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마더] 포스터(최종)0227.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16012657_ruumuqy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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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빅 마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미국을 뒤흔든 엡스틴 파일이 공개되었을 때 세상은 잠시 술렁였다. 권력자들의 성착취 스캔들, 정관계 유명 인사들과의 결탁. 그러나 그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음 뉴스로 넘어갔다. 서울시극단의 연극 <빅 마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딥페이크 시대의 저널리즘
무대는 대선을 앞둔 미국이다.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이 공개되며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뉴욕 탐사의 기자들은 영상의 진위를 쫓기 시작하고, 신입 기자 알렉스 쿡이 곧 그것이 정교하게 설계된 딥페이크임을 발견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진실을 밝혀냈음에도 민심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과잉 생산한 의견과 해석들로 여론이 굳어버린 탓이다. 진실보다 먼저 도착한 거짓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다. 그의 공약은 선명하고 매혹적이다.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모든 정책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결정하겠다는 것. 시민의 검색 기록과 데이터가 곧 민의가 되는 세상. 평등하고 투명한 통치의 약속이다.
뉴욕탐사 편집국장 오웬 그린은 멈추지 않고 묻는다.
"그 알고리즘은 누가 만들죠? 어떤 기준으로요? 세금은 내기 싫고 복지는 받고 싶다면, 알고리즘은 어떻게 판단합니까?"
후보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슬쩍 시선을 돌린다. 명쾌한 답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진실을 알려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기자들이 끝내 밝혀낸 사실은 더 크고 어두운 것이었다. 이 모든 혼란의 배후에는 알고리즘을 통해 전 국민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거대 권력인 정부가 있었다. 이를 위해 마케팅 회사와 결틱해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가짜뉴스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스캔들도, 딥페이크도, 새 후보의 등장도 모두 그 시스템을 위한 정교한 설계였다.
그리고 뉴욕 탐사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가 막히자, 알렉스 쿡 역의 이강욱이 울분의 독백을 쏟아낸다. 정부의 지시를 받아 진실 보도를 덮으려는 신문사 회장이자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쿡은 끝까지 이야기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모든 의안에 모든 의견을 내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대출 갚느라, 상사 비위 맞추느라, 애 키우느라 안그래도 바빠요. 국민들이 싫어하는 건 정치인, 정부와 결탁해서 속이는 언론사예요. 바로 이런 걸 싫어하는 거라고요. 사람들이 이래서 기자들을 싫어하는 거예요. 이번 한 번만 기자다워지자고요.'
그 순간 공연장 전체가 숨을 죽였다. 무대 위 한 인물의 분노와 울분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번져왔다. 기자 정신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권력 앞에서도 사실을 말하는 것, 아버지 앞에서도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용기였다.
그러나 진실을 세상에 알려도 판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 굳어진 민심은 내막이 알려져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투표를 통해 전 국민의 뇌에 칩을 심겠다는 극단적인 후보, 머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를 그렸다. <빅 마더>는 그 계보를 잇되, 이름 하나를 바꾼다. 강압적인 통제가 아니라 거부감없이 유혹적인 방식으로 온화하게 품어주는 통제다. 모든 것을 보살펴준다는 명목 아래 개인의 자유를 하나씩 박탈하는 구조인 것이다. 1984에서 빅브라더를 마주했을 때도, 빅마더를 보았을 때도 한가지 강한 의문이 남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가름하는,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무대 언어로 번역된 정보의 홍수
이준우 연출은 복잡한 이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놀랍도록 선명하게 풀어낸다. 파티션으로 나뉜 사무실 공간은 뉴욕 탐사 편집국의 분주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배우들이 직접 들고 나온 노트북 캠과 실시간 영상 송출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속도감을 무대 위로 끌어온다. 사무실, 로비, 외부 공간이 유기적으로 구분되는 공간 연출은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공간의 언어로 보여준다. 빠른 장면 전환과 리듬감 있는 구성은 작품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온기
극의 서늘한 정치적 밀도 속에서 <빅 마더>는 뜻밖의 온기를 품고 있다. 줄리아 로빈슨(신윤지)은 몇 해 전 잃은 남자친구의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어온 인물이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지 않고, 피자 한 조각도 먹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늘 라이벌로만 여겼던 쿡이 찾아온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진심을 다 해 말한다. 직업적으로, 인간적으로 당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그 인정이 줄리아를 다시 살아있게 만든다. 그날 이후로 멈췄던 줄리아의 시간은 다시 흘렀다. 친구를 사귀고, 피자도 먹게 된다.
소용돌이치는 세계의 한가운데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 작품은 거대한 사회 구조를 이야기하면서도 이 소소하고 단단한 진실을 놓치지 않는다.

<빅 마더>는 수미상관의 구조로 마무리된다. 극의 처음 장면이 마무리 즈음 반복된다. 다급하게 호텔 문을 두드리는 소리, 중요한 문서를 지키지 못했다며 다투다가 문 소리에 몸이 굳어버리는 줄리아와 쿡. 그리고 나레이션이 흐른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바란다.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 개인이 성장하고 건강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이 먼저 작동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렸던 기자들이 끝내 판을 바꾸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는 결말은,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을 산산이 부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안녕한가. 그리고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는가."
아무도 맹목적으로 믿지 말 것. 대형 언론사의 기사도,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도. 진실은 없다, 사실만 있을 뿐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을 쥔 자의 기록이었다.
<빅 마더>는 그 불편한 질문을 객석에 던지고 막을 내린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달려가 이 놀라운 이야기에 혼을 빼앗기고, 극장 문을 나서는 길에 잠시 멈추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다시 바라볼 기회를 꼭 가져보길 권한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16013310_gxvhpkhm.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