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아홉 살 때, 짝꿍이 하도 괴롭혀서 일기장에 고충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그걸 읽은 담임 선생님은 짝꿍을 부르더니 갑자기 긴 나무 막대기를 꺼냈다. 그리곤 그 애의 손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나는 통쾌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심장이 쿵, 쿵, 쿵 뛰었다. 선생님은 나와 그 애를 복도로 내보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그 애는 얼얼한 손바닥만큼이나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고. 한참 뒤에, 선생님이 그 애와 나를 불렀다. 나는 오해를 풀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서늘하고 속이 뒤틀리는 감각이 혀에 눌어붙어서는 떨어지질 않았다. 중학생 땐 무리에 속하고 싶어서, 나를 괴롭힌 아이를 억지로 용서했고, 고등학생 땐 흠집 난 마음이라도 안고 살아가고 싶어, 내게 고통을 준 이를 용서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았다. 용서하면 할수록, 미안하다는 그들의 목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끝내, 상대를 용서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무게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 왜 슬픔을 놓지 못하는 걸까? 생각에 잠기면, 좋지 못한 상황에 놓였던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영화 '목소리의 형태(2017)'는 내가 그간 가벼워질 수 없었던 이유를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나 또한 용서를 구하는 방식에 서툰 사람이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남자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쇼야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과, 물건을 팔아서 받은 돈을 합쳐 어머니께 건네고 죽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자살은 해프닝에서 그쳐 버린다. 고교 1학년인 쇼야는 왕따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열두 살 때, 같은 반 여학생 '니시미야 쇼코'를 괴롭혔다. 쇼코는 청각장애인이기에 수화와 필담으로 아이들과 어울렸다. 쇼코한테 호의적이었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자 변했고, 쇼코는 교실에서 혼자가 되었다. 쇼야와 친구들은 쇼코의 보청기를 빼앗아 망가뜨렸다. 그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한 쇼코는 끝내 전학을 가고, 쇼야가 모든 일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왕따가 된다.

쇼야는 쇼코가 당했던 일을 그대로 겪으며, 비로소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게 된다. 자신도 누군가를 괴롭혔던 적이 있기에, 가해자들을 쉽게 욕하지 못하는 상황.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쇼야는 그렇게 목소리를 잃어간다. 늘 외톨이인 쇼야에게 '친구'라는 건 형식상의 단어일 뿐이다.

쇼코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싶었던 쇼야는 수화를 배운다. 5년 만에 만난 쇼코에게, 쇼야는 그녀가 잃어버렸던 필담 노트를 건넨다. 그곳에는 쇼코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던 흔적이 가득하다. 쇼코는 쇼야가 비록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이지만, 달라진 모습을 보며 가까워진다.
노트를 통해서만 소통하던 그녀였기에,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목소리(수화)'를 지닌 채 다가와준 쇼야가 반가웠을 거다. 그러나 쇼코의 엄마는 5년 만에 나타난 쇼야를 탐탁지 않아 한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그녀에게 쇼야는 그저 '같이 어울려서는 안 되는 나쁜 애' 일 뿐이다.

쇼야는 쇼코와의 만남을 계기로, 5학년 때 함께했던 아이들을 비롯해 여러 친구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 '우에노'는 쇼야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쇼코에게는 여전히 거리를 둔다. 우에노는 쇼야가 왕따가 된 것도, 그래서 함께 놀던 무리가 흩어진 것도 전부 '쇼코'의 탓이라 생각하기에 쇼코를 용서하지 못한다.
다시 우정을 되찾는가, 싶었던 쇼야는 기뻐하면서도 자신이 쇼코를 괴롭혔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만다. 그가 쇼코를 괴롭혔던 왕따 주동자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멀어진 쇼야는 쇼코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다.

불꽃 축제를 보러 간 날, 쇼코는 화려한 빛이 수놓인 밤하늘을 아래서 눈을 감는다. 그러곤 진동으로 불꽃놀이를 즐긴다. 집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운 쇼코. 쇼야는 카메라를 가져다 달라는 쇼코 동생의 부탁에, 쇼코네 집으로 가게 된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는다. 베란다 난간에 서 있던 쇼코가 몸을 던진다. 쇼야는 쇼코를 붙잡아 간신히 끌어올리곤, 자신이 대신 물속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쇼코는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보청기조차 소용없어진 현실이 싫었다. 친구들의 괴롭힘도 결국 본인이 못났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쇼야가 자신을 괴롭혔다는 소문으로 인해 친구들을 또다시 잃게 되자, 스스로를 완전히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우에노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끝없는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허덕이던 쇼코는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을 뒤로하고, 몸을 던졌지만 쇼야로부터 구해진 것이다.
쇼코는 불꽃을 눈으로 담지 않고, 진동으로 느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을 '청각 장애인', '불쌍한 애'로 단정 짓는 시선이 싫었을 거다. 보이는 것만으로 편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동'을 느끼듯, 가까이서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쇼코의 바람은 사경을 헤매던 쇼야의 꿈속에 닿는다. 간절한 마음의 주파수를 읽은 쇼야가 기적처럼 깨어난다. 친구들은 건강을 회복한 쇼야를 보러 가고, 쇼야는 마침내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쇼코는 스스로를 내버리지 않기로 다짐했고, 쇼코의 엄마는 쇼야를 용서한다.
아이들의 얼굴을 덮고 있던 거대한 'X' 표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쇼야'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수군덕거렸다. 다만, 쇼야가 변했다.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시간 끝에, 쇼야는 마침내 달라진 풍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슬픔을 견디는 게 두려워서, 여지껏 진정성 없는 용서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야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힘들어, 'X'표를 붙인 것처럼, 상처를 외면해 왔다. '용서'는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힘이 빠졌을 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억지가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성사되는 것이 '용서'였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받는 것도 이해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미안하다'는 말에 진정성이 없을 테니까. 또, 용서를 구하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용서한다'는 말도 거짓일 테니까.
이제는 슬픔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빠져 자연스레 놓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서.
사람의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생각하는 것도, 상처받는 지점도. 이해의 폭도 다 다르다. 중요한 건, 쇼코가 불꽃놀이의 진동을 느낀 것처럼, 마음의 형태가 지닌 '굴곡'까지 세세히 느끼려는 자세이다.
나는 가벼워지기 위해, 그간 나를 가두었던 프레임을 벗어던지기 위해 눈을 감아본다. 들려오는 목소리의 서툰 굴곡을 세세히 느낀다. 움푹 파이고, 뾰족하게 튀어나와 서로를 찌르던 마음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아, 이제 조금은 목소리의 형태를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