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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중2병 소녀를 지켜준 오래된 록스타들 [음악]

70년대부터 시작하는 질풍노도의 해외 록 플레이리스트

by 이지선 에디터
2025.07.24 20:36

 

 

흑화한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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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중2병이 중2에 찾아오는 것도 복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참 복된 여자다. 촌구석의 조그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지역 곳곳의 아이들이 집결하는 비교적 큰 중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첫 시험에서 뜻밖에도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 결과 높아진 부모님의 기대는 내 공부량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는 지칠 때마다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하며 그 달콤함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시험을 마친 어느 날, 큰 충격을 받았다. 공부에 매달릴 때는 그토록 간절했던 것들을 전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공부하는가’라는 의문은 ‘왜 사는가’라는 의문으로 번졌다. 내 고뇌에 불을 지핀 것은 부모님과의 갈등이었다. 당시 나의 펑퍼짐한 교복 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친구를 따라 세탁소에 수선을 맡겼다. 그렇다고 소위 똥꼬치마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고, 선생님의 시선을 고려해 적당히 통을 줄였다. 하지만 문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님이었다. 날라리 짓을 하다니 제정신이냐는 비난과 함께 내 마음속 댐이 무너지며 거센 물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나는 여느 때처럼 등교한 뒤 책가방을 챙겨 교문을 나섰다. 책을 사랑하는 성실한 소녀였던 내가 도망칠 곳은 지역 도서관 내지는 기껏해야 마트 정도였다. 금방 붙잡힌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탈출을 감행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출결 기록에는 ‘무단’ 항목의 숫자가 늘어나고, 나를 특목고에 보내겠다는 부모님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린 나는 저녁밥을 먹다 말고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숨죽였다.

 

 

 

혜성 같은 록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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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았던 무대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 김경호의 <못 찾겠다 꾀꼬리>였다. 그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그가 사랑했던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에까지 취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신세계였다. 부모님과의 계속되는 갈등과 마음속의 공허함으로 시들어가던 내 삶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그들의 음악은 힘겨운 시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한국은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록의 불모지로 불릴 만큼 록 음악의 입지가 좁다. 1970년대부터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록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한 뒤 90년대에 민주화로 문화 검열이 완화되고.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 보급으로 해외 록 밴드에 대한 접근성이 커지면서 팬덤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불씨는 갈수록 사그라들어 현재는 록 페스티벌 등 현장 소비를 제외하면 해외 록은 마니아 중심의 취향 장르로 자리 잡은 실정이다.

 

나는 가수 김경호를 통해 해외 록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터라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그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 시대를 휩쓸었고 현재까지 명곡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노래들이 많다. 따라서 가수 김경호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나처럼 그의 공연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이 음악들이 익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나를 숨 쉬게 해준 그 시대의 감성이 조금이라도 빛을 보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썩어 빠진 세상 따위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 Pink Floyd

 

 


 

  

'Another Brick in the Wall'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에 발매한 록 오페라 앨범 'The Wall'의 3부작 곡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두 번째 파트는 1980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를 달성하는 등 막대한 히트를 기록했다. 획일화된 공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 노래는 군부독재 치하의 대한민국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디스코 스타일의 리듬과 록 사운드를 결합하고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음악적 실험으로 평가받았다.

 

내가 록을 사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사에 담긴 영혼이다. 온통 사랑 타령뿐인 국내 대중가요와 달리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담아낸 록 음악의 가사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억압적인 교육 제도에 도전하는 이 노래는 나의 심금을 울렸다. 사실 난 학교엔 큰 유감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모범생인 나를 대체로 예뻐했고, 교우관계도 양호했다. 하지만 조금의 감점도 허락하지 않는 부모님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육관은 내 안의 반항 정신을 일깨웠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우리는 교육 같은 건 필요 없어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는 생각의 통제도 바라지 않아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교실 안에서 비꼬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선생, 아이들을 좀 내버려둬

 

 

 

Youth Gone Wild – Skid Row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스키드 로우가 1989년에 발매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의 수록곡이다. 1992년 UK 차트 22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을 거두며 스키드 로우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보컬 세바스찬의 인터뷰에 의하면 팀에 합류할 때 이 곡의 제목을 팔에 문신에 새겼다고 한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자유롭고 반항적인 삶을 노래한 곡으로, 자본가로 대표되는 속물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엿보인다. 가사에 등장하는 ‘Park Avenue’는 LA의 부자 동네이며 ‘Skid Row’는 LA의 슬럼가를 가리킨다.

 

 


 

 

가수 김경호와 얽힌 재미있는 비화가 있는 곡이기도 하다. 무명 시절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하게 된 김경호는 PD로부터 비틀즈의 를 부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김경호는 강경하게 반대하며 이 노래를 열창했고, 다음날 앨범 선주문이 무려 50만 장 이상 들어왔다고 한다. 위 영상의 50분 30초부터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시작부터 4옥타브의 샤우팅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압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록의 정수는 ‘기세’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위축되고 움츠러들 때 종종 이 무대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They call us problem child

사람들은 우릴 문제아라고 불러 

We spend our lives on trial

우린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지 

We walk an endless mile

우린 끝없는 길을 걸어 

We are the youth gone wild

우린 질풍노도의 젊은이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Somebody To Love - Queen

 

 


 

 

영국의 록 밴드 퀸이 1976년 발매한 앨범 'A Day at the Races'의 타이틀곡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3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을 거두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하는 그룹답게 가스펠 스타일의 코러스를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 및 작곡한 곡이자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그의 삶을 기록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올려보면 왜 좋아했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한 가사가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는 규칙을 따르지 않고 무턱대고 어른들을 미워하는 아이를 보며 한심하다거나 철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감정 기복이나 충동적 언행은 뇌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반항과 일탈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괴로운 것은 아이들 자신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귀뚜라미’라는 별명을 갖게 된 나 역시 무단조퇴가 딱히 즐거웠던 건 아니다. 단지 누구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을 뿐이다.

