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0년대 생의 흔한 플레이리스트 [음악]

아날로그 매체에서 흘러 나오던 명곡들
글 입력 2022.04.0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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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를 듣게 된 계기

 

핸드폰이 잠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연락을 못하니 학교에서 놀던 친구들과도 간신히 연락 하거나 구두로 약속 하여 만남을 하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있던 mp3마저 작동이 잘 안되어서 애를 먹었다. 들을 거라곤 좋아하는 가수의 cd와 라디오 뿐이였다. 그 때는 지금만큼 유튜브가 활성화 되있을 때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라디오.jpg

 

 

cd를 고르고 꽂는 것이 어느 순간 귀찮아졌다.

 

그 때부터 매일 새로운 내용과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를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자주 듣다 보니 챙겨 듣는 채널들이 생겼다. 특히 저녁-심야 시간 대의 라디오는 참 매력적이었다. 디제이와 게스트의 잔잔한 토크 사이로 종종 웃긴 포인트들이 팡팡 터지는 것을 듣다 보면 꼭 그들의 대화에 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나는 그냥 수많은 청취자들 중 하나였지만, 주파수를 사이에 두고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종종 그들이 뱉는 말로 위로 받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 때 느꼈다. 때로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듣는 것의 힘이 더 클 때도 있구나.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어놓고 생활하게 되었다. 어린 나는 bgm 마냥 그걸 켜놓고 주로 밀린 숙제를 하거나, 도피성 독서를 하곤 했다.

 

즐겨 듣는 주파수를 맞추고, 오프닝 멘트를 듣고 나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화 중간 중간에도 음악이 있었다. 한참 아이돌 음악과 유명한 팝송을 듣는 것에 지겨웠던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 땐 음악에 있어서 크게 취향이라고 할 게 없었기 때문에,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또 되새기게 되었다.

 

아무튼 필자의 음악세계 구축에 일조한 라디오는 1990년대 생인 내가 90년대와 00년대, 때론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노래를 듣고 또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필자의 플레이리스트 속 몇 곡을 소개해볼까 한다.

 

 

 

플레이리스트



1. 유재하 - <우울한 편지> (released on 1987)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히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

.

.

(중략)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이 곡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또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커버를 한 명곡 중의 명곡이다. 사실 나도 라디오에서 먼저 접하지 않고, 멜론에서 버벌진트의 커버 버전으로 알게 되었다. 듣자마자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자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곡이었다.

 

여느 날처럼 새벽에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원곡이였다. '그래, 원곡이 이렇게나 좋으니 커버곡이 좋을 수밖에! 역시는 역시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컴퓨터로 노래를 다시 찾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 반복해 들을수록 가사가 가슴에 새겨졌다. 원래는 멜로디 위주로 음악을 듣고는 했었는데, 이 곡을 계기로 가요를 들을 때 가사를 꼭꼭 씹으며 듣게 되었다. 시에다가 선율을 붙인 것이 음악이라는 말이 단박에 이해되는 그런 곡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숙하고 나약하고 강인하고 지혜로운 한 인간의 사랑이야기가 왜 그렇게 인상 깊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 때의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과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핸드폰도 없고, mp3도 없어서 라디오를 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노래 자체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이 잔뜩 묻어 있는, 우울하지만 우아하고 담백한 사랑 고백에서 동질감을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종종 이 노래를 듣는다. 좋은 곡은 언제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또 질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울한 편지>가 딱 그런 곡이다. 괜히 유재하님이 천재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곡. 

 

감수성을 채우고 싶은 날 들으면 더욱 좋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들으면, 꼭 연애 소설의 주인공인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곡이다.

 

 

2. 강산에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released on 1998)

 


 

 

최근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너드커넥션의 보컬이 불러 다시 회자된 곡이다. 이 노래는 어디선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꼭 한 번은 들어봤을 거다. 이 곡 또한 명곡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듣는 곡이다.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들었던 시절은 한참 인간관계와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였다. 전주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밝은 노래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보컬이 나오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놀랐다.

