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Yang EJ (양이제)]
기술 발달로 인한 현대인의 죽음 인식의 변화를 이해했다면, 글의 원래 주제였던 ‘기호가 실체를 전복한’ 사례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책의 등장인물 '스테피'는 잭 글래드니와 전처 데이나 사이에서 난 딸입니다. 9살 소녀인 스테피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라디오, 텔레비전 등 무선 통신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즉, 체험보다 기호화를 통해 경험을 학습하는 것이 익숙한 신세대 소녀입니다. 스테피가 직접 보고 겪은 죽음의 수는 그녀가 미디어를 통해 감상한 죽음의 수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70년대 미국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정보의 홍수가 넘실대는 미래일 테니, 스테피가 직접 체험한 횟수는 영원히 그녀가 보고 들을 기호의 수를 뛰어넘지 못할 겁니다. 디지털 세대의 스테피의 현실 감각은 자신의 부모님과 같은 아날로그 세대와는 분명 다르겠지요. 스테피는 기호와 실체를 구분하는 감각이 기성세대보다 둔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을 통해 두드러집니다.
화학폐기물에 노출된 사람이 데자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내게 말해준 건 하인리히였다. 그 애가 그 말을 했을 때 스테피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부엌 라디오에서 이 내용을 들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스테피와 드니스는 라디오에서 손바닥에 땀이 나고 구토하는 증상에 관해 듣고 나서 그런 증상을 보였을 것이다. 나는 스테피가 데자뷔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버벳이 말해줬을 수도 있다.
스테피와 드니스는 지속적인 라디오 보도에 노출됐습니다. 두 딸이 부모인 잭과 버베트에 비해 라디오 보도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호란 체험보다 더 친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호와 체험을 구분하는 것에 둔감합니다. 기호는 이미 일상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삶의 일부며, 자신들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라디오 통신을 거치며 기호화된 기자의 목소리와 자신의 신체(실체)와 쉽게 연관 짓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기호에 몰입하는 능력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발달한 두 자녀는 라디오에 보고된 증상을 그대로 신체화합니다.
이어서 기호가 실체를 전복한 두 번째 사례를 봅시다. '윌리 밍크'는 죽음의 공포를 마비시키는 약물 '다일라'를 과다 복용한 약물 중독자입니다. 마취제가 발명된 이래로 현대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통증으로 인한 환자의 쇼크사 위험이 줄어들었기에 의사는 더욱 성공적으로 수술을 집도할 수 있었고, 외과 수술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받으려는 환자의 수도 늘었을 테니까요. 또한 다행감을 주는 일부 마취제는 신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심적 고통, 혼란, 불안까지 조절합니다. 신체의 통증과 감각, 감정의 통제 가능성이 전보다 높아졌으며, 현대까지 육체적·정신적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테피나 드니스처럼 날 때부터 기호와 실체를 구분하는 감각이 둔화한 경우 외에도, 이러한 감각은 약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등장인물 윌리 밍크가 그러한 예지요.
“항공기가 추락하고 있다.” 나는 이 단어들을 또렷하고 권위적으로 발음했다. 그는 샌들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손은 무릎 뒤로 깍지 낀 채 비행기 추락 시에 권장되는 자세를 취했다. 어린아이나 어릿광대처럼 관절을 이중으로 꺾을 수 있는 재주를 부리듯 몸을 내던져 이 동작을 자동적으로 취했다. 흥미로웠다. 이 약물은 복용자로 하여금 말과 말이 지칭하는 사물을 혼동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소 규격화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가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처럼 윌리 밍크는 잭의 문장과 실제 현실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잭의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문장(기호)은 곧 윌리의 실제 처지가 됩니다. 윌리가 누워있는 모텔방 욕실 바닥은 추락하는 비행기 좌석으로 변모합니다. 왜곡된 현실로부터 다시 죽음 불안을 느낀 그는 약물을 추가 복용합니다. 그럼에도 윌리는 죽음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약물을 복용하며 느끼는 죽음에 대한 통제 가능함(전능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공포를 다시 증대시킵니다. 이러한 현대 기술의 최정점, 즉 인간 지능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다가온다면, 그건 죽음이 인간의 갖은 노력 정도는 가뿐히 무시하는 신적 존재라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약을 복용함으로써 죽음의 위압감이 증대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윌리는 죽음 공포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화이트 노이즈>에서는 기호가 실체를 전복한 두 가지 사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스테피와 드니스의 신체화 현상, 나머지 하나는 윌리의 환각 증상입니다. 각각 두 사례는 선천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기호-실체의 구분 감각이 마비되어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기호의 바다에서 살아갑니다. 그 기호는 반드시 실체와 구분되지 않고, 때로는 실체를 전복하고 정복합니다. 기호의 작용 반작용은 이미 자연스러운 물리법칙으로 자리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비관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소설은 어린아이 와일더의 무지함, 순수성과 계속 서로의 곁을 지키는 잭과 버베트, 일몰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소소한 시민들의 일상 등을 서술하며 기호의 세계 이전에도 쭉 간직하고 있었던 인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