 전에는 그나마 들지 않았던 ‘하기 싫다’는 마음을 일으켜도 되는 것인지 싶었다.


원래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야 편한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언제까지 하고, 어느 정도의 비용을 쓰고…… 등을 정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왜 장기적으로 지킬 목표만큼은 그게 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만 할 때는 조금만 마음 먹으면 바로 해 버릴 수 있는 사람. 계획을 세우면 눈에 들어오는 쌓인 일들이 어쩐지 반감이 드는 사람. 그런데 막상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사람. 그리고 우리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하고 싶은 일도, 하려는 일도 많다는 것.


그래서 계획과 무계획의 그 언저리를 마구 외줄타기를 하게 된다. 계획을 세워두고 안 지키는 식으로 말이다. 지키지 않으면 세운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먄은, 그것은 단지 할 일을 적어 둔 목록 혹은 계획을 세웠다는 만족감의 수단쯤 된다. 계획을 세우고 착착 지키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하겠다고 생각하면 척척 해나가는 사람들도.

 

계획이라는 것을 나에게서 진정한 가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에 계획을 세우면서 생각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시간마다 할 일을 짜지 않고, 할 일들만 정리하는 것이다. 체크리스트처럼 말이다. 월요일에 끝내지 못한 일은 늦어도 화요일에는 끝내고, 그렇지 않으면 진짜 하기 싫은 일인가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기도 할 예정이다. 이번 방학의 목표는 많이 이루는 것에 중심을 두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계획을 지키고, 어떤 계획을 안 지킬까. 그리고 어떻게 계획을 세울까. 기회가 된다면 이 계획과 무계획이라는 것에 유연하고 능동적인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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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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