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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안녕하세요, 다혜 님.

   

26년의 첫 글을 이렇게 편지로 담아 보냅니다.

 

저는 1월의 첫 주가 아직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이 글을 적기 시작했는데요, 서간문의 매력은 발신과 수신의 시간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당신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와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 사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기다림의 시간들이요. 다혜 님은 과연 언제 이 글을 찾게 되실까 궁금합니다.

 

*

 

제 편지가 도달하게 될 곳이 다혜 님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반가운 기분이었습니다. 다혜 님의 첫 글을 저는 이미 두 달 전에 인상깊게 보았거든요. 제목 양식도 아직 갖춰지지 않은, 정식 에디터가 되시기도 전의 글이었음에도요.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 오늘이 완벽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나는 계속해서 시린 눈을 뜨고 멀리 보기로 결심한다. 나는 본래 걱정이 많아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해 혼자 불안해하곤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도 있었기 때문에 내게 기대란 긴장으로도 치환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기대와 긴장의 한 끗 차이에서, 집 밖에 나올 적 매번 들썩이는 마음은 죄가 없었다. 오늘 하루를 망친 건 내가 운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부주의한 탓에 실수를 연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많다. 매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지 못하더라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고, 기대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도수가 맞지 않아도 남은 일회용 렌즈를 다 쓸 때까지 놀러 나갈 때마다 계속 끼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 [Opinion] 몇 회분의 저화질 [사람] 중

  

 

어제까지는 잘됐던 주법이 오늘은 조금 버겁습니다. 직전까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영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제자리걸음입니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스스로 의심하고 물음을 반복하게 합니다. 언제쯤이면 할 수 있지? 어떡하지? 실수로 잘못된 음을 낸다면, 박자를 잘못 맞춘다면.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게 만드는 것 역시 불확실성입니다. 이번에 안 됐다면 다음엔 될 것입니다. 다음에 안되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겁니다.

 

- [Project 당신] 반드시 찾아온 수확의 계절 [자기소개] 중

 

 

다혜 님의 글에는 공통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긍정이 아주 조용하게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연속인 삶의 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과거의 그림자 아래 현재를 깔리게 두지 않는 다혜 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현재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든 순간들을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그러니까 다혜 님의 현재는 참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설령 그것이 내 예상에서 벗어나 나의 완벽한 계획을 깨어 버렸더라도, 그것이 풀어나갈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특히 눈에 띄었어요. 지금 당장은 실패라고 이름 붙여버려도 그 너머를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저는 그런 마음을 보통 자기확신이라고 부릅니다.

 

다혜 님께서 나열하신 것처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흐릿한 경험들과 아직도 남아 있는 뚜렷한 만족감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인 후에는 모두 스스로를 믿는 마음의 근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실패해도 괜찮아, 늘 그래왔듯이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어떤 순간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확신이 아닐까요.

 

계속 그 근거들을 차곡차곡 모아 두시면 좋겠어요.

 

*

 

아,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려 보자면 저도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답니다.

 

그래서 다혜 님의 글들에 자주 등장하는 비문학 지문들을 주제만 읽었는데도 어떤 지문인지가 기억이 나더라고요. 예술의 대중화에 대해 언급하신 지문들 중에는 아도르노에 대한 글도 있을까요. 미메시스에 대한 단락이 어렵죠. 그리고 또 저도 일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서요. 꽤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세계를 다 담아낼 수도 없는, 짧은 몇 편의 글만 보고서도 ‘저와 공통점이 많으시네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국어 문제에서는 세 개 이상만 해당되어도 ‘다양한’이라는 단어로 선지를 출제하니까요. 다혜 님이 쓰신 글에 내용부터 예시까지 다양하게 공감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이렇게나마 전해드립니다.

 

저는 늘 편지에 시를 한 편 인용하는 습관이 있는데요, 이번 글에도 그래 볼까 합니다.

 

 

때로 당신 꿈을 꾸고 기도합니다

메마른 도시 너무도 메마른 날에

 

고비의 당신이 오래도록 안녕하기를

당신의 안녕으로 어떤 아름다움이

지상에서 끝내 지켜지기를

 

「고비의 당신」, 김선우

 

 

아름다움의 어원은 나다움이라고 하잖아요, 다혜 님이 가진 나다움의 모습은 제가 이 너머에서 알 수 없지만 ‘어떤’이라는 느슨한 관형사로 수식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고비 앞에서도 지금의 자기확신으로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지켜지는 아름다움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럼 흐릿해짐으로써 선명해지는 나날들 속에 다혜 님께서 언제나 행복하시길!

 

서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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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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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tempo
어떻게 하면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댓글 기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글을 인상깊게 읽어 주셨다니 영광입니다. 서연님, 세심하고 다정한 글 감사합니다. 다소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경험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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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 19:02:3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