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일상의 결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데려다 놓는 작가, 제76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유지의 희곡이 한국에서 초연을 한다고 해서 바로 보게 되었다. 괴물을 볼 때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들 줄 몰랐던 탓에 느꼈던 공포가 커서, 이번에는 긴장감을 안고 공연을 마주했다.
도쿄 외곽의 오래된 주유소를 배경으로 네 인물이 얽힌다. 무심한 아르바이트 직원, 젊은 점장, 그리고 갑작스럽게 어딘가 불안정한 여자 간호사를 끌고 들어온 낯선 남자. 사적인 손님이 끊긴 지 오래된 이 공간에서 이들의 대화는 마치 안 통하는 듯 통하는 듯 묘하게 이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들 같지 않은 그 감각이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알고 보니 낯선 남자는 점장의 이복 형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병원 생활이 의료사고였음을 밝히고 간호사가 가진 증거로 함께 고소하자는 것이 형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형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형을 맞이하기에 바쁘다. 어눌한 말투와 자기만의 규칙, 그 규칙을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동생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보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이상한 성격인지 아니면 세차장 사고 이후 달라진 것인지는 끝까지 모호하게 남는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오해와 실망이 쌓이지만 이상한 지점에서 동질감이 피어난다. 어떤 한 기억의 일부분에서 같은 부분을 찾아내듯. 서로가 필요할 때 왠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풍기로 바람을 쐬어 줄 것만 같고, 고장난 선풍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된다.
2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한 동생. 탈출구 없이 쌓여온 것들, 그 굴레 안에서 점점 조여오는 감각이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를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느끼게 한다.
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작품 때문에 팬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같은 자리를 맴돈다.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또 여기인가, 하는 것처럼.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이 꼭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어떤 지점에서 계속 뺑뺑 돌다가 그 자리에 영원히 남게 되는 것. 작품에 대한 이해도, 캐릭터에 대한 감정도 그렇게 느껴졌다. 오해인 건지 이해를 향해 가는 건지조차 모른 채로.
이번 공연의 연출가 김정은 이렇게 말했다. "오해로 시작해서 이해로 맺음되는 것이 연극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너무나 다른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이해시키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우리들은 남을 알아갈 시간조차 없다." 어쩌면 나는 사람들을 오해의 시선으로 계속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단순하게 다가간다면, 우리는 다들 한낱 또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고.
2년간의 간병 끝에 처음으로 누군가 옆에서 이해해줬다는 것만으로 동생이 느꼈을 해방. 형이 소설가로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동생에게 건넨 "글을 써봐"라는 말. 그렇게 쓴 글에 담긴 것이 가장 평범했을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는 것. 마지막 장면이 오래 남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작품인 만큼, 아마 한동안은 나도 이 연극 안에서 계속 좌회전하고 있을 것 같다.
출처) 프로젝트내친김에 인스타그램 @projectwh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