 

우선 강산에님의 '날 것'의 힘찬 목소리가 독특하면서도 듣기 좋았다. 툭툭 내뱉는 것 같은 창법으로 담백하게 전달되는 가사는 당시 힘들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가는 이 길 잎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

.

.

(중략)

 

 

'어떻게 이런 가사를 이런 멜로디에 붙여 노래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곡을 만들게 된 배경을 찾아 보았다.

 

안도현 작가의 「연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팬이 선물해주어 읽다가, 우리의 삶을 연어의 삶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어서 거기서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어서 때로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해 힘든 순간들도 있다. 가끔은 목적을 잃고 살기도 한다. 그럴때면 꼭 하루살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해가 지고 뜨면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그 반복되는 하루들이 지루하고 슬플 때도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행복이라도 없으면 물살을 가를 힘이 없어지지 않을까?

 

아무튼 이 노래는 그 시절,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늘 이정표같은 존재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삶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추천하고 싶은 곡!

 

 

3. Eagles - Desperado (released on 1973)

 

 

 

 

Tv에서 한참 <나는 가수다>를 방영할 무렵이였다. 프로그램에서 실력파 가수들의 무대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아주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방송 출연을 잘 하지 않던 가수들이 나와서 경연을 펼쳤던 것이 큰 이슈였다.

 

프로그램을 계기로 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가수들을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임재범님이었다.

 

Desperado는 원래도 한국인이 사랑하던 팝송 중 하나였지만, 임재범님이 2011년에 "우리들의 일밤"에서 커버하여 회자된 곡이다. 본래 라디오 선곡표는 그 때의 유행곡이나 그 날의 분위기에 맞는 곡들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때 마침 내가 듣던 라디오에서 원곡을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Desperado,

why don't you come to your senses?

you been out ridin' fences for so long now

Oh, you're a hard one

I know that you got your reasons

These things that are plesin' you

Can hurt you somehow

.

.

.

(중략)

 

 

라디오에서 원곡을 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아주 멋진 어른의 조언이었다. 그 감동에 비해 보컬은 또 그저 담담히 부르는 것 같은데, 그게 막 와닿는 신기한 기분이랄까.

 

필자는 곡을 들으면서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 좋지만, 누가 어떤 감정을 실어서 부르냐에 따라 꽤 많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곡도 해석에 따라 주는 메세지와 느낌이 천차 만별인데, 이 곡은 깊이감이 있다 보니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가수가 지난 날의 회상하며 후배에게 삶의 조언을 하듯 불렀을 때 가장 가슴을 울리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고 느꼈다. 삶을 통달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위로 같았다. 그래서 임재범님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고등학생들에게 불러 줬던 버전이 그렇게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이 곡은 고민이 많을 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를 때  '삶이란 언젠가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란다.' 하고 말을 건네주었던 아주 고마운 곡이다.

 

 

 

시대가 변해도, 그 노래들은 영원할 거야


  

시대가 변해도, 좋은 것들 곁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받는 것에는 이유가 늘 있으니까. 오래된 노포가 문전성시인 것처럼 말이다.

 

앞서 소개한 라디오라는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매체와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명곡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라디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있고, 그 시절 노래들도 여전히 내 귓가에서 울려 퍼진다. 마치 오래된 노포의 국밥같다고나 할까.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위로 혹은 성찰의 시간을 건네준다.

 

학생 때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곡 혹은 아주 어린 시절 발매된 곡들을 자주 꺼내어 들으며 하는 생각이 있다.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 받는, 아니 사랑은 좀 거창하니까 꾸준하다는 평을 받는 그런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오래된 곡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던 감성을 찾을 수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오늘은 90년대생인 내가 즐겨듣고 위로를 받는 오래된 명곡들을 소개해보았다. 오늘 밤, 필자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한 곡을 선택하여 꼭 들으며 잠을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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