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결말을 알고도 극장을 찾은 이들로 상영관은 만석이었다. 꽉 찬 극장은 학생 때의 단체 관람 경험 이후 처음이었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왕과 사는 남자」는 시작했다. 엄흥도의 재치에 웃고, 호랑이에 놀라는 목소리로 생동감 있던 영화관은 이내 웃음바다에서 눈물바다로 변했다.
“노산군(魯山君)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10월 21일
“통인 하나가 항상 노산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기니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숙종실록』 33권, 숙종 25년 1월 2일
“…‘묘는 영월군 서쪽 5리 길 곁에 있는데 높이가 겨우 두 자쯤 되고, 여러 무덤이 곁에 총총했으나 고을 사람들이 군왕의 묘라 부르므로 비록 어린이들이라도 식별할 수 있었고,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哀傷)스럽게 여긴다.’ 하였다.”
『중종실록』 27권, 중종 11년 12월 10일
『세조실록』의 ‘예로써 장사지냈다’라는 말은 승자의 거짓된 기록으로 추측되기에,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죽음에 대하여 당시의 기록이 아닌 후대의 기록을 채택하고 있다. 이로써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를 복원한다.
수양대군, 세조의 권력 찬탈과 연관하여 계유정난 서사는 이미 여러 차례 다뤄졌다. 다만 「왕과 사는 남자」는 이전에 계유정난을 주제로 했던 매체와는 다르게, 세조를 둘러싼 거대한 권력이 아닌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과 보수주인 엄흥도에 주목한다.
끝까지 세조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자리는 한명회라는 권력자로 대체되어, 오히려 뒷배를 추상적으로 상상하게끔 한다. 무엇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홍위가 걸어가는, 어쩌면 성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야기를 전한다. 역사에 인간성을 더한 영화라 할 만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제목 하나에도 여러 의미를 내포한 작품이다. 표면적인 뜻은, 청령포라는 유배지를 지키는 엄흥도와 청령포로 유배 온 노산군 이홍위가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 동시에, 영월에서는 한 번도 ‘왕’인 적이 없었던 이홍위를 왕이라고 언급하여, 광천골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여겼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낸다.
영화에는 각기 다른 관람의 적합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볼 때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가 있고, 연인과 볼 때 감정을 고조시키는 영화가 있으며, 가족과 함께 볼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가족과 보기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권력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은 최소화한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으며 관객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웃음 포인트나 주요 스토리에서 ‘한국스러운’ 관점이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산에 사는 호랑이 이야기, 부잣집의 상징인 흰쌀밥, “밥 먹었냐”라는 말이 인사인 만큼 끼니를 중요시하는 마음, 그리고 ‘왕족의 피’나 ‘적통성’이라는 개념 등이 그렇다. 이러한 공통된 문화권의 기억은 가족이 같은 눈높이에서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CG와 연출 등에서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초반부의 아쉬움은 후반부 배우들의 명연기를 보며 모두 잊게 되었다.
조선 초기 고증을 지킨 의복과 식사, 어진 포스터의 매력 등 영화 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많기도 했다. 스트리밍 중심 소비문화 속에서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경험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기에,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었다.
꽉 찬 극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웃음을 들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은 코로나 이전의 추억을 느끼게 했다. 400만 관객을 넘어선 지금, 이 흥행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가족끼리 웃고 울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외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