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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내가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걸 아는 친구가 내게 밸런스 게임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오아시스의 전성기였던 90년대로 가기 vs 오아시스 재결합하기"

   

나는 전자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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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열차 역주행: SUPERSONIC


 

오아시스를 알게 된 뒤에는, 그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을 봤다. 여러 번 봤다. 팬들이 대관한 영화관에서도 봤고, 집에서 티브이로도 보고, 노트북 바꾼 기념으로 보고, 헤드폰 바꾼 기념으로 보고, 기분 좋아서 보고, 안 좋아서 보고… 밴드의 전기 영화인 만큼, <슈퍼소닉>의 사운드트랙은 오아시스의 노래로 꽉 차 있다. 이걸 열 번이 넘게 듣고 보니까 이제는 노래를 들으면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실은 집중하지 않고 라디오처럼 그냥 틀어 놓을 때도 많아 모든 장면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않지만, ‘The Masterplan’이 흘러나오는 엔딩 씬은 항상 집중해서 볼 타이밍이기에 이 노래를 들으면 영화의 장면처럼 밤하늘의 폭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콘서트나 다름없었다. 영화관을 빌려 이 영화를 다른 팬들과 함께 보는 것이 현재의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오아시스 콘서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덕질 열차 시리즈(1편, 2편)를 따라 읽을 만큼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알 법한 이야기인데,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바로 다음 해인 2024년의 8월 27일, 특별한 소식이 하나 전해진다. 바로 오아시스의 재결합 발표다. 다시 악동뮤지션 농담이 먹힌다는 걸 배웠다.

 

 

 

 

다른 밴드의 재결합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뻐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품던 날들이여 안녕! 이제 내 최애 밴드도 투어 다닌다. 당연히 재결합 후 첫 번째 콘서트는 영국에서 열렸고, 영국 팬은 물론 전 세계의 오아시스 팬이 몰려들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굳이 놀랍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고 매우 당연하게 티켓팅에 실패했다. 그 실패가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터였다. 공연 날짜까지 한참이 남았는데(티켓팅은 10월이었고, 공연은 다음 해 7월이었다) 저 멀리 유럽까지 날아가야 하는 공연이라, 표는 샀지만 결국 보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꼭 나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가에 표를 양도받았고, 그렇게 나는 오아시스의 재결합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콘서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표를 구한 뒤에 갈지 말지 고민하라’는 오타쿠 직업 정신에 맞춰 일단 표를 구하긴 했지만, 이 영국으로의 여정이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는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직장은 구하지 못했고, 사실 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였다. 직장을 구해도 문제인 게, 몇 개월짜리 신입일 내가 영국까지 가는 휴가를 낼 수 있을지, 도의적으로 내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지금 이 공연을 보러 가도 되나? 내 미래에 더 집중해야 하는 때이지 않나? 하지만 그 미래는 뭐지? 내 미래가 뭔지도 모르는데 이 티켓을 포기하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닐까?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당연히 저 생각들이 나쁜 생각은 아니고 충분히 필요한 생각들이지만, 나답지 않다고 느꼈다.


이 예정된 여행이 휴식이나 오락으로 느껴지는 대신 숙제처럼 다가왔다. 아니, 밀려왔다. 2025년의 상반기에는 꽤 큰 내한 콘서트가 몇 차례 있었지만 하나도 가지 않았다.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만 날리다가 금세 7월이 되었고 공연이 당장 며칠 후로 다가왔다.

 

 

 

덕질 열차 엔진 재정비: IT’S GOOD TO BE BACK


 

