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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종교의 품을 떠나 스스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지만, 한때 세례명으로 불린 적이 있다. 굉장히 어릴 적이었는데, 그 때 당시에 한국 최초 가톨릭 추기경으로 서임되셨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다룬 영상들을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다룬 ‘울지마 톤즈’를 보며 어린 마음에 많이 울었던 기억도 난다.
이 종교 안에서 참 다채로운 경험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어른들을 쫓아 따라 간 성지 순례에서 남겨온 기억들이다. 그곳에는 오직 종교적 신념 하나만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성인(聖人)들이 있었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부터 성 정하상 바오로 등, 그 당시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본인의 신념을 지켜내며 기꺼이 목숨을 바친 자들을 보았을 땐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그들의 순교 과정이 꽤 잔혹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 속에서도 그들의 말과 행동이 누구보다 초연해보였기 때문이었다. 피부에 맞닿은 차가운 성당 공기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공포와 장엄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지금은 이 박해와 순교 과정에 대해 선과 악이라며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성리학을 믿던 조선 입장에서 천주교는 체제를 뒤흔드는 위협이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오로지 종교를 위해 공포를 이겨내고 소신을 지킨 성인이라는 점에서는 가히 위대한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죽음은 오로지 그들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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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유작,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에서도 이와 같이 순교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공포정치의 종교 탄압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과 신념을 시나리오 형태로 그려낸 희곡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격의 인물인 블랑슈 들라포르스는 프랑스의 귀족인 들라포르스 후작의 딸이다. 그는 귀족의 삶을 살았지만, 삶에 대한 고뇌와 고통 속에서 갈등하다 결국 가르멜 수녀원으로 들어가 종교인의 삶을 살기를 자청한다.
그곳에서 블랑슈는 그토록 바라던 수녀원에 입회했지만, 어머니 같던 원장의 죽음, 공포정치의 탄압 속에서 다시금 끝없는 공포를 느낀다. 그 곁에서 마리아 수녀와 자매들은 연약한 블랑슈를 계속 걱정하지만, 공포정치의 탄압은 그런 블랑슈를 봐주지 않고 블랑슈의 아버지마저 처단해 버리며 그들을 옥죄어 온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는 감정은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아니라 인간 본성 그 자체가 가진 불온전함이다. 폭력 앞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굳건하게 수녀원을 지키려 하지만 떨리는 손끝을 숨길 수 없었고, 마리아 수녀가 순교 서원을 발의하는 그 순간까지도 수녀들은 겸허히 마음을 모으기 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한 젊은 수녀는 죽음의 문턱 끝에서 왜 정치와 관련 없는 우리가 죽어야 하느냐 묻고, 원장 수녀는 그들을 끝없이 다독인다.
이와 같이 가르멜 수녀들의 모습은 내가 과거 보았던 성인들의 순교 모습과는 달리 다소 인간적인 표상을 띈다. 반복되는 폭력과 공포 속에서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때때로 침묵하며 무너지는 모습은 종교적 숭고함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보게 한다. 믿음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운명 속에서 그들은 혼란스러운 걸음을 떼며 천천히 결말을 향해 걸어가지만, 끝이 아닌 그 과정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을 결말로 이끄는 이유가 종교였기에 그들은 종교인의 모습으로 계속 걸어 나갔지만, 그 속에는 하느님의 종, 그리스도 임종 고난의 블랑슈 수녀가 아니라 블랑슈 들라포르스가 있었다.
이는 어릴 적 보았던 순교자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가르멜 수녀들 역시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겸허히 자신들을 제물로 바쳐 순교 서원을 완성하지만, 오직 종교적 신념만을 위해 이 죽음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지내왔던 동료들간의 신뢰, 유대감이 더 강조되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작품 중간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침묵 구간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공포와 고난에 몰입하게 만드는데, 이 구간을 통해 독자 또한 가르멜 수녀원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 끝에서는 블랑슈가 끝까지 죽음을 거부하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남으며 고통을 겪나 했지만, 순교 서원을 뒤로 하고 도망쳤던 블랑슈조차도 그들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Veni Creator’를 부르며 먼저 순교길에 나선 그들에게로 나선다. 점점 사라지는 수녀들의 목소리를 뒤잇는 블랑슈의 용기 있는 모습과 목소리는 끝없는 안타까움과 카타르시스를 남긴다.
천주를 향한 기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이들이 그 의미를 위해 죽음까지도 내놓는 모습은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모습 속에서 어릴 적 성지에서 느꼈던 공포와 장엄함, 숭고함을 다시 느꼈다.
그 찬란함은 이 삶의 끝에서 내가 바라볼 한 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어떤 죽음이 더 고귀하고 어떤 죽음이 더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의 모습이 오래 남는 건, 죽음의 무게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맞이하는 마음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 삶의 끝에서 기어코 고통을 털어내고 용기로 나아간 블랑슈는 되지 못하겠지만, 부끄러운 침묵 속에서 끝을 맺지는 말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생의 모든 순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야말로 죽음의 순간이다. 이 책을 집필한 베르나노스 또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궁금하지만, 블랑슈에게서 그를 엿 본 듯도 싶다. 종교를 떠나 이들의 숭고함에 경의를 표하며, 종교가 없더라도 삶의 신념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오래전 그 고뇌를 끝낸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를 한번 엿들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