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서관을 좋아하세요? 上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7.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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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다양한 거주형태와 동네를 누비며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내 성향에 딱 맞는 동네와 집값, 집 컨디션 등을 생각하면서 서울 여러 곳을 종횡무진 하며 지낸지도 몇 년이 흘렀다. 계속되는 이사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낯선 것에 활기를 느끼는 편이라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도 금방 적응하고 잘 지낸다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동네에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지도 앱을 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래 네 장소를 찾는 것이다.

 

1. 초록색 산책길

2. 도서관

3. 요가원

4. 커피가 맛있고 선곡 센스가 돋보이는 카페

 

앞으로 2년간 나의 동네 힐링을 담당할 이 네 장소를 찾아 발 도장을 찍어두면 즐거운 새 집 생활이 시작된다. 여러 곳을 탐방해야 하는 1,3,4 번에 비해 2번 도서관은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동네에는 도보로 1시간 혹은 자전거로 1시간 이내 거리라면 충분히 애용할 가치가 있는 도서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를 할 때와 비슷하게 동네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도서관에 들러 대출증을 만드는 행동은 ‘정말 이 동네 주민이 됐다!’라는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던 중 문득 언제부터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억을 거슬러 갈수록 나의 독서 일대기가 펼쳐지는 듯해 웃음이 났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서점보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도서관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와 도서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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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어릴 적 꿈은 서점 주인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책이 좋아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던 엄마의 딸답게 나도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로 성장하게 됐다. 줄글보다는 만화에 더 끌렸던 어린 나는 만화책도 책이니 많이 읽으라던 부모님의 밑에서 다양한 만화책을 섭렵하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같은 그 시절 화려한 그림체와 끝도 없는 시리즈물로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책들에 나 또한 한동안 빠져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만 골라 읽던 나를 줄글의 세계로 이끌어준 하나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영화관이라는 곳을 가서 보게 된 해리 포터는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렇게 멋진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던 나는 (이후 해리 포터는 내 전공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원인 제공을 했다) 한껏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집으로 가는 내내 엄마에게 조잘거렸다. 두 눈을 빛내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딸을 본 엄마는 사실 해리 포터는 책이 훨씬 더 재미있다며 만화책이 아니라서 글이 많은데 읽어 보고 싶니?라고 물었고 이미 해리 포터에 매료되었던 어린 나는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다.

 

엄마가 어디선가 가져온 낡은 해리포터 책은 지금까지 서점에서 봤던 빳빳한 새 책과는 달라 조금 찝찝했지만 책을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간혹 작은 얼룩이 튀어 있다거나 누군가 적어둔 낙서가 종이 모퉁이에서 발견돼 시선을 끌었지만 영화보다 책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엄마의 말을 증명하듯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만화책보다 재미있는 줄글 책이라니. 이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느끼던 어린이였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냐는 딸의 질문에 엄마는 이번에는 지은이가 직접 빌려볼래?라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엔 아주 큰 건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용한 입구를 지나 들어간 공간에는 내 키를 훌쩍 넘긴 높이의 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람과 동시에 여기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재밌겠다는 어린이다운 발상을 했지만 벽에 붙어 있던 ‘절 대 정 숙’ 경고문은 나를 아쉽게 만들었다.

 

책이 가장 많은 곳은 서점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더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도서관은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주기적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해리 포터를 기점으로 줄글의 매력에 빠진 나는 로알드 달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책들을 골라 읽었고 나는 1층, 엄마는 2층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며 어떤 날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어린이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보다 잠들기도 했다.

 

*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와 도서관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저 멀리 있는 도서관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되었고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 있는 도서관은 이후 나의 독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지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억은 오랜 잔상으로 남기 마련이다. 나에게 있어 첫 도서관이었던 이 공간은 부모님과의 추억, 여전히 사랑하는 해리 포터와 로알드 달, 세월이 깃든 책 냄새, 도서관 특유의 잔잔한 빛과 고요한 정적, 가끔씩 들리던 사서 선생님의 책 넘기는 소리들로 여전히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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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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