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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문득 한 노래가 떠올랐다.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두렵지만 또 설레는 것.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그런 삶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흔히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한다. 너무 자주 들어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의례적인 문장처럼 느껴졌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크게 와닿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는 동안 이상하게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지금의 내가 가장 어리고, 지금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가시나. 어쩌면 이 작품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지금이 가장 시도하기 좋은 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네 명의 인물이 무대 위에 있었다.

 

 

 

인생 팔십 줄, 한글을 깨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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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유쾌한 인생예찬.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과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글을 몰라 평생을 답답하게 살아왔던 할머니들이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써 내려가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70~80대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시를 쓰게 되는 이야기.'

 

한 줄로 설명하면 다소 평면적으로 들린다. 자칫 예상 가능한 감동과 교훈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소재다. 하지만 공연은 그런 걱정을 금세 지워버린다. 8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고,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실제 할머니들이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며 직접 써 내려간 시들이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더. 그래서인지 극 속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웃음으로 시작해 삶의 이야기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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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균형감이다. 웃겨야 할 때는 충분히 웃기고, 진지해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만든다.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지 않는다. 결말 역 억지스럽지 않다. 할머니들의 삶과 감정에 맞는 방식으로 담백하게 마무리한다.

 

할머니들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글을 배우며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각자가 살아온 삶의 무게가 드러나는 순간에는 웃음 대신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있는 내내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라기보다 '삶을 다시 배우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들은 단순히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편지를 쓰고, 시를 쓰며 세상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다. 배우지 못했던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배움이란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행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는 것 역시 배움의 일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삶이 끝날 때까지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 더 가깝게 느껴졌다.

 

 

 

무대 위에 펼쳐진 진짜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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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실제 나이가 많은 배우들이 아님에도 우리가 떠올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공연을 보다 보면 어릴 적 시골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이 떠오를 정도다.

 

특히 좋았던 것은 웃음과 진지함을 오가는 감정선이었다. 웃긴 장면에서는 한없이 유쾌하고 사랑스럽다가도,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진중해진다. 그 변화가 어색하지 않다.

 

덕분에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따라가게 된다. 공연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노래자랑의 관객이 되었다가, 시 낭송 대회의 청중이 되었다가, 동네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공연은 결국 관객과 얼마나 호흡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관객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뛰어났다.

 

실제 공연장에는 40~50대로 보이는 관객들이 많았는데, 모두가 집중해서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로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공연을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작품이 '할머니, 엄마, 딸이 함께 보는 뮤지컬'이라고 소개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세대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만, 결국 삶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비슷하게 남을 것 같았다.

 

 

 

산다는 건 여전히 설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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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결국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80살에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몇 살이든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도파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더 강한 자극과 더 빠른 재미를 찾아 헤맨다. 그런 시대 속에서 이 작품은 아주 소박한 방식으로 사람을 웃게 만들고, 위로한다.

 

크게 울리지 않아도 오래 남는 이야기.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렐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야기.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는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진 출처 - 라이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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