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페에 가면 재밌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한 권의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 옆에 놓인 커피 한잔이 눈에 들어왔다. 각각의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 무리가 모습들을 여러 각도별로 사진을 찍었다. 책 제목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한 손으로 들거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데 옆에 책이 주인공이 되게 초점을 맞춰 휴대폰 속에 담았다.
분명 ‘독서’의 장면이지만 낯설다. 조용히 텍스트에 몰입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처럼 느껴졌다.
이제 책은 읽는 대상이 아니라, 보이는 대상이 되었다.
![[크기변환]도서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16130652_cwqkavqb.jpg)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는 등장한 지 꽤 됐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고 취향이 되고, 매력의 요소로 소비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북 리더기 액세서리부터 책꾸까지……. 이왕이면 책도 예쁘게 보자는 의미로 북 커버, 향수, 각양각색의 책갈피 등 다채롭게 책을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등장했다.
재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텍스트 힙’ 열풍은 물론 책을 통해 색다른 경험까지 제공한다는 취지로 교보문고에서는 굿즈도 나왔었다. 독서가 소유를 넘어 소비하는 건 맞는데 지금은 결이 달라졌다. 독서는 대체로 혼자 하는 조용한 행위였고, 그 자체로 드러내기보다는 내면에 쌓아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졌다.
책이 온전히 책 자체로 남는 걸 넘어섰다. 카페 한가운데 놓이고, 사진 속 오브제가 된 지는 오래다. 결국 휴대폰 사진 속에 찍힌 책은 SNS 너머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인상 깊었던 문장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나’를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독서문화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서점 번 따 문화가 확산되며 이용자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교보문고에서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인식하기라도 하듯 ‘독서 공간 안내문’을 비치했다. 서점이 책을 고르고 읽는 곳이 아니라 헌팅 공간이 돼버렸다. 조용하고 힐링해야 할 공간의 이미지를 훼손 시킨 셈이다.
요즘 무슨 책 좋아하세요? 어떤 장르 즐겨 읽어요?
책의 취향을 묻는 건 단순 호기심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싶다는 신호가 된다.
책은 상대에게 대화의 소재가 되면서 동시에 그 사람의 깊이와 지적 이미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읽고 있는지,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지.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조용한 선언이 된다. 혹은 지금 읽는 책을 왜 읽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내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설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정말 읽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읽어 보이기를 선택하고 있는 걸까.
텍스트힙이라는 이름 아래, 독서는 점점 내면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 변화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원래부터 타인에게 보이고, 선택받고 싶어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옷과 외모가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텍스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표현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 욕망의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독서는 더 이상 고요한 행위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읽는 사람과 읽어 보이는 사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그 둘 중 무엇이 옳은지 가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시간 속에서 정말로 내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누구를 의식하고 있는지. 읽는 사람보다, 읽어 보이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지, 조용히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