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지난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파주·고양 일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는 경기 북부 뿐 아니라 김포, 수원, 성남, 포천, 화성 등 경기도 내 여러 도시의 상영관에서도 진행되며 영화제의 메시지와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를 이어졌다.
올해의 슬로건인 “우리가 살고 싶은 하루”는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답게 개인에서 사회로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의 참상을 함께 맞닥뜨리는 현재, 혐오와 차별이 인간의 존엄함을 깨뜨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싶은 어쩌면 살아야 하는 하루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하루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이 문제들을 마주하고 어떻게 대응해 가야 할지 고민해 보게 한다. 희망을 막연히 부르짖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화와 생명을 위해 연대라는 그 작은 움직임들이 분명 어떤 연결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메시지가 공감과 위로를 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기획전으로 진행된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회고전은 이 슬로건과 꽤 일치한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거장으로 불리는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대표 영화 33편이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과 음향 요소를 바탕으로, 4K로 복원되어 기획되었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획기적인 다큐멘터리 <티티컷 풍자극>(Titicut Follies, 1967)을 시작으로 제도와 기관을 통해 복잡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제도의 모순과 효용, 그것들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담아내왔다. 그 중 1970년 작 병원을 소개한다.

<병원>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
메트로폴리탄 병원 응급실과 외래 진료소를 배경으로 한 이 다큐는 병원의 일상을 어떠한 판단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환자들은 질병과 중독뿐 아니라 빈곤에도 맞선다, 돈이 없어 침상에 누운 채 계속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 보험 처리로 상담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환자, 의사에게 공손하고도 처절하게 읍소하는 환자 등 다양한 인간이 끊임없이 마주치고 지나친다. 지친 의료진 또한 한정된 자원과 여러 고민 속에서 긴장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로하지만, 환자를 만날 때만큼은 전문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모습과 그럼에도 사람이기에 드러나는 흔들림이 스크린을 메운다. 스크린 속 모두가 제도적 압박 속에서 각자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90분의 찰나 동안에도 찰나의 인간적인 공감과 흔들림이 포착된다.
지난 해 백남준 아트센터, 성남 미디어센터, 수원 미디어 센터 등 다양한 상영 거점을 확대한 것에 이어, 이번 회고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부산 영화의전당, 광주 독립 영화관, 강릉 예술영화관 신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등 전국의 시네마테크, 예술영화관들과의 협업으로 2026년 7월까지 이어진다.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운영되는 영화제의 한계를 넘어서고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접근성을 목표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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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리테 섹션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진실(Verite)에 도달하기 위해 발전해 온 다양한 접근과 실천들을 조명한다. 현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또한 끊임없는 참상 속에 어떻게 견뎌내고 서로를 지켜낼 수 있는지 묻는다. 기술을 갈수록 고도화되지만, 그 속에서 남용과 소외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끈질긴 시선으로 질문하는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집중했다. 그 중 눈길을 끈 다큐멘터리 포식자들을 소개한다.

<포식자들> 감독: 데이비드 오싯
포식자들은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대흥행한 아동 성범죄자 추적 텔레비전 쇼 ‘포식자를 잡아라’(To Catch a Predator)의 흥행과 종영 이후 이야기를 담는다. 이 쇼는 아동 성범죄자를 ‘미끼’ 역 배우로 유인하고 체포되는 모든 과정을 촬영한다. 동안의 성인 배우들과 아동 성범죄자가 채팅 및 전화를 주고받고 직접 만나는 약속을 잡는다. 해당 장소에는 잠복한 경찰과 수십 명의 카메라맨, 진행자 크리스 핸슨이 대기하고 있다. 포식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경계를 푸는 순간 배우는 퇴장하고 진행자는 묻는다, “여기 왜 오셨습니까?”
프로그램이 종영한 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모방 유튜버와 그로 인한 범죄가 발생하고 진행자 크리스 핸슨 역시 유사한 쇼를 자체 제작하며 승승장구한다. 범죄자의 인생 말로를 보는 것이 오락과 정의 구현 사이처럼 느껴지지만, 다큐가 진행될수록 그 내부의 모순과 책임감에 고민하게 된다. 선악은 절대 쪼개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질 즈음, 감독은 화면 속 출연자 혹은 관객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툭 내어놓는다. 이 불편함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전한 데이비드 오싯은 뉴스와 영화를 만드는 방식 뒤에 있는 어떤 도덕적 딜레마를 꼬집는다.
또한 ‘포식자를 잡아라’가 종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포식자 사망 사건의 과정을 낱낱이 따라가며 뉴스와 예능, 정의와 자극 사이 딜레마의 예시를 볼 수 있었다. 감독 본인 역시 해당 프로그램의 애청자였지만 점차 그 이면을 쫓으며 자신이 가진 질문을 통렬하게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큐멘터리 <포식자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겹쳐 올리며 개인의 서사가 사회적 이슈로 혹은 그 반대로 확장하고 작용하는지 섬세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번 영화제에서는 프로덕션 피칭과 5개의 주제를 담은 포럼을 통해 담론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큐 로드, 경기도 다큐 스쿨 등 일반 관객과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병행하며 다양한 분야의 자리를 마련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경계와 긴장이 응축된 장소를 평화와 연대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하는 매개체로서 계속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의 의의를, 영화제를 통해 단순히 스크린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사회 속에서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겠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기록으로서 기능하고, 다양한 삶과 목소리를 증언하며, 연대를 촉발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한 이번 영화제는 종료되었지만, 앞으로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장소적 의의를 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지켜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