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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내 선택은 언제나 ‘쥬니어 네이버’였다. 주니어 네이버에는 동물농장, 게임엔젤, 게임뭉치 등 놀 거리가 한가득이었다. 동물농장에 들어가서 크라라의 훈장을 따고, 슈게임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게임뭉치에 접속해 미스터리한 공간에서 아이를 탈출시키고, 자기 전에는 자물쇠 달린 핑크색 비밀 일기장에 하루를 기록하며 마무리했다.

 

그런 내가 이제는 20대 후반의 문턱에 서 있다. 나와 놀아주었던 노트북 안의 친구들을 잊어버리고 산 기간도 있었지만, 가끔은 그들이 그리워진다. 그때 사놓은 스티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서랍을 뒤져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2010년대의 주인공들이 2025년 지금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 때 그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모두의 친구, 나는야 아바타스타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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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수희’가 주위 친구들에게 정체를 숨기고 아바타스타 ‘슈’로 변신하여 인기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줄거리의 짧은 애니메이션 콘텐츠이다. 이는 플래시 게임 시리즈인 ‘슈게임’으로도 제작되어 주니어네이버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해태제과의 IP답게 맛동산, 토마토마, 초코만들기 같은 실제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게임에 등장하며 현실감과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로 새로운 콘텐츠는 멈췄고, 이용자층이 청소년기·성인기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수요도 줄었다. 또한 2021년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가 지원을 종료하며 어도비 플래시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플래시 게임들이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게 되었고 슈게임 역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슈게임과 슈는 내 추억의 한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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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슈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해태제과는 2024년 슈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개설하였으며 이후로 텀블벅 펀딩을 통한 굿즈 판매, 포토이즘(즉석 네컷사진) 등 최신 유행 문화와의 협업, 팝업스토어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특히 아바타스타 슈의 공식 굿즈를 판매하는 텀블벅 프로젝트는 무려 1억 7천만 원 이상의 모금액과 프로젝트 달성률 3,516%를 기록하며, 현재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바타스타 슈가 화려하게 살아있음을 입증했다.

 

나에게 슈와 수희는 인터넷 속의 만화 캐릭터를 넘어, 어린 시절의 여가를 함께한 비밀 친구였다.

 

 

 

안아주고 싶은, 부루부루 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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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부루도그는 하얗고 작은 몸,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특징인 강아지 캐릭터로, 일본의 캐릭터 기업 산엑스(San-X)에서 출시되었다. 약 20여 년 전 많은 문구 상품이 판매되었으며 현재도 고전 문구를 모으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드물게 거래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부루부루도그는 나와 완전히 같은 세대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몇 년 더 먼저 태어난 언니 오빠들의 추억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부르부르도그에 대한 추억은 있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놀러 갔던 친할머니 댁.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할머니께서 배게를 꺼내 주셨고 그 배게에 항상 부르부르도그가 그려져 있었다. 이름 모를 강아지 캐릭터지만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어딘지 안쓰러운 표정, 덜덜 떠는 듯한 선에 마음이 갔다. 그 강아지의 이름이 부르부르 도그인 것은 성인이 되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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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루부루도그는 최근 텀블벅 펀딩을 통해서 새로운 문구 상품이 출시되었다. ‘보고싶었어, 옛날 그 강아지 부루부루도그!’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펀딩은 4천3백만 원 이상의 금액을 모았으며 이는 프로젝트 목표액의 870%였다. 할머니댁에서 나를 포근하게 재워주었던 부루부루도그를 기억하며, 나도 굿즈를 구매했다. 스티커, 다이어리, 메모지 등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온 부루부루도그는 여전히 껴안아 주고 싶은 귀여운 표정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엔젤 폰으로 연락했던, 수호천사 엔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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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장난감 회사 ‘미미월드’에서 출시한 장난감 시리즈인 ‘수호천사 엔젤이’는 100만 명의 인간 어린이와 친구가 되라는 임무를 받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왔다는 설정의 천사 캐릭터이다. 톡톡 엔젤폰, 비밀 다이어리, 엔젤워치 등 그 시절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귀여운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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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엔젤이가 2025년 10월 4일, ‘1004’의 날에 인스타그램과 X 등 SNS에서 컴백 예고를 띄웠다. 특히 X에서는 엔젤이의 게시글이 1.3만 회 공유되었고 조회수는 4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엔젤이와 친구였던 시절을 추억하는 이가 여전히 많음을 확인시켰다.

 

 

 

나의 마음을 록 온, 캐릭캐릭 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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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캐릭 체인지는 PEACH-PIT 작가가 2006년부터 연재한 소녀 만화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더빙을 거쳐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히마노리 아무(한국판 채아무)라는 소녀가 ‘수호 캐릭터’라는 존재를 갖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나’와 ‘지금 실재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점점 실재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성장 스토리이다. 또한 연애, 친구관계, 성적 등 초등학생들이 인생 처음으로 겪어나가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며 공감을 자아냈다.

 

캐릭캐릭 체인지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는 듯했으나 신장판 형태로 웹툰·디지털 만화 플랫폼에서 재출간되었고, 이전 팬층과 지금의 MZ 세대들이 다시 결합하면서, 스티커, 아트 카드, 배지, 의류 등 캐릭캐릭 체인지 굿즈들이 부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9월 12일부터 9월 30일까지 서울 마포구에서 팝업스토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여전히 건재한 인기를 보여주었다. 사춘기를 겪는 소녀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건네주었던 캐릭캐릭 체인지는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한 고민을 대신해주었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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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의 게임 및 캐릭터들은 90년대 후반생부터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시절 활발히 향유된 콘텐츠였다. 그들이 지금은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성장해 문화 소비의 주체가 되었다. 그들이 경제력을 갖춘 지금, 과거의 ‘나만의 세계’와 ‘비밀 친구’를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상품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이는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레트로 열풍 그 이상으로, “어른이 된 나의 향수와 정체성”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작용한다. 또한 계속해서 새로운 ip가 만들어지기에 한계가 있는 캐릭터 사업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는데, 과거의 IP 재활용은 기업의 입장에서 안정적 수익 모델이다.

 

오늘날에는 SNS와 굿즈 문화, 팬덤 재편을 통해 디지털 향수와 실물 소비가 결합되고 있다. 추억의 캐릭터들은 과거 그대로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과 플랫폼에 맞춰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그 시절의 즐거움이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어주고 있다. 이것은 세대를 잇는 가장 따뜻한 재회이고,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과 같은 순수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세계가 현재의 나와 만나며,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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