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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계 속 페르소나 - fin [도서]

하나의 페르소나만 선택했을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 나인가?

by 박차론 에디터
2025.11.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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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연출 감독이 되어 배우라는 직업을 가까이 안 적이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현실적이고 기계적인 사람일수록 성공하기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태리 같은 배우가 이런 쪽일 테고. 유아인 같은 예술적이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공감되는 배역을 맡았을 때 그 시너지는 대단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잃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실제로 저 배우들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어쨌든 그만큼 배우가 성향마다 다르게 연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내가 인상 깊게 본 배우라는 직업의 면모는 꽤나 고통에 가닿아 있는 듯 했다.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들이 배우와 매니저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총 네 명의 주인공들이 나온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배우 기옥, 기옥을 살뜰히 보살피지만 가끔은 기옥을 해치고 싶은 매니저 윤주, 영화배우로 명성을 얻었으나 빠르게 추락하여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남배우 태인, 어린 시절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가난한 환경으로 꿈을 포기하고 태인의 매니저로 일하는 상호.


이야기는 기옥이 무대에 선 장면부터 시작한다. 기옥의 단단한 목소리가 울리면서 책에 순간 몰입하게 된다. 그녀가 선 무대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밤의로의 긴 여로라는 연극 속 메리라는 역이다. 그녀는 ‘메리’라는 역을 연기하고나서야 2년 동안 잃어버린 삶을 되찾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다 같이 뒤풀이를 하러 간다. 그녀의 매니저 윤주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뒤풀이에서는 남자주인공 ‘태인’이 기옥에게 시비를 건다. 기옥은 마지못해 받아주지만 끝내 폭력적이게 구는 그를 두고 기옥은 먼저 집으로 향한다.

 

다음날 태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기옥은 더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던 태인의 고통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매니저 윤주는 그런 기옥을 살뜰히 살핀다. 새벽이고 밤이고 기옥이 부르면 달려가 슬픔에 빠진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안아주고 달래준다. 그녀가 기옥을 아끼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야릇했다. 자칫하면 서로가 키스하는 건 아닌지 맘을 졸이며 봤던 것 같다. 윤주는 기옥을 사랑했고 그런 기옥이 되고 싶었던 걸 보면. 윤주는 사실 기옥처럼 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윤주는 기옥이 잠든 틈을 타 그녀의 보석을 훔치면서도 50대인 그녀의 미모에 한참을 감탄했다.

 

한편, 상호는 태인과 같이 차를 타고 있었지만 태인은 죽고 상호는 산 탓에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상호는 어쩌면 자신이 태인에게 가진 반감이 정말로 어쩌면 자신이 죽인 건 아닌지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윤주와 상호는 매니저인 자신들의 처지에 서로 공감하며 위로한다.

 

이야기는 태인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이건 운명도 뭣도 아니다. 행운도 불행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누구를 탓할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홀로 남았다.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타오르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비명이자 환호.” 143쪽

 

작가는 태인이 교통사고가 난 차에서 자신이 타는 순간을 느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태인은 폭력적이고 불안정했지만 그 모습들이 어째선지 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울부짖는듯했다.


책은 관계 속에서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그것이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갑이었다가 또 순식간에 을이 된다.  그건 정말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부터 재력의 차이, 실력의 차이, 명성의 차이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바뀐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 되고, 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을이 되고, 더 돈이 없는 사람이 을이 되는 세상이었다.

 

우습게도 매니저 윤주와 상호는 돈도 많고 실력도 있는 기옥과 태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굉장한 반감을 느낀다. 을이 되기 쉬운 매니저와 갑이 되기 쉬운 배우라는 관계 속에서 그들을 열망하면서 또 증오한다.

 

그렇지만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매니저 윤주와 상호는 욕망에 몸부림치는 자신들의 모습을 동시에 또 반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배우 태인과 기옥은 그저 고통스러운 자신들의 현실을 낙담하고 슬퍼할 뿐이었다. 자신들이 가진 집과 차는 당연한 것이고.

 

작가는 그렇게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얽힌 관계 속에서 그리고 대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만든다. 큰따옴표 없이 전개되는 대사들이 물 흐르듯 책을 읽게 했다.


그리고 ‘배우’와 ‘연극’이라는 장치가 이야기에 깊이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에서 오는 ‘연극’이라는 속성. 연기라는 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는 거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더 진짜 같은 나를 연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무대에서는 벗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역을 맡았던 태인은 폭력적인 제임스를 연기할 때 눈을 빛냈고 메리 역을 연기한 기옥은 그제야 숨통이 틔었다. 그럼 무대 위와 아래에서 무엇이 진짜일 것인가. 태인은 죽음으로써 더 이상의 가면을 쓰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저것은 가짜고 이것은 진짜고 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곧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면들은 모두 진짜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오히려 하나의 가면에 집착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아닐까를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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