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이 표현에는 다음에 올 문장의 형량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힘이 있다. 이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어떤 삶은 기꺼이 용인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부사구 하나를 덧대었을 뿐인데 비난의 자리엔 설득력이 생기고 날 선 마음엔 용인점이 마련된다는 것이 참 흥미로운 지점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바로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소설은 읽는 것보다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메이지 시대의 끝자락, 가마쿠라의 해변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을 평생 괴롭힌 죄의식과 고독이라는 주제를 정적으로 담아냈다. 오늘 이야기해 볼 대목은 소설의 정점이자 결론인 3부, ‘선생님의 유서’다.
도쿄의 대학생인 '나'는 우연히 만난 '선생님'에게 묘한 호기심을 느낀다. 지식인임에도 변변한 직업 없이 은둔하며, 사랑과 인간에 대해 극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졸업 후 고향에서 위독한 아버지의 곁을 지키던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두꺼운 유서 한 통을 받는다. "이 글이 자네 손에 닿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혈연의 도리(아버지)를 뒤로하고 정신적 지주인 선생님에게로 향한다.
유서 속에는 선생님이 평생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기록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믿었던 숙부에게 재산을 가로채인 뒤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누구든 악인이 된다'고 믿게 된 선생님. 당시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며 하숙을 하던 그는 하숙집 딸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함께 하숙을 하던 친구인 'K'가 아가씨에 대한 연심을 자신에게 먼저 털어놓자 둘의 사이가 진전될까 위기감을 느낀 선생님은 결국 K 몰래 아가씨의 어머니를 찾아가 혼약을 허락받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K는 어느 날 밤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다. 하지만 K의 유서에는 원망 대신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한 사과와 짐정리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있을 뿐이다. 원망 대신 영원한 침묵을 택한 K의 선택은 선생님의 마음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의식을 남겼고 평생을 자기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혐오와 냉소 속에 살던 그는 '나'에게 이 모든 내용을 털어놓은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는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의인 또는 악인이 될까.
["그리고 인간의 가슴속에 설치된 복잡한 기계가 시곗바늘처럼 명료하고 거짓 없이 시계판 위의 숫자를 가리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 265p
선생님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본다면 친구를 배신하고 사랑을 가로챈 악인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를 '악인'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는 숙부에게 배신당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나, 정작 자신 또한 사랑 앞에서 친구인 K를 배신하며 자신이 혐오하던 숙부와 닮은꼴이 되고 만 인물이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환경이나 나이, 내면의 일렁임에 따라 시시각각 흔들린다. 선이 선인 줄, 악이 악인 줄 알면서도 순간의 경향성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그 미묘한 경계에서 최후의 최후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결코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시계 초침'처럼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때로는 과거의 죄책감에 붙들려 길게 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욕망 앞에서 비겁할 만큼 빠르게 맥질하는 유약한 것,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어느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평생 아내에게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고립을 자처한 것은 단순히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K가 죽음으로써 남긴 침묵 아래에서 자기자신과 인간을 향한 혐오를 온몸으로 견디며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린 것이다. "나는 메이지 정신에 순사할 작정이라네"라며 죽음을 선택한 그 뒷모습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거창한 시대정신이 아니라 더 이상 자기자신을 지탱할 힘을 잃어버린 한 인간의 유약한 최후에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인간 마음의 유약함에 대해 조금은 덜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의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떠한 잣대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근원적인 고립을 연민하는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떤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