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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극단 적 / ©sol__Kim

 

 

'내가 살던 그 집엔'은 2025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극으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조명받지 못한 여성들, 데스데모나와 아밀리아의 관점에서 풀어낸 극단 적의 작품입니다.

 

작품 소개

화교로 자라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마마', 가족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도망쳤지만 여전히 부양의 짐에 시달리는 '엄마', 결혼이주를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꾸엔'. 마마와 엄마의 딸인 '나'의 기억이 소환되며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도망치려 했고 결국 도망가버린, 그래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거짓말


 

내가 살던 그 집엔 - 제공 극단 적, ©sol__Kim (12).jpg

제공 극단 적 / ©sol__Kim

 

 

극이 시작되면 김추자의 '거짓말이야'와 함께 신나는 고고풍 리듬이 흘러나옵니다. 숨 막히는 정적을 깬 경쾌한 '거짓말'은 극의 전체를 아우르는 메타포로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장면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딸인 '나'의 목소리로 시작되어 세 개의 장으로 나뉩니다.

 

1부: '엄마'가 딸인 '나'에게 들려주는 '마마'의 이야기

2부: '나'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엄마'와 '마마'의 이야기

3부: 사건이 벌어진 집에 살고 있는 '꾸엔'으로부터 듣는 이야기


같은 사건이 다른 관점으로 서술됨으로써 극의 전개 방식은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 기억들은 서로 어긋나거나 배반되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한 곳으로 수렴됩니다. 혹은 이야기하는 주체가 달라짐에 따라 동일 사건 속 인물의 의상이 달라지기도 하는 어긋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기억의 교류 중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관객의 판단에 달려 있으나, 각자 다른 서술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 가부장적 시스템과 여성의 배제,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연대해 온 여성 간의 정이 아니었을지 짐작해 봅니다.

 

이 작품은 거짓말입니다. 작품 속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극중 이들이 내뱉은 모든 대사는 진실입니다. 차별과 혐오 속에서 흩어졌던 말들 중 우리는 어떤 진실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도망,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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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극단 적 / ©sol__Kim

 

 

1970년대 후반과 지금을 배경으로 그 시대와 사회에 속하지 못하거나 밀려난 작중 네 명의 여자들을 아우르는 중심 키워드는 '도망'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상황을 탈피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마마'는 외로운 결혼 생활로부터 벗어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픈 욕구를 가졌으며, '엄마'는 가족에 대한 부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주 여성 '꾸엔'은 이제 겨우 도망으로부터의 날개를 접어 쉬고 싶어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도망은 앞선 세대가 도달하지 못한 삶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누가 어디로 도망쳤는가'가 아닌, '이들이 왜 도망칠 수밖에 없었나', '누가 누구를 집 밖으로 밀어냈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작중 여성들은 모두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으나, 도달하고자 하는 곳 역시 집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집'은 단순한 건물의 격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의 기반이 되는 '소속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에 살면서도 집을 갖지 못한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집은 잔인한 폭력이 난무한 곳이기도 했으며, 혹은 부당한 책임에 반해 집의 주인이 남성에게 귀속됨으로써 소속감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탈출구와 집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닐지 추측하게 됩니다.


방황하는 이들이 진정한 집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응원합니다. 떠나고 싶지만 도달하고 싶은, 편히 쉴 수 없지만 머리를 뉘우고 싶은 그 역설적인 공간에 편안함이 드리우길, 그리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문을 열어 진정한 집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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