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 연극 〈또 여기인가〉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한마디도 못 한 것 같은 밤이 있다. 연극 〈또 여기인가〉는 두 시간 내내 그때 그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극단 '프로젝트 내친김에'가 선보인 이 작품은 영화 〈괴물〉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사카모토 유지의 희곡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 희곡은 사카모토 유지가 2018년 돌연 각본 집필을 쉬겠다고 선언한 뒤 가장 먼저 내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콰르텟〉이나 〈최고의 이혼〉에서 보여준, 식탁 위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그 화법을 떠올리면, 그가 펜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며 향한 곳이 TV가 아니라 연극 무대였다는 점은 어쩐지 자연스럽다.
무대는 도쿄 외곽의 낡은 주유소. 매미 소리가 끊이지 않는 무더운 여름밤, 아버지에게 주유소를 물려받은 점장과 아르바이트 직원, 그리고 자신을 점장의 이복형이라 주장하는 중년 남자와 간호사가 한자리에 모인다. 가족의 비밀, 의료사고, 감춰진 과거. 재료만 보면 이야기는 충분히 극적일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은 그 재료들을 좀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를 채우는 것은 핸드스피너, 마른미역, 마들렌 같은 시시한 사물들이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야 할 자리에서 인물들은 자꾸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떠든다. 처음엔 딴청처럼 보이던 그 사물들이, 돌이켜보면 인물들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의 대역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인물들은 계속 말을 하는 데 중요한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는 뜬금없는 말로 흐름을 끊는다. 대화는 서로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진다. 처음에는 이 리듬이 낯설고 버겁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이야기인 거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낯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농담 뒤에 숨기고,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고, 상처받을까 봐 자꾸 다른 이야기로 빠져버리는 것 말이다. 나 역시 객석에서 며칠 전의 내 대화 하나를 떠올렸다.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끝내 날씨 얘기만 하다 끊은 전화. 이 연극은 그런 기억을 하나씩 소환하는 재주가 있다.
혜화에 위치한 연우소극장이라는 작고 가까운 공간은 그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배우가 말을 멈추는 순간의 정적, 누군가 괜히 웃어버리는 타이밍, 의미 없이 손을 만지작거리는 습관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점장을 연기한 박경주는 계속 웃고 있는데도 그 웃음이 조금도 편안하지 않다. 웃음이 방어이자 간청이라는 것을, 그는 표정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전달한다. 정화의 간호사는 날카로운 태도 안에 설명되지 않는 피로를 품고 있고, 오남영은 무언가를 밀어붙이면서도 가장 불안해 보이는 모순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한현진의 건조하고 무심한 아르바이트 직원은 이 연극 특유의 기묘한 리듬을 완성한다. 네 배우는 각자 다른 속도로 말하는데, 그 어긋난 속도들이 합쳐져 하나의 앙상블이 된다는 점이 이 공연의 묘미다.
연출가는 이 작품을 두고 오해에서 시작해 이해로 향하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 '이해'는 화해의 포옹 같은 형태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끝까지 서로를 오해한 채로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일에 가깝다. 왜 우리는 중요한 순간마다 엉뚱한 말을 해버리는지.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이해란 상대를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음을 견디며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 극이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