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떠나야 건강에 이롭고, 여행의 단맛이 추억에 절여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몸이 다시 아프다. 그럴 때면 다시 이어폰을 끼고 여행을 회상한다.
무거워서 화가 날 정도였던 물건들이 집 안 곳곳으로 흩어져, 어디에 소비한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어도 여행이 알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러다닌다. 달콤하고, 딱딱하고, 또 아쉽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여행을 음악으로 기억해 왔다. 청각은 사진보다도 순간을 명확하게 기억하는 힘을 가졌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음악을 다시 듣는 순간 우리는 아무 설명 없이 그 장소로 돌아간다. 음악은 종종 그렇게, 순간을 가장 정확한 형태로 각인한다.
문득 2025년의 시작을 로마에서 보냈던 일이 떠오른다. 이미 한국에서 한 해를 거의 시작하고 떠났음에도, 친구와 로마에서 다시 맞이한 1월 1일은 묘하게 새로웠다. 당시 들었던 노래는 핫샷의 ‘Better’였는데, ‘You make me better’라는 가사가, 여행 전부터 이후까지, 그 친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해었다. 내가 여행을 음악으로 기억해 온 수많은 순간 중 하나의 예시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12월 말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에는 늘 테마곡이 따른다. 다만, 이번만큼은 의도적으로 곡을 고르지 않기로 했다. 약 5천 개의 곡이 담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향하는 스카이 라이너 위에서 눈을 감고 랜덤 재생을 눌렀다. 그렇게 선정된 곡, 양문학의 ‘そのとき’이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도키와다이에 숙소를 잡고 매일 도시를 통과하며 걸었다. 신주쿠, 시부야, 긴자, 롯폰기… 그리고 바다를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를 위한 가마쿠라까지. 닥터마틴의 앞 코가 닳을 때까지 걸으며 지도를 그리듯 대로에서 골목으로, 관광지에서 생활권으로 이동했다.
そこは知らない私の海 (그곳은 알지 못하는 나의 바다)
나에게 도쿄는 이미 여러 번 와본 도시이지만, 친구는 일본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하나씩 소개하며 10일을 보냈다. 익숙한 도로와 건물들은 우리 앞에서 새로운 얼굴을 한 듯 했다. 여행은 같이 가는 사람과 시간에 따라서 같은 것들도 결을 달리한다.
돌이켜 보면 불편했던 순간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편안했다. 오랜 합을 맞춰온 친구답게 불편한 것도, 어려운 것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서 신기했다.
관광지를 중심으로 여행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스치듯 보이는 시부야 스크램블, 골목에서 보이는 도쿄 타워,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쿄의 지상철이 전부였지만, 이와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오래 남는다. 우연히 지하철 밖으로 주황빛에 잠식된 하늘을 보고, 무작정 걷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을 사진으로 담고.
시치리가하마역에서 내려 후지산이 보이는 바닷길을 걸으며, 모래사장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긴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테라스에 앉아 말없이 각자 원하는 노래를 들으며 순간을 청각으로 각인한다. 이제 나는 ‘そのとき’만 들어도 가마쿠라의 바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와 친구 모두 별생각 없이 던진 모든 말이 일주일 만 흘러도 그리운 한마디가 될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순간은 너무 빠르고 기억은 왜곡되기 쉽다. 모든 순간을 꾹꾹 눌러 담아 평생 갖고 싶어도 사실상 조각난 찰나에 트리거를 넣어주는 수밖에 없다.
その呪いが終わるように (그 저주가 끝나기를)
悲しみさえ踊るように (슬픔마저 춤추기를)
정확히 친구와의 10주년이었다. 2015년에 처음 말을 섞고, 2016년에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이다. 교복을 입고 복도를 누비며 시답잖은 그 시절 고민을 늘어놓던 둘이, 나란히 앉아 이자카야에서 생맥주를 부딪치는 것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정이 10년 동안 단단했다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1년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매정하게 굴었던 적도 있었고, 어색하게 인사하다가 울면서 사과하기도 몇 번이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싸우지 않았더라면, 정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우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랜덤으로 재생되었던 ‘そのとき’의 가사도 이와 같은 얘기를 한다. 저주는 거창한 비극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시간, 오해와 침묵이 남긴 잔여 감정일지도 모른다. 여행이 과거를 바꿔주지는 못해도, 당시의 슬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형태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말로, 웃음으로, 혹은 바다를 함께 바라보는 침묵으로.
あの雲の切れ間にもう少しで日が昇る (저 구름 사이로 곧 해가 떠오를 거야)
この海に光が差す (이 바다에 빛이 비춰질거야)
そのとき (그때)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바다에 빛이 비치는 그 순간. 그때(そのとき)는 여행지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온 뒤, 노래를 다시 들으며 문득 그 바다와 지금의 내가 겹칠 때, 아마 그때도, 여전히 여행의 감각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