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얇았던 실구름 같은 꿈에 닿고 싶어졌다. 요즘 하늘을 볼 일이 많이 없다. 출근길은 새벽이고 돌아오는 길은 밤이기에, 집은 햇빛이 들지 않고 창문 앞엔 또 다른 건물이 있었기에 한낮의 한 줌은 내게 귀했다. 그러다 문득 언제까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맑은 낮을 본다. 프로그램 안에서 파란색 하늘의 바탕이 될 그라데이션을 촘촘하게 만들고 아주 높고 먼 하늘을 만들기 위해 여러 구름들을 보기 좋게 배치한다. 그리고 나오는 주인공들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빛을 배치한다.
하늘에 구름을 배치하다 보면 멀고 높은 하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구름들이 필요하다. 가장 높게 배치할 크고 그림자가 조금 짙은 구름, 하늘의 중상층을 꾸며줄 뭉게구름들, 중하 부분을 만들어 줄 작고 귀여운 연구름의 무리들, 그렇게 채우다 보면 화면에 보이는 애매하게 빈 부분들이 신경이 쓰인다.
뭉게구름을 넣자니 구름의 간격이 너무 좁아 답답해 보이고, 작은 연구름을 넣기엔 있을 위치가 아니라 이리저리 돌려보며 최적의 하늘을 찾는다.
그러다 실구름을 넣어봤다.
옅고 얇은 실구름들은 어디에 놓아도 은은하게 공간을 채워주었다. 가장 높이 놓아도 빈 중간 부분이 신경 쓰일 때 툭툭 놓아도 착착 제 할 일을 하는 은은한 구름이었다. 가장 옅은 구름이자 잘 안 보이는 실구름이라 생각했는데 그 옅은 구름은 그 구름으로써 가장 필요한 역할을 했다.
하늘을 만들면서 별생각을 다 한다 싶지만, 그냥 제 구름도 역할이 있듯 나도 나만의 결을 가진 구름이 있지 않을까. 늘 나는 결국 무슨 일을 하게 될까 궁금했다. 과정보단 결과를 생각했었다. 그래서 도전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안정을 추구했다. 하고 싶었던 것은 많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흔들릴 내가 너무 약할 것 같아서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똑같은 업계를 빙빙 돌아다녔다. 계속 해오던 일이라 이게 결국 내가 가장 돋보이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뭉게구름이라 생각했던 나는 마음 한편에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또 다른 하늘을 그리고 있었다. 아주 높고 넓게 펴져 있던 내 바탕, 연해서 보이지 않았던 하얗고 깃털 같은 꿈. 뭉게구름이 없다고 하늘이 아니던가. 높고 큰 구름만 하늘이 될 수 있었던가. 나의 하늘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하늘이었다. 보통이 가장 안정감이 있다 생각해서, 늘 위치만 조금씩 다른 하늘을 만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같은 곳을 맴돌던 뭉게구름 같은 고민들은 햇살을 가렸지만 연한 실구름들은 보이지 않은 삶에서 늘 은은하게 퍼져있었다.
내 삶에 있어서 글은 나의 구원이자 삶의 바탕이었다. 늘 글을 쓰고 싶다는 옅은 마음이 아주 넓게 퍼져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국어를 가장 좋아했고, 내 생각을 잔뜩 말할 수 있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몇 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썼다. 흘러가는 시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늘 글로 남았고, 기록으로 정리됐다.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 것도 글을 쓰는 것이었고 나로서 가장 행복할 때도 글을 쓰던 날이었다. 지속되는 야근에도 피곤함을 모르듯 달빛 아래에서 생각을 써 내려가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안정을 추구하던 나의 도전을 위한 고민이었다. 이 삶이 나의 주가 될 수 있을까. 그럼 진짜 행복할 텐데, 또 빙빙 결과를 생각하다 헤매도, 결과도 다 과정 속에서 오는 것이기에 해보지도 않고 닿을 수 없는 높은 구름에 실망하는 나의 결과는 결국 후회로 정리될 것 같아서.
이제 나의 진해진 실구름들을 꺼내 나만의 하늘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