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주로부터 날아온 편지 - 청혼 [도서]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글 입력 2024.05.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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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 우주에서 보낸 한 편지가 있다.


목성 근처 소행성대에서 궤도연합군 작전 장교로 복무 중인 ‘나’는 우주 출신의 사람으로, 지구 출신의 ‘너’와 연인 관계이다. ‘나’는 궤도연합군을 공격하는 적들과 우주 한복판에서 전쟁을 치르며, ‘너’에게 보낼 열두 통의 편지를 써왔다. 그 편지 속에는 우주 공간에 대한 이야기,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 속 의아함, ‘너’를 향한 사랑까지 세심히 담겨있다.


그리고 그 편지는 곧 ‘청혼’이 되었다.

 

 

청혼_앞표지_띠지.jpg

 

 

개인적으로, 과학적인 요소만이 가득 담긴 책보다 적당한 상상력이 가미된 SF 소설을 선호한다. 독서를 취미라고 당당히 말 못 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식 전달만이 아닌 어느 정도의 재미도 있어야 책 절반 이상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펼쳐 본 도서 [청혼]은 우주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과학적 요소가 있으면서 작가의 상상력과 로맨스까지 담긴 소설이다. 과학소설인데 제목이 ‘청혼’이다? 거기에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일러스트에 반한 나머지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편지에 담긴 우주 공간



“휴가를 받으면 한번 놀러 와.”


이 책의 첫 문장은 주인공 ‘나’가 지구에 살고 있는 ‘너’에게 새 휴양선에 놀러 오라는 문장이다. 휴양선은 지구 중력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시설로, 지구까지 휴가를 못 가는 우주 출신 사람들을 위해 만든 거라고 한다.


처음에 이 책이 편지 형식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첫 페이지가 주인공 ‘나’가 남긴 짧은 메시지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계속 넘겨도 ‘나’는 연인에게 말하듯 구어체를 쓰고 있었고, 1인칭 시점의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제야 아, 이 책 자체가 ‘너’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구나를 알아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편지로 채워져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왜 이 책이 로맨스 소설인지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은하가 되어갔어. 함선들이 퍼져나가면서 연료를 불규칙적으로 연소시키는 모습이 마치 한 떼의 별 무리 같았거든. 반짝반짝, 아무 패턴도 없고 아무 의도도 없이 평화롭게 떠가는 한 떼의 별 무리.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별이 되고 있었어.

 

pp. 138-139

 

 

편지 형식의 글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먼 우주 세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몰입을 높여주었다. 위에 옮겨 적은 문단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이 문단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매복하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작성한 글인데, 마치 ‘한 떼의 별 무리’ 같았다는 잠깐의 아름다운 광경을 ‘너’에게 전달하고 있다.


모든 편지는 그 사람의 성격과 말투, 심지어 기분까지 알 수 있는 신비한 매체인 것 같다. 함께 가고 싶은 공간을 소개해주고, 아름다운 광경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이 편지로 고스란히 느껴지곤 한다.

 


 

우주 출신만이 쓸 수 있는 고백



 

그때, 내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금쪽같은 휴가를 받자마자 170시간을 날아가서 40시간 동안 너와 함께한 다음 다시 180시간을 날아서 복귀하려는 나에게, 후회되지 않느냐고 네가 물었지. 후회하지 않아. 한 번 더 휴가가 생긴대도 또 그렇게 할 거야. ···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런 거였어.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 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pp. 35-37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 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보다 더 강력한 멘트가 있을까? 우주 출신 사람에게 그 어떤 고백보다도 정말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이라 생각된다.

 

 

그 작은 선단을 따라 지구로 돌아가기로 한 동료에게 이 편지와 반지를 맡겨. 이건 우주 최고의 무중력 귀금속 세공 장인이 만든 반지인데, 지금은 영원히 문을 닫아버린 숍에서 만든 거니까 이제 어디에서도 이런 건 구할 수 없을 거야. 네 손에 직접 끼워주지 못해서 미안해. ··· 전쟁이 끝나면 결혼하자고 말할 생각이었어. 네가 무중력이 싫다고 하면 지구에서 살아도 상관없었어. 골밀도가 높아질 때까지는 지구 여행을 다니자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p. 152

 

 

이 책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이 문장들을 읽는 순간 울컥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여태껏 우주 전쟁을 치르며 ‘너’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반지까지 준비해 놨는데 정작 본인이 직접 전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파멸의 신전을 향해야 하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살다 보니 다르게 발달된 신체구조를 장난삼아 말하는 그 모습조차도 슬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라는 문장으로 편지가 끝이 난다.


우주 출신인 ‘나’가 본인이 맡은 바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모습에 대단함도 느끼지만, 반대로 이 편지를 끝까지 읽은 지구 출신의 ‘너’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릴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던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며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결국 나중을 기약하며 더 멀어진 현실에 안타까움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뿐만 아니라 ‘너’의 시점도 궁금해졌다. 먼 우주에 있는 ‘나’를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는 ‘너’가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로부터 온 편지와 반지를 전해 받았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SF 소재의 소설이지만 분명한 진실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있어도 사랑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긴 편지의 결말이 비록 두 사람의 만남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서로의 별이 되어준다는 것. 그게 우주와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간의 최고의 프로포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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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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