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휴일 아침의 루틴은 다음과 같다.
요란한 알람 없이 푹 자고 가뜬하게 일어나기.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슬며시 이불 밖으로 나오기. 창밖을 보며 기지개를 켠 뒤 마른 빨래를 개기. 지난밤 쌓인 설거지를 끝낸 후 새로운 빨래를 돌리기. 고요한 마음으로 차를 한 잔 우리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기. 가만히 멍때리다가 아침 겸 점심을 차려 먹기.
그런 하루를 보내기 위해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음악이 필요하다. 다양한 곡에 빠지고, 싫증을 내고, 새롭게 반하며 발견한 음악들. 무사히 마음에 안착되어 곁에 없으면 마음이 허전한 음악들. 내가 꾸준히 듣고 있는 플레이리스트 세 가지를 소개한다.
[Playlist] 한가로운 주말 오후, 일상의 순간들 : 정재형 플레이리스트
아침마다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던 정재형의 피아노 곡 연주. 차분한 마음과 맑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귀한 플레이리스트다.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을 때 마음이 편안한지, 쭉 듣고 싶은지는 대부분 첫 곡에서 결정되는데 맨 처음에 흐르는 연주 곡 <오솔길>이 참 좋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찬찬히 둘러보며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높게 솟은 나무, 땅, 하늘, 새들에 눈길을 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수풀 사이로 햇빛이 드는 것 같은 느낌. 귀로 하는 산책. 그저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된다.
이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있는 해듬이의 나른한 표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재형 작곡가의 간결한 착장, 피아노 페달을 지그시 밟는 몸짓, 한 번씩 허공을 올려다보는 모습, 그런 연주자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담아내는 카메라,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그 빛을 듬뿍 받고 있는 식물들, 벽난로와 그 위에 걸린 앙리 마티스의 그림 역시 공간에 흐르는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Playlist] 나를 위한 시간, Ritual Life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 '오에니'에서 운영하는 플레이리스트 채널. 미니멀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려 클릭했다가 애정하게 된 채널로, 최애 플레이리스트는 이번에 소개하는 재즈 플레이리스트다.
영상 속에는 많은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 오직 도자기와 인센스 스틱만 등장한다. 스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은근한 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독서처럼 집중이 필요한 행위를 할 때 듣거나, 아예 느긋한 마음으로 향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멍때리기 좋다.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에 대한 채널 주인장의 댓글도 인상 깊다. "리추얼 라이프란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의례를 뜻하는 ‘리추얼(Ritual)’과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가 합쳐진 말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 브랜드가 제작하는 아이템과 추구하는 가치가 플레이리스트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주인장이 가꾸는 채널에 대한 호감이 브랜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검색을 해 보니 오프라인 스토어가 부산에 있었다. 부산 여행할 때 실제 공간에 방문해 보면 오에니의 감성을 더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Playlist] 브루노네 가는 길
'돌콩블루'라는 라이프 스타일 굿즈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채널. 눈을 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 영상이 핵심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플레이리스트는 비가 오는 날 운전하는 브루노와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날이 꿉꿉하거나 몸과 마음이 늘어질 때 들으면 기분이 전환된다. 운전석에는 브루노가, 조수석에는 부우가, 뒷좌석에는 안전벨트를 맨 우리들이 타고 있는 것이 콘셉트이다. 운전석에 앉은 브루노가 룸 미러로 뒷좌석을 거듭 살펴보고 조수석에 앉은 부우가 뒷좌석을 향해 초코칩 쿠키를 건네주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플레이리스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게다가 차에 태워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의 댓글까지 모여 귀여운 동물 친구들과의 드라이브를 완성시킨다. 힐링이 필요한 날 틀어 놓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플레이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