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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케냐에서 보고 느낀 것들 [여행]

그리고 앞으로 더 배울 도시의 면모를 기대하며

by 박주은 에디터
2026.03.24 12:53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잔뜩 끌어안고 시작했던 한 해, 우리 학교 박물관과 만나 행복했다.

 

어쩌다 보니 동궐도 도슨트에서 창덕궁 영어 해설까지 진행했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즐겁고 보람찼다.

 

자부심과 나아갈 동력을 안겨준 박물관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고, 또 다른 즐거움이었던 서울에서의 첫 인턴 생활을 했다.

 

인턴으로 일하며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꼼꼼하고 다정한 상사를 만나 정말 많이 배웠다.

 

그러다 덜컥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정신없이 첫 인턴을 마무리하고 보니 어느새 다음 인턴이 나에게. 나이로비에서 사회생활을 배운 지 어느덧 3개월이 훌쩍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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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것


 

왜 하필이면 임시직, 인턴 생활을 아프리카에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뚜렷한 이유를 댈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유를 물을 때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조각말을 뭉쳐 대충 답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이고, 케냐가 궁금했고, 지금 일하고 있는 기관이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는지 경험하고 싶었다. 정말로, 이 생각 조각들이 내 ‘이유’의 전부다.

 

아, 이렇게 생각 없이 지를 수 있는 것도 20대의 특권 아닌가요?

 

나이로비에서 첫 번째로 배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생각보다 별생각 없이 산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감사하게도 막내 인턴의 사회생활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의 평을 조합해 보았을 때, 나는 좀 둔한 편이다. 나쁘게 보자면 사고방식이 썩 능동적이지 않은 편이고, 좋게 보자면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편인 셈이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헉, 나 섬세한 편이 아니었던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웃기지도 않는 자기 묘사다. 주변에 예민한 친구들을 그렇게 많이 두고도 내가 섬세한 편이라고 생각했다니.

 

뭐, 나도 나름대로 눈치를 많이 보긴 한다. 그러나 주변의 얘길 들어보면 남들이 보는 눈치의 새 발의 피 정도 보는 것 같다. 이런, 대체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여기서 더 ‘눈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남들을 배려하고는 싶지만 피곤해지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동료란 무엇일지, 요새 골똘히 고민하고 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역시 일이라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둔한 눈치를 가지고 조그마한 사무소의 막내로 살아가려니 곤란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턴은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았을 텐데 심지어 정신머리도 없는 인턴이라니. 바로 잘리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계약서 만세!

 

이 기관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기관인지 감을 잡는 것에 한 달, 기본적인 업무를 배우는 것에 한 달, 관심 있는 사업을 공부하는 것에 한 달, 사무소 내 업무 체계를 파악하는 데 한 달. 말이 좋아서 한 달씩이지, 이걸 석 달 동안 저글링 하듯 굴렸다. 사실 그러고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이건 왜 누구에게 보고하면 안 되는지, 이 건은 누가 가장 잘 알고 있는지, 매월 진행하는 주기적인 업무에는 무엇이 있고 또 돌발로 발생하는 업무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이럴 수가, 여기는 지난번 일했던 기관보다 인턴이 따라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기관이었다! 매뉴얼을 만들며 일하는 것과 매뉴얼을 따르며 일하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 컸고, 아직도 배울 게 산더미라 조금 아득하다. 언젠가는 능숙하게 일할 수 있겠지?

 

 

 

느끼고 있는 것


 

내가 소수 인종인 나라에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나 ‘극소수’에 가까웠던 흑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도시에서 매일 낯섦을 느낀다. 좋은 낯섦과 나쁜 낯섦이 공존하는, 두근두근한 삶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방인’의 감각이다. 어딜 가도 나를 신기한 외국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 툭 튀는 외양 탓에 가끔 시비에 걸리거나 바가지를 쓰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현지인에게는 향하지 않는 쾌활한 인사를 받기도 한다. 적대와 환대 속에서 줄타기하는 처지를, 사회와 묘하게 유리된 나를 볼 때마다 어딘가 유쾌한 기분이다.

 

한동안은 꽤 외로웠고, 여전히 친구들이 보고 싶고, 지하철로 돌아다니던 미술관과 박물관이 그립다. 그래도 나는 나이로비가 참 좋다. 우리 집 창문 밖의 울창한 나무들을 볼 때면 복잡한 생각 따위는 차 한잔에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둘 수 있다. 베란다에 내어둔 망고를 훔쳐 간 원숭이를 쫓아내다 보면 허허실실 웃음이 나오고, 되는 대로 달콤한 브라우니를 구워대다 보면 성공 여부에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생활이 마음에 쏙 들게 된다.

 

깊이 씁쓸한 것은 ‘선진국 시민’의 감각이다. 내가 지내는 곳은 기관의 지원을 받아 구한 집으로, 동양인이 지내기 좋고 안전한 지역 안에 있다. 5일을 꽉 채워 일하다 보면 주말엔 쉬느라 집 밖도 잘 나가지 않으니, 내 행동반경은 퍽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촌’에서 지내다가 나이로비의 다른 구석을 들여다보게 되면 바싹 탄 오트밀 쿠키를 씹은 기분이 든다.

 

우기가 시작된 요즈음 나이로비의 홍수는 사상자 81명을 기록했다.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웅덩이가 가득한 길거리가 보인다. 동료가 다니던 정육점이 물에 잠기고, 강가 근처의 슬럼가 아이들이 집을 잃었고, 지하 주차장들이 잠겨 차가 침수됐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이로비 홍수로 뉴스가 가득 차도 멀쩡한 우리 동네에서 느껴지는 재난의 빈부격차는 정신이 확 차려지도록 쓴맛이다.

 

 

 

앞으로는 무엇이?


 

12월 초에 도착한 나이로비. 우당탕 지내다 보내 100일 기념일은 진작 지나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이로비에 있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조금 더 있어보고 싶다.

 

아직 이 도시에 관해 모르는 게 정말 많은걸.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적어내고 싶다.

 

부디 그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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