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지난 11월부터 2월까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던 글들이다. 처음 에디터를 지원할 당시 시범적으로 올렸던 글부터 바로 지난주에 작성했던 글까지, 총 19편이 있더라. 그중 큰 맥락을 따라 소제목 3개를 정하고 14편을 발췌해 한데 담았다.
오늘의 시선
막 개봉한 영화, 개봉할 영화,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 비교적 따끈따끈한 신작들에 대한 리뷰다. 시점은 저마다 달랐지만 반드시 극장에 방문하고 나서 썼다. 대개 해당 작품의 여운에 오래 잠겨 있거나 퍼뜩 떠오른 단상에서 출발해, 서슴없이 써 내려간 글이 많다.
평소에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오늘의 시선' 작은 유독 그렇더라. 아마 당장 고민 중인 것들이나 이전에 접한 후 계속해서 마음속에 담아둔 것들과 맞닿아서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위키드〉와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또는 〈시라트〉와 지안 톨렌티노의 『트릭 미러』를 연결 짓는 등, 재밌는 작업도 했다. 모처럼 극장과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거나, 한창 좋아하는 감독인 미야케 쇼를 톺아보기도 했고.
그래서 가장 최근의 관심사가 뭔지, 주목하고 있는 요즘 이슈가 뭔지 등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한 편의 영화와 엮인 필자의 현재 시점을 엿볼 수 있다.
[Opinion]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이름 - 위키드 [영화]
이제는 이전과 같이 〈오즈의 마법사〉가 선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과 따뜻한 환상을 마냥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다. '동쪽 마녀'의 은빛 구두도, 물과 닿아 사라진 '서쪽 마녀'의 소멸도, 도로시와 친구들의 용맹한 여정도 다르게 읽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나이, 종교로 그 누구도 차별받거나 고통받지 않는 '에메랄드 시티'는 꿈꿔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함'을 향해 나아가는 많은 발걸음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Opinion] 우리가 함께 무르익었던 시간들에게 - 극장의 시간들 [영화]
OTT 서비스의 무서운 성장과 편리함으로, '포스트 시네마' 시기의 도래와 고도로 상업화되는 멀티플렉스의 정책으로, 다양한 영화를 상영관에서 접하는 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극장이 주는 인상(印象)은 놓을 수가 없다.
품이 들어가는 것. 자의적인 선택과 타의에 따른 조건 속 한정된 시간을 쓰는 것. 어두운 공간에 우두커니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시청각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 혹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 반복하는 것. 필름부터 기계 상영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뀌더라도 여전히 살피는 것. 기다리는 것. 영화 시작 전의 설렘과 이후의 여담을. 작품을 통한 소통과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이걸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결국 예상치 못한 순간을 선사하기 때문에. 개인화되고 맞춤화된 시대에 몇 안 되는 공동의 체험 현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이 들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흘러가는 영화의 시간들을 붙잡고 싶은 게 아닐까.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오늘도 이곳에 들른 많은 사람처럼 말이다.
[Opinion] 짙푸른 봄 속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 - 미야케 쇼 따라가기 [영화]
(...)어쩌면 케이코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달려가는 수많은 우리들의 초상입니다. 감독은 인위적인 대사나 배경 음악을 덜어내고 디제시스 내의 현실적인 환경 속에서 천천히 이를 마주하길 바라죠.
이기고 지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저하며 쉬고 싶은 심정도 이해해요. 그저 수많은 소음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리듬을 지켜나갈 것. 사각거리는 펜촉 소리와 규칙적인 줄넘기 소리로 이야기를 여닫는 사이, 그렇게 정직함과 솔직함의 미덕을 알아갑니다.
[Opinion] 결속과 구속 사이 온기 찾기 -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영화]
이처럼 분명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의미는 복잡합니다. 앞선 이야기는 신화화된 측면 속 이미 어그러진 현실을 풍자하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여전히 돈독한 유대감을 조명하죠. 자주 부대끼더라도 막상 떠나면 공허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있더라도 끝까지 그 속을 다 알 수 없는 대상들.