내가 가는 공연은 7월 4일, 카디프에서 열렸다. 처음에는 공연 당일만 24시간 영국에 머무르는 일정을 계획했는데, 경유 항공편을 사려다 말고 갑자기 직항으로 바꿨더니 공연 전후로 하루씩 시간이 생겼다. 카디프 숙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런던에서 머물며 카디프에는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다. 공연 전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자꾸 까먹었다. 그냥 서점에 가고, 미술관에 갔다가, 영화 한 편 보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공연 당일의 카디프에 도착하니 오아시스 테마 마을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형광 조끼를 입은 안내 요원을 제외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오아시스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형광 조끼 아래에도…. 원래도 공연장에 가면 굿즈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입지는 않는다. 셔틀버스에서만 해도 굿즈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 이 광경을 보니 나도 서둘러 티셔츠를 사 입어야 할 것만 같았다. 쏘지 마세요, 저도 아군입니다. 등판에 오아시스, 라이브 25, 카디프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손에는 테이크아웃 맥주를 들고, 시내를 걸어갔다. 술집에서도 오아시스 메들리가 나오고, 길거리에서도 누가 시작한 건지 모르는 오아시스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마네킹도 갤러거 형제처럼 입고 있었다.


오아시스 테마 마을은 굉장히 순화된 표현이다. 그냥 대규모 사이비 마을 같았다. 물론 나도 그 광신도 중 하나.


광신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 오아시스는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다시 존재할 예정이었다. 그래야 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공연 직전에 대판 싸우고 다시 해체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들은 슈뢰딩거의 오아시스일 뿐이었다.


THIS IS NOT A DRILL.


오아시스의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재난 경보라도 하듯 빨간색 글자가 무대에서 깜빡였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걸 이렇게 강조해야 할 만큼, 밸런스 게임에 등장할 때 타임머신으로만 가능한 선지와 어깨를 견줄 만큼, 오아시스의 재결합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언젠가 축구 경기를 같이 보는 두 형제의 모습이 목격되는 상상은 자주 했다. 정말 언젠가는, 재결합할 거라 막연히 믿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각자의 솔로 활동이 왕성한 바로 지금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재결합 발표를 한 8월 27일은 노엘 갤러거가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 이미 재결합이 확정된 상태였을 텐데 우리한테 티도 안 내고 그렇게 태연하게 솔로 공연을 하다니, 뻔뻔도 하지.


빨간색 글자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뢰딩거의 오아시스는 존재하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나는 좌석 구역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올라온 순간 우리의 좌석은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 전, 입장곡 ‘Fuckin In the Bushes’의 첫 음이 들린 순간부터 이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없었다.


보통 공연을 보러 가면 셋리스트를 확인하는데, 내가 간 공연은 재결합 이후 첫 투어의 첫 공연이었다. 아무도 셋리를 몰랐고, 첫 곡이 무엇이 될 것이냐에 관한 토론도 치열했다. 나는 내심 ‘Acquiesce’를 기대했다. 둘의 대표적 듀엣이고, ‘We need each other, we believe in one another’를 말하기 때문이다. 두 갤러거의 재회를 잘 나타내는 곡이라면 단연 ‘Acquiesce’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시작하는 건 너무, 뭐랄까, 너무 아이돌 같다고 생각했다…. 기획 의도가 뚜렷하고 계산적이라고 해야 하나.


정작 첫 곡을 들어보니 그간의 토론이 무색한 게 당연한 노래 선정이었다. 아무리 락스타라도 일단 인사는 하고 시작해야지. ‘Hello’. 제목도 좋지만 가사는 더 알맞다. ‘It’s good to be back’. 오아시스로 돌아온 그들이 스스로 ‘돌아오니까 좋다’ 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현생(혐생)에 치여 오타쿠 아닌 척했지만, 돌아오니까 좋지? 그간의 망설임과 우울함이 어리석게 느껴질 만큼, 돌아오니까 좋지?

 

 

 

 

(...) 어제는 공연을 봤는데 아직도 꿈꾸는 것 같습니다. 공연이 아니라 엄청 큰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열심히 노래 불러서 목이 아픕니다. 영국인들이랑 노래방에 간 걸지도…! 쨌든 이 편지보다 먼저 한국에 가겠습니다.

 

- 공연 다음날,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아빠에게 보낸 엽서 일부

 

  

 

덕질 열차 종점 없음: BE HERE NOW


 

잠시 잃어버렸던 내 안의 오타쿠를 영국에서 되찾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끔 내가 오아시스를 보러 영국에 다녀왔다고 하면 오아시스가 한국에서는 공연을 하지 않느냐 묻기도 하던데, 그건 아니다. 10월에 시작하는 아시아 투어의 첫 일정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영국 표를 구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표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웠다. 그래도 기적적으로 취켓팅에 성공해 표를 손에 넣었다.