 

 

They say I'm goin' crazy

그들은 제가 미쳐가고 있다고 해요

They say I got a lot of water in my brain

그들은 제 머릿속이 물로 가득 차 있대요

I got no common sense

저는 맨정신도 없고

(He's got) I got nobody left to believe

(그는) 저는 믿을 사람도 하나 없다고요

 

 

 

To Be With You – Mr. Big

 

 


 

 

미국의 하드 록 밴드 미스터빅이 1991년 발매한 앨범 'Lean into It'의 마지막 트랙이다. 1992년 2월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고의 세션들이 모인 테크니컬 밴드였던 미스터빅이 헤비메탈이나 하드 록이 아닌 어쿠스틱 발라드로 대히트를 거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소화된 구성 속에서도 절묘한 연주 디테일이 살아있다. 보컬 에릭 마틴이 10대 때 좋아했던 소위 여자 사람 친구에게 어필하기 위해 쓴 곡이라고 한다.

 

당시 나는 다른 고민이 많았고 김경호라는 환한 별이 있었기에 또래 이성에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선생님은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하지만 고민을 털어놓는 법조차 몰랐던 난 이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기적처럼 나타나길 바랐다.

 

 

When it's through, it's through

다 지나가고 모두 끝나게 되면

Fate will twist the both of you

운명이 너희 둘 모두 바꿔 놓을 거야

So come on baby, come on over

그러니 그대여, 힘을 내, 이리 와

 

Let me be the one to show you

내가 네 앞에 있을 사람이 되게 해 줘

 

 

 

그럼에도 희망을


 

Wind of Change - Scorpions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온즈가 1990년에 발매한 앨범 'Crazy World'의 세 번째 싱글이자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를 기록한 대표곡이다.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가 1989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으며 냉전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으로 유명하다. 평화를 향한 변혁의 바람을 노래한 이 곡은 소련의 붕괴로 이어진 쿠데타의 실패 직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이후 냉전의 종언과 독일의 통일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독일이 통일될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변화를 꿈꾸는 간절한 마음이 감명 깊었다. 갈수록 어두워지기만 할 뿐 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걷는 것밖에 없었다.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의미도 기약도 없는 여정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언젠가는 빛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덕분이었던 것 같다.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영광의 밤에, 그 순간의 마법으로 나를 데려가 주오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share their dreams with you and me

미래의 아이들이 꿈을 나누는 그곳으로.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영광의 밤에, 그 순간의 마법으로 나를 데려가 주오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미래의 아이들이 변혁의 바람에서 꿈꿀 그곳으로

 

 

 

Here I Go Again – White Snake

 

 


 

 

영국의 하드 록 밴드 화이트 스네이크가 1982년에 처음 발표했으나 1987년에 발매한 셀프 타이틀 앨범에 수록된 재녹음 버전이 훨씬 유명하다. 글램 메탈 스타일의 트렌디한 편곡과 커버 데일의 소울풀한 보컬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당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커버 데일의 첫 번째 이혼을 다룬 노래로도 알려져 있다. 고독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향한 밝은 의지를 노래한 가사는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오랫동안 즐겨들었던 이 노래가 1987년 버전이 아닌 원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리메이크 버전을 처음 듣자마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메인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시어스에 의하면 고독은 스스로 택한 외로움이다. 또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을 ‘혼자 있는 고통’으로, 고독을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 정의했다. 외로움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맞설 수 있는 강함 역시 우리의 영혼에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외로움을 통과해 오늘날의 외로움까지 맞서게 해준 고마운 노래다.

 

 

Here I go again on my own

난 스스로 다시 시작해

Goin' down the only road I've ever known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길을 걸어가면서

Like a drifter I was born to walk alone

마치 홀로 걸어가도록 태어난 방랑자처럼

and I've made up my mind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을 굳혔어

I ain't wasting no more time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래

 

 

 

엄마 아빠가 ‘미안해’ 했잖아? 무단조퇴 이딴 거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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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혀두자면 이 소제목은 예전에 유행했던 <환승연애> 밈의 패러디이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궁금해할 것이다. 그럼 지금의 나는 중2병을 극복한 것인지. 극복 못했잖아? 이딴 글 안 썼어. 하지만 이 노래들은 터널에 갇힌 나를 지켜주었을 뿐, 꺼내주지는 못했다. 터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려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거기엔 여러 요인이 있으나 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게 된 곳이 기숙학원이라는 사실도 한몫할 것이다. 단체 생활에 매우 부적합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몇 번이나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만기 출소해야만 했다.

 

사실 이 글의 서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중2병이 중2에 찾아오는 것도 복이라는 말은 어릴 때 치는 사고가 나이 먹고 치는 사고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는 어쩌면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 글의 독자 가운데 자녀의 사춘기로 고민하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의 방황이 지금보다 버라이어티해지기 전에 조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라고도 말하고 싶다. 공부가 싫어 학교를 탈주하던 중2병 소녀는 어느덧 어엿한 대학원생이 되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나 공부가 싫었는데 좋아하는 건 배울수록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부모님이 원망스럽다기보다는 어두운 시기를 이겨낸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 사춘기가 막을 내렸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다면 이미 사춘기가 아니란 뜻이다. 뇌가 아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길은 어떻게든 열리지만, 스스로 걸어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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