바래질 대로 바래진 이 소재가 담백하게 매만져진 후 다시 건네지니, 극장이 밝아져도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Opinion] 부서지는 믿음 위로 펼쳐지는 좁은 길 - 시라트 [영화]
제3차 대전'이 농담처럼 언급되고, 곳곳에 배치된 군인과 삭막한 사막의 풍경이 디스토피아를 암시하는 가운데, 저마다 믿는 구석은 결국 비슷한 모양이다. 실제로 레이버들은 마약까지 흡입해 무아지경에 이르는데, 이는 종교적 체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안 톨렌티노가 『트릭 미러』에서 밝힌 적이 있다.
(...)갈 곳을 잃고 상처를 입은 영혼들이 홀린 듯이 향하는 황홀경. 세상의 종말 앞에 정처 없이 떠돌면서 택할 수 있는 오아시스는 바로 이런 순간적인 도취라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닥쳐오는 진짜 죽음 앞에서는 진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당장의 답답함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리면 또다시 고통받고 소멸하고 말 테니까.
내밀한 담화
어떤 것을 통해서든 마찬가지겠지만, '글'로 자기를 내보이는 일은 참으로 쉽지가 않다. 특히 일인칭 관점에서 그때의 신념과 단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더더욱.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흘려보내더라도 글은 그 흔적이 남으니까.
그렇지만 또 쓰고 나면 그만큼 후련하고 가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쌓여가는 존재의 무게를 아무렇지 않은 척, 턱 하고 내려놓는 기분이랄까. 막상 털어내면 별거 아니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다음 장을 넘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안전하다는 감각이 들어서인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는 그런 시간을 유독 많이 가졌다. 지금까지의 '나'를 정의하고 기록하는가 하면, 한창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마구 내뱉으며 다듬었다. 가끔은 '너'를 알아가고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편지처럼 쓰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지만 다시 한번 그때의 글들을 꺼내본다. 독백과도 같았지만 결국 누군가는 읽어주길, 그래서 감히 들통나길 기다렸던 마음 그대로.
[Project 당신] 마음 가는 대로 유영하는 중 [자기소개]
공상과 유랑
예나 지금이나 깨어서도 자면서도 자주 상상에 빠져듭니다. 아무래도 현실과 가상 사이의 자유로운 전환을 좋아하기 때문인데요. 혼자 있더라도 혼자가 아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상황과 하나의 대상에 깊게 몰입하며 타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벽 하나를 보고도 그 너머를 충분히 그려내며, 꾸준히 시도하고 머물던 n차 세계가 있었습니다. 조금씩 뇌가 굳어지는 요즘에는 이러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남의 세계를 탐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 해석, 관점,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각종 이야깃거리와 작품들을 통해서 말이죠.
[Project 당신] 안온한 공간 속 미지의 마음으로 [서간문]
마치 소란스러운 세상의 바깥에서 고요하게 지켜보는 것만 같아요. 유은님의 시선이요. 그렇게 악착같이 아등바등하며 살 것 없다고, 당장 이골이 나더라도 되돌아보면 정들어 있을 거라고, 나지막이 얘기해 주는 듯합니다. 삶과 집에 대해서. 가장 가까이에서 머물고 운용하기에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시공간의 의미를 되새김질해 주는 거죠.
덕분에 잃어버렸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바로 이런 순간 때문에 글과 영화를, 문화와 예술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비록 찰나일지라도 분명히 어떤 흔적을 남기곤 하니까요.
[Project 당신] 켜켜이 쌓여가는 세월 속 유일한 내 것 [버킷리스트]
사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2024년도부터 모아두었던 쪽글들을 다시 봤다.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손바닥만 한 종이에 고양이 두 마리가 그려진 메모장인데, 그곳에 재작년부터 '새해 목표'라는 거를 적어놨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느낀 건, 상당히 현실적인 내용이라는 것.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것들과 함께 나의 성장과 건강과 관계에 대해 염려하고 다짐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이제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다독이고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싶은 마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아지는 동안 이 목록은 그렇게 변해왔다.
