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은서 님.
벌써 5월이네요. 눈 깜짝할 새에 한 해의 삼 분의 일이 지나가 버렸어요.
3월에 기고하신 글에서, 지나오신 모든 3월이 늘 활기차고 경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하셨었죠. 이번 봄은 어떠셨나요? 날씨 좋은 어느 날, 벚꽃 잎들이 흩어진 거리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보셨으려나요. 그 순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The Strike의 ‘Soundtrack’이었으려나요.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은서 님을 그동안 쓰셨던 글들을 통해 상상해 봅니다.
사실 저는 바쁘고 정신없는 봄을 보냈답니다. 대학교 개강 후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그중에는 토플 시험 준비도 있었어요. 2월 무렵,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참여하고 싶은 국제화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토플 점수가 필요해서, 급하게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3월은 도전하기도, 도망가기도 좋은 달이죠. 정말 오랜만에 영어 공부를 했는데 언어에 특출나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시험은 잘 보고 왔답니다.
토플의 Writing 영역에서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쓰는 문제가 나와요. 그래서 한동안 달달 외운 템플릿과,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 낸 영어 단어들로 수많은 편지를 썼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들한테요. 그런데 시험이 끝난 지금은, 자유롭게 제 생각을 (무려 한국어로!) 표현하며 은서 님께 실제로 도착할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입니다.
은서 님의 소중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다 수프카레에 대한 오피니언을 읽고는 저도 모르게 살짝 미소가 지어졌어요. 왜냐하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은서 님에 대한 존경을 가득 담아 감히 비유를 해보자면요) 은서 님의 글은 수프카레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식사 메뉴를 고를 수 있었던 날의 사진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 번째 이유는 맑지만 깊은 맛이 나는 수프카레의 국물처럼, 은서 님의 글은 담담한 문체 속에 어떤 여운이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어려운 대상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는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진솔한 경험과 감상을 풍미 있게 공유해 주신다는 점이 정말 좋았어요.
다음의 문장들은 아트인사이트에 형광펜 기능이 있었다면 분명 제가 색칠했을 문장들이에요.
“특히 모네가 그린 하늘과 물의 풍경은 늘 잔잔한 듯 생명력을 전해주어서 하루만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묵화로 그린 것 같은 대사들, 그리고 대사를 뱉는 배우들의 담담한 톤이 일상의 어느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곤 한다.”
“그 가운데 이방인으로서 선 나는 숨은그림찾기에 들어온 것처럼 그곳에 스며든다.”
두 번째 이유는 다양한 토핑들이 올라가서 메뉴를 고르는 재미가 있는 수프카레처럼, 은서 님의 글에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전시, 음악, 도서, 방송, 영화뿐 아니라 광고까지 큐레이팅해 주신 글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광고는 평소에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덕분에 앞으로 마주치는 광고들에 시선을 보다 오래 두어 볼 것 같아요.
사실 제 글들은 몇 개 빼고는 다 공연을 다룬 글이에요. 저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지만, 공연만 보는 편식쟁이이다 보니 다른 분야의 글을 써보는 것에 선뜻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아트인사이트의 글들을 자주 읽으며 그동안 잘 몰랐던 문화예술들의 매력을 공부해가고 있어요. 그리고 은서 님의 글 또한 그러한 면에서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갑자기 든 궁금증인데,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시는 은서 님은 어떤 장르를 가장 애호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역시 연극과 뮤지컬을 가장 좋아해요. 그것들이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 하나는 ‘현장감’이에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를 바로 앞에서 직접 목격하는 것이 정말 짜릿하거든요. 그 순간에 배우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지고, 또 가끔은 제 자신이 무대 위에 펼쳐진 세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게다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기에 가능한 연출들도 흥미로워요. 예를 들면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이 극의 결말을 결정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의 역할을 부여받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매번 달라진다’는 점에 있어요. 배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무대는 계속해서 변하니까요. 하나의 캐릭터라도 그것을 연기하는 여러 배우들의 스타일이 각각 다르고, 또 날마다 추가되는 애드리브나 연기 디테일도 다르죠. 그런 차이와 변화를 관찰하며 하나의 이야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목도하는 것이 무척 재밌더라고요. 언젠가 함께 공연 이야기를 나누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은서 님의 여러 글들을 살펴보니,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말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점이 저랑 다르게 느껴졌어요. 저는 명료한 것에 안심을 느끼는 사람이라, 누군가 저에게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계속 의심하고 고민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모순적으로요, 정작 제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때는 직관적인 단어가 아닌 다른 말들로 그 마음을 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은서 님에 대한 존경과 내적 친밀감을, 저는 이렇게 표현해 보며 편지를 이만 마칠게요.
앞으로 은서 님의 글에 또 어떤 토핑들이 올라갈지 궁금해요. 늘 반가운 마음으로 음미할게요.
외젠 부댕의 <트루빌의 해변>처럼 청량하고 경쾌한 여름 보내시길 바래요.
임솔지로부터.
은지 님께,
은지 님도 잘 자셨나요?
밤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요즘이네요.
다행히 저는 한결 평온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길모퉁이를 향해 걸어가 보고 있답니다.
잠시나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p.s. ‘취향’에 대한 오피니언이요, 진짜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