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처의 큰 쇼핑몰과 그 한 층에 위치한 영화관. 팝콘을 주문하는 사람들,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무슨 행사가 예정된 날인 건지, 평소보다도 유독 사람이 많았고 다들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필자는 한 영화의 티켓을 받아들고 상영관에 들어가 앉았다. 영화의 제목은 ‘힌드의 목소리’. 상영 시간이 가까워지자 점점 상영관 안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의 기대하는 목소리, 짐을 정리하는 소리,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웅성였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고, 하나의 문구를 읽자마자 모든 관객은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용된 목소리는 2024년 1월 29일 녹음된 실제 음성입니다.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날
6살 소녀로부터 1통의 신고가 접수된다
“나한테 총을 쏘고 있어요, 제발 데리러 와 주세요”
적신월사는 구조대와 단 8분 거리에 있는 ‘힌드’를 구하기 위해
조정 절차를 이어가지만 구조 작전은 무려 5시간 동안 이어지는데...
〈힌드의 목소리〉 시놉시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적신월사는 이슬람권의 인도적 구호단체로 적십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적신월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오마르.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날아든다. 전쟁을 피해 피난하던 중 자동차 안에서 이스라엘군에게 포위되었다는 한 여성. 오마르는 그녀를 돕기 위해 그녀의 인적사항을 묻지만 미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총성이 울린다. 간절히 대답을 구해도 답은 돌아오지 않고, 오마르는 자신과 통화하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진다. 그때 그 여성의 삼촌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차에는 아직 6살 난 여자아이가 살아 있다.
오마르와 적신월사는 그때부터 가족들의 시신과 함께 차 안에 고립된 6살 ‘힌드 라잡’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매달린다. 힌드가 있는 주유소에서 불과 8분 떨어진 거리에 구조대가 있지만, 섣불리 구조대를 출동시킬 수 없다. 이스라엘군과의 조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밝았던 하늘이 껌껌해질 때도 힌드는 여전히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데리러 와 주길 애원한다. 적신월사 직원들은 힌드를 전화로 안심시켜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특징은 당시의 실제 음성과 영상을 사용했다는 점이리라. 영화에 등장하는 힌드의 목소리는 전부 2024년 1월 29일 녹음된 실제 통화 내용이다. 이에 더해 당시 힌드와 통화했던 직원들의 실제 목소리가 배우들의 표정 위로 오버랩되기도 한다. 후반부에는 스마트폰으로 상황을 기록하는 연출을 통해 당시의 적신월사 사무실 내부 영상과 참담한 직원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관객들은 매 순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입받는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시간 이어져온 갈등과 정치적 종교적 분쟁은 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적신월사의 사무실, 직원들의 표정뿐이며 들을 수 있는 것은 직원들과 힌드의 목소리뿐이다. 힌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에 따라 관객은 힌드의 구조를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적신월사 직원들의 시점을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힌드의 목소리〉를 보는 내내, 필자는 여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모든 경험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힌드 라잡의 실제 목소리와 적신월사의 당시 실제 상황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훨씬 더 큰 감정의 격돌과 참담함을 만들어냈다.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을 나온 나는 영화를 보기 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제 영화관에는 우리가 팝콘을 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구 어딘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챈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일들을 겪는 대상이 그저 픽션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나와 똑같이 살아 숨쉬는 사람, 심지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일 수 있다는 것을 목도한 내가 있었다.
안전한 나라, 안전한 도시, 안전한 극장에서 편안히 앉아 힌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굉장히 아프고도 동시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많은 영혼이 스러지고 있다. 무력하고 참담한 일이지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을까?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힌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모든 전쟁의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다른 힌드가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힌드의 목소리 위에 우리의 목소리를 보태자.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오는 4월 15일 정식으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