[ART insight] 개미와 베짱이의 마음으로 짓는 삶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제법 잘 맞는 종류의 일을 업으로 삼았어도 그렇다. 불만과 불확실함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찜찜하게 남아있다. 양심과 타협. 이 두 가지가 팽팽하게 대치하기 때문이다. 경제력과 윤리적인 선택. 만만치 않은 이 조합도 그렇고.
아직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할 수도, 그럴 위치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싶다. 이것이 언젠가 김세희 작가님이 정의했던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 인지 노동자)의 삶인 걸까. '영혼의 노동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는 계급'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의 딜레마 같은.
안에서 밖으로
어떤 질문들은 몇 년이 지나도 계속해서 심연 속에 머무른다. 아무리 궁리해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영원히 미결의 상태로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운 좋게 그 물음들에 대신 답해주는 텍스트들을 만나기도 한다.
‘안에서 밖으로’는 그런 글들이 모여있다. 여성/작가로서의 방향성, 연애의 의미,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환기, 권태와 외로움을 다루는 법, 굳어있는 일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태도까지.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의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작품들을 경유하며 적었다.
비록 한 명의 결핍과 필요로 시작한 사유이지만, 이 또한 다수에게 가닿을 수 있길 바란다. 우리는 결코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Opinion] 미지의 세상 속 충만함을 찾아서 - 미아 한센-러브의 '집'들 [영화]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60대에 이르기까지 “생각과 행동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려 한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다.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기를 놓지 않는 것. 삶을 끊임없이 정리해야 하는 상황 중에도 돌봄을 잃지 않는 것. 무조건의 수용은 아니지만 변화를 배제하지 않고 대화에 나서려는 것. 명백한 진리의 증명 대신 끊임없이 사유하는 철학의 토대를 지켜오는 것. 이 모든 것이 나탈리의 ‘집’이다.
[Opinion] 환승 연애에 관한 짧은 고찰 [영화]
마치 폭풍의 눈 속에 있듯 고요하고 평안해 보이는 풍경이 곧 사랑의 본질 같습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망설이고 불안해서 거리를 두거나, 실망하고 어려워서 포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런 눈보라 속을 함께 뛰놀고 뒹굴 용기를 낸다면. 마음의 소리를 기꺼이 따라갈 의지가 있다면. 종착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를 수 있는 경유지가 되지 않을까요.
[Opinion] 성인(聖人)이 아닌 성인(成人)으로 살아가려면 [도서/문학]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어그러진 마음을 표출하며, 해학으로 승화하는 과정들을 애써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화를 내거나 서로 비교하며 샘을 내고, 자만하던 이를 비웃거나 고약한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건, 그 시간을 무사히 잘 넘어가려는 본능적인 대처일 수 있다.
생산적인 면과 '정의로운' 면을 갖고 있으니 이 못난 감정들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성과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쓸모를 판단하기 전에, 이 '지렁이'들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Opinion] 여전히 괜찮아지고 싶은 우리에게 -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영화]
내가 나일 수 있는 순간이 남들 앞에서 주어지고, 그것이 온전히 내 일부로 이해될 수 있음을 경험했으니,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 공동체에 열린 마음은 이렇게 우연히 싹튼다. 프랜은 그 미약한 우연을 붙잡고, 보다 강력한 자기로의 회귀를 잠시 멈춘 채 밖으로 나가, 함께 나눠 먹을 도넛을 사러 갔다.
[Opinion] 팍팍한 일상을 위로하는 보통 밖의 김주아 -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
갓 지은 햇반을 동글동글 굴려 샛노란 카스텔라 가루를 골고루 묻혀서 하나씩 쌓아 올렸을 경단 탑. 그 옆에 한 글자씩 눌러서 적었을 김민영의 성적표에 유정희는 이렇게 적었다.
(…)
한국인의 삶: F.
네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네가 나에 대해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던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더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넌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깊은 숲속 익명의 ‘나’를 알아보고 다시 불러줄 상대는 당신의 정수精髓를 기억하는 사람일 테니, 우리 서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자. 메마르지 말자. 그 마음을 잃지 말자. 사뭇 한 세기가 끝나가는 느낌이 드는 이 시점에 돌아본 김주아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한마디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
이로써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한 겨울을 정리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 한다. 또 다른 여정 후에는 과연 어떤 글들이 쌓여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