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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인간과 비인간의 비선형적 공존 - 리미널 [미술/전시]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

by 김서연 에디터
2025.11.07 18:39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세계란.

 

올해 7월까지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 - <리미널>에서, 그만의 답변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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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첫 섹션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진행된다. 리움미술관의 상징 중 하나인 블랙박스 전시실에 입장하면, 바닥을 짐작하기도 힘든 어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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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시의 오프닝 시퀀스인, 영상 작품 <리미널(liminal)>. 얼굴이 텅 빈 알몸의 여성이 어두운 공간에서 기어간다. 세계도, 뇌도, 얼굴도 없이, 공허에 둘러싸인 무한하고 평평한 표면을 따라 이동한다. 해설에 따르면 이 인간은 리미널, 즉 경계적 환경 자체를 의미한다. 인간의 형태를 가졌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즉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아닐까. 이 존재는 물리적인 환경을 감지하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 정보를 받는 빈 공간이다. 이렇게 감지된 자극을 통해 이 인간 형태는 어떠한 몸짓을 만들어내고, 이 몸짓은 다시 환경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외부 시뮬레이션을 통해 오는 실시간 신호(비인간) 따라 이 존재(경계)의 몸짓이 바뀌어 가고, 이를 인식하는 우리(인간)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비인간)까지도 재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인간과 비인간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넘나들며 상호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니까 이 경계는 일종의 통로이며, 전달자이자, 신탁의 역할을 한다.

 

최근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경계’라는 것은 구현하기가 참 까다롭다. 왜냐하면 경계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도 둘 모두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기에. 우리가 당연하게 인지하는 a와 b 그 틈 사이를 뚫고 공허를 표현하기란, 그것도 시각적인 예술로 제시하기란 정말 곤란한 것이다.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는 걸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을 제대로 표현했다. 왜 이 작품이 전시 전체의 제목이 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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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엔딩 시퀀스인 <카마타(camata)>를 보자. 사막에 놓인 해골과 로봇을 보여주는 영상 작품인데, 로봇은 해골 위에 여러 구슬이나 보석을 일렬로 놓기도 하고 해골을 들어 움직이기도 한다. 영상 촬영이나 편집은 모두 인공지능 하에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로봇의 움직임이 서문에 쓰인 대로 '신비로운 의식', 작품 해설에 인정된 대로 '장례 의식' 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상에서는 '인간'이 정말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해골은 생명이 결여된 인간, 즉 인간 이후를 의미할 것이고 로봇은 인간이 아님을 의미하니까. 또 이 작업이 진행되는 아타카마 사막 또한 인간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황폐한 공간이며 영상 송출 자체도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지고.

 

그러니까 여기에는 어떠한 인간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관람객 외에는.

 

관람객, 즉 이 작품과 관련된 유일한 인간은 이 비인간들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면서 묘한 인간성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인간의 최후를 아름답게, 편안하게 장식하고 위로해 주는 비인간이라는 서사를 부여하고, 이 모든 모습을 마치 장례 의식처럼 받아들인다. 관람객이라는 인간이 인식함으로써 이러한 의미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 과정이 바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과 상호학습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닐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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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의 공존은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든 예술 장르에서 둘이 공생하는 미래를 축복하고 또 저주해왔으니까.

 

그러나 피에르 위그는 로봇과의 미래를 단순히 상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비인간’이라는 명명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 - 인간 이후와 인간 아님 - 을 종합하고, 단 하나의 교집합도 없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비집는다.

 

수많은 사변적, 현학적 현대미술 전시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리고 엘리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전시의 세계에서, <리미널>은 익숙한 주제라도 이렇게 일관적이고 뚜렷한 색채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작품들이 오로지 관람객의 해석에만 기대는 등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형식이 곧 주제가 되어버려 직설적이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피에르 위그가 제시하는 공존은 당연하지 않다. 그가 묘사하는 비선형적 경계를 손으로 덧그려 보자. 그럼 이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은 경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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