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알파의 팔에 새겨진 ‘A’. 의사인 엄마는 문신을 새긴 바늘이 딸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2주 동안 학교에는 소문이 퍼지고, 의학계가 아직 답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파를 감염자로 취급한다.
줄리아 뒤쿠르노의 〈알파〉가 포착하는 공포는 병의 증상만큼이나 빠르게 번지는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 바이러스는 감염된 몸을 서서히 돌처럼 굳게 만든다. 이 기이한 변화는 1980~90년대 에이즈 위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영화가 겨누는 곳은 병원체의 정체보다 병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다.
알파의 상처는 감염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다. 그런데도 상처를 본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판단부터 내린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눈에 보이는 문신이 더 강한 판결문이 되는 셈이다. 사춘기의 몸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은 그렇게 감염에 대한 공포와 뒤섞인다. 알파는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스스로 할 기회마저 빼앗긴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말로 둔갑하고 만다.

영화는 알파가 학교에서 겪는 배척에 그치지 않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족의 돌봄과 관계까지 어떻게 흔드는지 살핀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인 엄마는 딸 앞에서 누구보다 불안한 보호자가 된다. 환자를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엄마에게 의학적 지식은 안심의 근거만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일들을 그려보는 장치이기도 하다. 딸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딸의 몸을 위험의 징후로 살피게 되는 모순도 드러난다.
한편 아민은 중독과 질병으로 소외를 경험한 사람으로, 알파가 막 겪기 시작한 고립을 이미 오래 견뎌왔다. 아민은 실제로 병을 앓고 있고 알파는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를 몸에 드러난 흔적으로 판단한다. 처음에 알파에게 아민은 엄마의 걱정을 더하는 낯선 존재다. 그러나 한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알파는 아민에게도 병과 중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이 있음을 알아간다. 아민 역시 알파를 감염 가능성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지만, 상대가 겪는 두려움 앞에 머문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누군가를 고쳐주겠다는 약속보다, 그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곁을 지키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뒤쿠르노의 전작처럼 〈알파〉에도 기이한 신체 변화가 등장한다. 감염자의 몸은 서서히 대리석처럼 굳어간다. 그러나 알파에게 먼저 닥치는 변화는 감염 증상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영화는 어린 알파의 기억과 열세 살 알파의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엄마와 아민이 품어온 두려움도 함께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고통이 선명해지는 만큼 알파 자신의 감정에 더 머물렀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대리석으로 변한 몸은 죽어가는 사람의 존엄을 기리는 형상처럼 보인다. 동시에 그 아름다운 이미지가 환자 개개인의 고통까지 충분히 보여주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그럼에도 〈알파〉가 남기는 질문은 또렷하다. 알파를 둘러싼 사람들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그녀와의 거리를 정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조심하는 일과 한 사람을 위험 자체로 취급하는 일은 다르다. 이 영화는 그 차이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결국 먼저 굳어버리는 것은 환자의 몸이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