영국 공연과 한국 공연 사이에는 3, 4개월 정도 간격이 있고, 그 시간에는 나름 오타쿠 자아를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인천과 부산의 락페스티벌에 다녀오고, 콘서트도 하나 가고, 내년 4월의 콘서트도 미리 티켓을 사두었다. 그러다 보니 금방 한국 공연 날이 되어, 카디프 티셔츠를 입고 고양에 갔다. 카디프 공연에서의 아쉬운 점 두 가지를 꼽자면 천장이 열린 공연장이 아니라 하늘을 즐기지 못한 것, 그리고 스탠딩 대신 좌석으로 간 것이었는데, 고양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해소되었다. 하늘이 보이는 공연장에서 군중 속에 섞여 오아시스를 두 번째로 만났다.


마지막 곡인 ‘Champagne Supernova’가 끝난 뒤에는 불꽃놀이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너무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멤버들의 퇴장을 제대로 지켜봐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영화 <슈퍼소닉>처럼 밤하늘의 폭죽 엔딩을 맞이한 것은 좋았다. 불꽃놀이를 보면서는 ‘딱 두 시간만 돌려서 다시 공연을 처음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 그 공연의 시공간에서… 영국에서 공연을 보고 왔을 때는 아직 한국 공연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는지 크게 아쉽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 공연 이후로 하염없이 다음 투어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귀에 맴도는 그 잔음(반쯤 환청)을 최대한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여운에 취해 두 시간여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노래도 듣지 않으며 가만히 버스를 타고 왔다.

 

 

 


이전에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는 설국열차를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 추운 온도, 비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의 이동. 은연중에 이때의 기억에서 덕질 열차라는 단어 조합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기찻길을 달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덕질은 그 주위의 풍경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근데 그 비행기 안에서는 반대로, 지금처럼 기찻길을 달려가는 게 덕질이고, 그 외의 인생이 풍경이라는… 그런… 심히 오타쿠적 사고를 했다.


덕질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만, 덕질이 밥 벌어먹을 힘을 만들어준다는 말은 흔히들 한다. 인생에 부가적인 것처럼 보이는 덕질이지만, 실은 제일 중요한 원동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오타쿠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학문을 좋아하여 전공하는 것도, 사람을 좋아해서 사귀는 것도 다 덕질의 형태. 기차를 움직이는 게 덕질이라면, 덕질은 정말 풍경이 아니라 엔진과 기차 그 자체가 맞는 셈.


감속의 시기가 왔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주위에서 같이 덕질을 하던 또래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1년에 한 번 페스티벌에서 인사를 나누던 친구가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며 당연히 올 줄 알았던 공연에 오지 못한다거나, 덕질 이야기만 하느라 그 외의 사생활은 전혀 몰랐던 친구의 먹고 사는 고민을 듣게 된다거나. 그들과 나의 모습에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냥 바빠서 덕질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풍경에 볼거리가 많아 덕질 열차가 느려졌다고 생각하면 또 괜찮은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제목을 지금은 ‘덕질 열차 시리즈’로 내보냈지만, 원래는 ‘오타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제목을 떠올렸다. 시리즈 1편의 첫 문장 ‘난 언제부터 취미에 노래 듣기, 또는 콘서트 가기를 포함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었을까’에서 파생된 질문이다. 하지만 1편을 쓰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답이 이 3편의 글을 통해 도출되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제목을 급조했다. 위에도 썼다시피 나는 모두가 본질적으로는 오타쿠라고 보기 때문에. 부제와 소제목을 덕질 열차 콘셉트에 끼워 맞추기가 어려워 후회하긴 했지만, 그래도 1편을 출발편으로 시작했으니 마지막 편의 부제는 ‘종점’, ‘도착’ 따위의 단어를 포함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지금 이 이야기에는 종점이나 도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 열차는 멈추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덕질 열차 도착편을 ‘종점 없음’ 공지와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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