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이 단어들의 조합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강렬한 제목에 이 공연의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시선이 꽂혔다. 자연스럽게 공연의 정보를 찾아보게 되었고, 여섯 명의 여자 배우가 모여 삶의 분노와 불안, 가난을 자기 언어로 써 내려간 작품이라는 사실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다양한 여자들이 모여 이루어나가는 세상, 어떻게 안 볼 수 있겠는가.
연극은 혼종의 음악극 형식을 띠며 “누군가는 노벨상을 타고, 누군가는 아파트에 산다. 이것이 불공평한가?”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웅장한 비트가 공연장을 꽉 채우면서 관객인 나에게까지 결연함이 전해진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섯 명의 여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한다. 독백으로 구성된 1막에서 여자들은 자신의 서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최소한의 소품만을 두고 오직 목소리와 몸짓으로 무대를 채우지만 그마저도 숨 가쁘다.
사실 1막을 보는 동안에는 작품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자막이 없었더라면 누가 대사를 한 건지 헷갈렸던 순간도 있었고, 여섯 캐릭터를 한 번에 머릿속에 담아내느라 나 역시 바빴기 때문이다. 또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정선도 있었다.
무대 위의 여자들 또한 자기 이야기에 몰두해 있어 서로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같은 무대 위에 있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사실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바로 관객석에 앉아있는 ‘나’다. 나 역시 2025년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무대 위 여섯 여자들과 함께 존재했다. 세상엔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랬던 여자들이 2막에 들어서며 비로소 하나가 된다. 1막 ‘2025년의 여자들’에 이어 2막 ‘2058년의 여자들’에서는 ‘생활동반자법’과 ‘사회적 가족법’이 법제화된 미래이다. 한집에서 살아가는 여섯 여자가 재산 상속 문제를 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2058년. 정말 까마득한 숫자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이 흐른 미래가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다. 연출가 이오진이 그려낸 미래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이조차도 법이 막 제정된 탓에 판례가 부족하고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서로 가족이 되었지만 결국 그들도 사람인지라 돈 앞에서 흔들린다. 아무리 가까워지고, 서로 함께한 세월이 쌓여갔다지만 결국 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참 현실적이라 느꼈다.
2막은 유쾌한 요소가 많아 정말 빵빵 터지면서 봤다. 다른 관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여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만약 끝까지 속내를 감추며 거짓말만 했다면 오히려 그것대로 더 불편했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입체적인지 다시금 느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여섯 여자가 서로 쌓아온 서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돈의 주인인 ‘유림’을 중심으로, 지난 30년 동안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쌓였을지 상상하게 된다. 겉으로는 기대하지 않는 척 했던 이 마저도 “유림이가 나를 선택했어, 유림이가 나를 선택했어”라며 눈을 반짝이던 장면에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뒤에도 숨기지 못하고 솔직하게 튀어나오는 그 모습이 참 인간적이었다.
아마 이렇게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연극은 평화롭게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잠시 의를 상한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와 평화를 되찾는다.
한편으론 무대 위의 여자들이 부러웠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이로 노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보고 나의 노년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당장 1년 뒤도 가늠하기 어려운 마당에 무리해서 미래를 그리지 않기로 했다. 다만 분명한 건 언젠가는 나도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다. 그때 혼자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게, 마음 맞는 사람 한 명쯤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