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 <두 번째 계절>의 시사회가 열렸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한 구석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는 유명 배우. 그리고 그의 ‘진짜’ 모습을 아는 옛 연인과의 재회. 어딘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서사를 스테판 브리제 감독은 어떻게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었을까.
<두 번째 계절>은 로맨스 영화이지만, 그 속에서 궁극적으로 끝없이 선택하고 후회하며, 그 미련과 이별하는 삶에 대한 달콤씁쓸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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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배우 ‘마티유’(기욤 카네)는 파리를 떠나 먼 바닷가 마을의 휴양지를 찾는다. 벌레 한 마리 없을 것 같은 희멀건 호화 리조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스타 대접을 들으며 ‘호캉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짓지 못하는 그는 소파에 앉아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기도 한다. 마티유는 배우이지만 연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걸고 연극을 도전했으나, 초연을 한 달 남기고 이곳에 도망쳐 온 것이다. 그를 원망하는 감독의 음성메시지에 마티유는 어쩔 줄을 모른다. 자괴감을 다스리려 이것저것 해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아내는 ‘당신이 선택한 것인데 어쩌겠냐고’,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며 그야말로 ‘맞는 말’만 할 뿐이다.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남자의 호텔에 도착한 한 메시지. 그의 옛 연인 ‘알리스’(알바 로르와커)이다. 둘은 반갑고 설레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띤 채 오랜만에 만난다. 아마 프랑스어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때는 이런 시간이다. 상대방에게 애정이 가득한 상태에서 나긋나긋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는 시간. 사실 전혀 괜찮지 않은 두 사람이었지만, 지나가는 안부 인사에 “안녕 못해요”라고 할 수 없듯, 둘 다 삶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합의에 이르고는 헤어진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온도가 달라져 버린 언어로,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고 오래된 상처를 고백하기도 하며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진다.
보여주는 것과 숨기는 것
마티유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해수요법’ 레슨에 나갔다. 불어치는 파도 앞에서 제대로 호흡하는 법을 배운다. 강사는 외면과 내면 - 보여주는 모습과 숨기는 모습 – 의 결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가르침의 한 마디가 그를 단숨에 바꿔놓지는 못했으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로서는 주목할 만하다. 마티유가 연극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것 또한, 본래 모습을 바깥에 보여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연장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알리스와의 기분 좋은 첫 재회처럼, 깊은 곳의 우울과 원망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연출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마티유에겐 더 편안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사람들에 첫 번째 온도의 프랑스어로 수없는 인사를 나누었을 그이다. 영화 속 편집된 모습의 자신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편집된 태도로 대하곤 하는 그가, 그런 자신을 호텔방의 하찮은 자신보다 더 편안하게 여길 법하다. 아마도 그래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그런 불안한 내면이 관객에게 훤히 보일 것이라는 상상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한편 알리스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꿈이 있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꿈은 좌초되고, 마티유도 그녀 곁을 떠났다. 도시를 떠나 의사 남편과 결혼해 바닷가 마을로 온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꿈을 포기했다는 회한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꿈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더 고립되어간다. 그리고 어김없이, 어느 날 나타난 옛 연인을 외도하듯 만나며 그에게 꿈을 들려준다.
가장 보여주고 싶을, 가장 알아봐 줬으면 할 면을 가장 꼭꼭 숨기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삶의 숨 막힘을 대변한다. 넓디넓은 겨울 해안가의 장엄한 절벽을 따라, 내면의 문제로 속이 배배 꼬인 두 사람이 걷는다. 그들은 과연 발자국을 지우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불쌍한 사랑
알리스는 마티유에게 한 편의 동영상을 보낸다. 남편이 죽고 노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 알리스의 친구이다. 먼 길을 돌아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고백하는 그녀와의 담백한 대화, 그 영상을 마티유에게 왜 보여주었을까.
두 남녀는 서로에게 강렬히 끌리면서도, 원래 살던 인생의 궤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너무나 불쌍해한다. 운명의 엇갈림. 그 젊은 날로부터 너무 먼 길을 왔다고 느낄 때 그들은 견디기 힘든 중압감을 느끼는 듯 눈동자가 떨린다.
둘의 사랑이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지 못했던 것은, 이미 이 사랑을 너무 가엾이 여겨서일지도 모른다. 온전하지 못할 것이 선연하니, 이별해야 한다. 결국 둘은 차 안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차 안에서, 미련을 꾹 삼키며 제대로 된 이별을 말한다.

익숙한 소재여도 색깔은 독창적이었다. 미련과 후회가 가득한 누군가에 대한 짙은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바로 극장을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