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아주 단순한 삶을 꿈꾸었다.
정직하게 노동하고, 깨끗하고 소박한 끼니를 먹고, 밤이 되면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드는
바라봐야 할 것을 오래도록 똑바로 바라보고, 버려야 할 것들은 미루지 않고 버리고, 화와 미움을 가까이 두지 않는
외면과 내면을 나누지 않는, 속이지 않는, 그 무엇도 섣불리 우위에 두지 않는, 정념이 없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기를 원하는, 사랑을 주면서도 주는지 모르고 그게 사랑인지조차 의식하지 않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더는 뺄 것이 없는 삶
안윤, 『제목 없는 나날』,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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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요양 차 집을 빠져나왔다.
사실 요양이라 할 것도 없다.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 일정의 장점을 이용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택한 거니까. 운이 좋게 미국에서 들어온 친척이 머물던 호텔에 잠시 들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현재 내 옆 큰 창문 너머에는 저 멀리 넘실거리는 한강과 오가는 차들로 빽빽한 고속도로, 그리고 약간 흐린 겨울 하늘이 보인다.
언제부턴가 여행은 그런 의미가 되었다. 단순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접하는 기회가 아니라, 틈을 내서 몸을 쉬어주고 혼자만의 하루를 만끽하며 간만의 공백을 즐기는 시간.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뭔가를 끄적이면서 그렇게 흘려보내는 순간. 단기건 장기건, 사뭇 익숙한 곳이건 완전히 다른 외지이건, 그런 부류의 해독이 필요할 때마다 홀연히 떠나곤 한다.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 안의 잡음들을 해소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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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勞動). 몸을 움직여 일을 하거나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비슷한 뜻인 근로(勤勞)는 말 그대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나는 이 두 가지 범주에 모두 들어가는 평범한 사회인이다. 그런데 가끔 의구심을 갖고 저 단어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한' 노동은 얼마만큼의 노력이 따르면 되나. 한 달 동안 발생하는 개인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아, 함께 사는 피부양자의 몫도 챙겨야지. 그럼, '부지런히' 일한다는 건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 건가. 솟구치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성취욕을 충족할 수 있을 정도? 그렇게 계속 내달리다간 곧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 와중에 미래 준비, 노후 대비는 또 어떡하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염없이 밀려드는 업무들을 정신없이 쳐내다가도, 어느새 뻐근해진 목과 어깨를 불편하게 느끼면서, 의식적으로 허리와 등을 쭉쭉 펴보면서, 언제나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게 최선이야? 너무 과하지 않아? 아니면 너무 부족하지 않아?
혹은 불합리함에 쉽게 굴복한 게 아닌지,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고 있진 않은지, 억지로 소화하다 이내 뱉어버릴 수용을 강행하진 않는지 등을 자꾸만 확인한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제법 잘 맞는 종류의 일을 업으로 삼았어도 그렇다. 불만과 불확실함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찜찜하게 남아있다. 양심과 타협. 이 두 가지가 팽팽하게 대치하기 때문이다. 경제력과 윤리적인 선택. 만만치 않은 이 조합도 그렇고.
아직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할 수도, 그럴 위치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싶다. 이것이 언젠가 김세희 작가님이 정의했던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 인지 노동자)의 삶인 걸까. '영혼의 노동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는 계급'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의 딜레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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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글을 쓰고, 마감을 지키면서도 기계적인 글쓰기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사적으로 교열을 보고, 윤문을 하고, 엇비슷한 기획을 다루면서도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습관이 번아웃으로 향하지 않도록, 정의롭지 않은 일에 그냥 묵인하지 않도록. 영원한 갈증 속에 자신을 잘 다독이는 일이야말로, 앞으로 평생토록 해내야 할 '건강'을 위한 노동일지 모른다.
진정한 평안을 찾기 위해, 또 다른 해답들을 찾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선택들이 남아있을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너무 피곤해도 이상하게 밤잠을 설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들이 오락가락하며, 쉽지 않은 적응기를 보내고 있지만. 1년 전 이맘때쯤엔 취준생으로서 잠복기를, 몇 달 전까지는 관계 때문에 방황기를 거친 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또다시 무사히 살아가기 위해 오늘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잘못된 자세와 태도로 쌓여갈 피로도는 틈틈이 경계하고, 앞으로를 길게 보며 조금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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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밤, 나름의 짧은 회복기를 기념하며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다. 새해 초부터 기다리다가 드디어 만나게 된 〈만약에 우리〉였는데, 이후 끄적였던 짧은 감상평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닫고 싶다. 수시로 모순적인 이 삶을 그래도 건강하게 다져 가보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삶은 참 이상하다. 정말 풀리지 않는 숨 막히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꼭 한 번은 숨을 돌릴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지난 인연과 실패와 경험과 그 모든 눈물과 웃음의 의미를.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를 찾고자 하면 마치 퍼즐 조각처럼 또 능히 맞아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