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군가는 노벨상을 타고 누군가는 아파트에 산다. 이것이 불공평한 것일까?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며 집단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했다. 이따금씩 금전적인 좋은 기회를 만나 삶에 여유가 생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은 주어진 삶 속에서 희미하기만 한 미래를 점쳐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6명의 등장인물은 모두 개인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지만, 사실은 모두 가난이라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2025년의 비교적 젊은 우리가 시간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궁핍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다.
이 위태로운 불안함은 특히 1막 ‘2025년의 여자들’에서 아스라이 줄을 타는 연출로 깊이를 더했다. 잔잔한 독백이 이어지다가 급변하는 사운드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배우들이 노래를 부른다. 또 빗소리와 침울한 서사로 다시 분위기를 한껏 끌어내렸다가, 번쩍거리는 조명과 요동치는 비트로 유머러스함을 더하는 등 극과 극을 오가는 흐름이 유독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1막에서는 각 배우가 저마다의 서사를 직접 시나리오로 작성했다. 이오진 연출가는 작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배우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언급했는데, 무대와 객석 사이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기라도 하는 듯, 정말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을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결국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연대’에 관한 내용이다. 1막 2025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 맺어진 배우들이 2막 ‘2058년의 여자들’이라는 현실적인 내용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2막 안에서는 주인공 ‘유림’의 죽음으로 그녀의 재산을 다른 배우들이 상속하는 과정을 담았다. 가족이 아닌데 어떻게 상속받을 수 있을까? 극의 배경은 평범한 가정집인데, 주인공들은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동거하는 사이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언젠가 미래 사회에 제도로 등장할 수도 있는 ‘생활동반자법’, 그리고 ‘사회적가족법’처럼 재치 있고 독특한 상상으로 개인들의 관계를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엮는다.
명목적으로는 가족이지만, 가난으로 비롯된 개인의 금전적 이해관계와 욕망이 복잡하게 얼키고 설키는 모습이 2막의 하이라이트다. 서로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끊임없이 스파크 튀는 대화를 주고 받는데, 미래의 2058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설정된 ‘은희’가 남은 네 명의 배우(화정, 대진, 미영, 순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공동체라는 개념을 넌지시 언급한다. 이후 네 명의 배우들은 함께 사는 집 테이블에 모여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극은 어딘가 들려오고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듯 암전되며 끝난다.
“하나를 갖고 둘을 갖지 못하는 걸 남 탓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다 함께 살 수 있다.”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2막 中 은희
언젠가의 우리의 오래된 모습은 감히 상상해 볼 수 없다. 노인의 삶은 상상해도 쉽게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연출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처럼 정해진 틀 없이 오르내리는 연출과 상상력은, 지금 우리의 무대가 1막의 불안함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굿을 연상시키게 하는 무대디자인은 그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다. 굿이란, 노래와 춤을 통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는 의례(儀禮)를 행하는 것이다. 이 무속적인 아이디어는 배우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다른 맥락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제의’로 보내고자 한다. 더 나아가 관객들 등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 고통이 굿이라는 소재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미래에 먼저 세상을 여읜 사람들까지 그 소망을 공유하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이오진 연출가는 밝혔다.
글을 마치며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군가는 노벨상을 타고 누군가는 아파트에 산다. 이것이 불공평한 것일까?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방법으로 서로를 공감하고 연대하며 살아갈까? 여전히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 어디선가 같은 고민을 앓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음악과 춤에 기대어 2막으로 끊임없이 전달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