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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평범한 삶을 위하여, 연극 ‘또 여기인가’

‘물감 물이 마시고 싶은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

by 박서현 에디터
2026.06.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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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또 여기인가>는 영화 <괴물>로 제76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희곡 <또 여기인가>를 프로젝트 내친김에가 제작하여 올리는 국내 초연이다.


과거에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작품 중 연극 <손님들>을 관람했었다. <또 여기인가>의 초반부 대사가 <손님들>을 닮았다. 마치 부조리극을 보듯 똑같은 대사가 들리고 어긋난 행동들이 보였다. 어렵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점차 인물들의 목표가 드러나며 극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네모리는 땅문서를 찾으려고 이복동생을 찾아왔고, 시메노는 무언가에 매몰되어 있으며, 다카라이는 무심하고 무례하다. 이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아버지는 정말 어떻게 죽게 된 것일까? 그 진실이 이 이야기의 종착지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을 비웃듯 진실은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밝혀진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지카스기였다. 대단한 반전이 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그 범인이 누구인지보다는 범행의 이유에 집중하는 듯했다. 시메노는 ‘간병 살인’, 네모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단언했다. 이제 두 사람의 주장 중에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지 고민해야 한다.


지카스기와 이미 안면이 있었던 시메노는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 시메노는 지카스기의 지난한 간병 생활을 곁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자 그의 살인을 묵인한 방관자였다. 그가 줄곧 두르고 다니던 더러운 수건에 관해 말하며 2년 반의 간병 생활이 살인의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메노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그 참혹한 결말을 이해하게 될 것만 같았다. ‘간병살인’이라는 범죄, 비극이 발생하는 원인과 문제에 관해서 고민해 본 바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이러한 질문은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에서는 가정폭력과 존속살해 문제를 다뤘고, <또 여기인가>에서는 간병 살인 문제를 담았다. 엄연한 범죄이기에 용인될 수 없고 그것을 미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범죄를 범죄로만 바라보기 모호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간병 살인을 과연 개인이 만든 참극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수건의 대변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때까지 닦고 또 닦으면서 누군가의 병간호를 한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의지할 다른 가족도 없이 홀로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 역시 힘들 것이다. 그러한 사정으로 살인을 참작할 수는 없지만, 범죄 뒤에 우리가 몰랐던 문제를 생각해 볼 시간을 만든다.


하지만 연극을 관람할수록 시메노보다는 네모리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지카스기는 누군가 흘리듯 뱉었던 말을 잘못 주워 담은 듯 ‘게 다리처럼 확 뽑아버린다’라며 충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생인 다카라이의 팔을 부러트렸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네모리가 시메노에게 건넨 말이다. 극 중에서는 지카스기를 ‘사이코패스’라고 칭하지만, 지켜볼수록 그는 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에 가깝다. 아버지의 튜브를 묶어버린 것도, 장수풍뎅이 젤리와 건미역을 입에 털어 넣은 것도, 다카라이의 팔을 부러트린 일도 모두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이행해 버린 결과였다.


물감 물을 마시는 것에서 시작했던 그의 충동적인 행위는 강한 제재 혹은 치료를 받지 못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죽였을 때 역시 ‘또 물감 물이 마시고 싶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살인의 원인도 그의 충동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럴 때 다른 가족이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절대로 오지 않을 어떤 날을 상상했었다는 네모리의 말처럼 다른 가족의 곁에 있는 지카스기를 상상해 본다. ‘자신이 무서워질 때’를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무섭다고 울며 끝내 방화 자살을 시도하려는 지카스기에게 네모리가 제시한 방법을 통해 지카스기가 꿈꾼 평범한 삶을 엿보게 된다.


엽서를 보고 찾아온 이복형에게 평범하게 보리차와 마들렌을 내주고, 장수풍뎅이 젤리를 먹어 보고 싶은 충동에 함께 임해주는 이가 있고, 형에게 보고 싶었다며 말할 수 있는 삶이 펼쳐진다. 지카스기가 충동을 억누르며 써 내려간 글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평범한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간절히 바라던 지카스기의 마음이 전해졌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또 여기인가’ 자조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 인간의 삶과 그럼에도 쉽게 무너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물감 물이 마시고 싶을 때’를 마주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온기를 머금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이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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