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크게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한 TVA 시리즈와 1997년에 개봉한 극장판 두 편을 전부 포함하여 일컫는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제작된 리빌드 4부작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로 나뉜다. 편의상 전자를 ‘구작’, 후자를 ‘신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적도록 하겠다. 미리 밝혀 두자면 이 글은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모두 시청한 독자를 상정하고 쓰였다.
거대한 재앙 세컨드 임팩트 이후, 14세 소년 이카리 신지는 인류를 위협하는 사도(使徒)에 맞서기 위해 네르프라는 기관에서 거대 인형 병기 에반게리온을 조종하게 된다. 신지는 아버지 겐도와의 갈등, 동료 파일럿 아야나미 레이와 소류 아스카, 그리고 미사토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의 의미를 모색하지만, 싸움은 점점 인간 내면의 고독, 그리고 인류의 진화라는 철학적 문제로 확장된다. 여기서 구작은 인간의 고립과 구원을 심리적 · 종교적으로 해석하며 파멸적인 결말에 이르는 반면, 신극은 이를 재구성해 신지가 자기혐오를 넘어 타인과의 연결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작으로 마무리된다.

좌측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 우측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포스터
구작과 신극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각각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에반게리온 시리즈 특유의 정서와 주제 의식이 압축된, 에반게리온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전체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글에서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작품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되었고 내용과 연출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제법 설왕설래가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인데, 나의 입장을 굳이 고르라면 ‘호’에 가깝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오마주 격인 작품이고, 비슷한 주제 의식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두 작품의 공통점을 먼저 살펴보겠다.
1-1. 제목과 마지막
앞서 말했듯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은 각각 구작, 신극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을 제목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다는 점 또한 공통적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제목은 아주 정직하기 때문에 특별히 논할 것이 없다. 하지만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제목이 가진 의미에 닿기 위해서는 약간의 통찰이 필요하다.
우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통칭으로 사용되는 말은 ‘신에바’, ‘다카포’, ‘리피트’, ‘피네’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에바’가 공식 명칭에 부합하는 가장 깔끔한 준말이라 생각한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제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신극장판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신(シン)’이 맨 앞에 붙었다는 점이다. ‘シン’은 한국어와 비슷하게 ‘새로움’이라는 뜻의 단어 ‘新’을 읽는 발음이다. 나머지인 다카포, 리피트, 피네는 모두 제목의 끝에 붙은 기호 ‘:||’의 해석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다카포(Da Capo)는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의 음악 기호인데 ‘D.C’로 약기하기 때문에 :||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유는 공식 음반인 [One Last Kiss]의 수록곡 [Beautiful World (Da Capo version)]의 제목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Beautiful World]는 신극장판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서>의 주제곡이며 해당 음원은 그 어레인지 버전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와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인 리피트와 피네는 ‘:||’라는 기호를 분석하는 방식에 따라 나뉘는 명칭이다. 먼저 리피트는 ‘:||’를 있는 그대로 읽는 방식으로 ‘반복’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도돌이표라고도 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다카포와도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피네는 ‘:||’를 ‘:’와 ‘||’로 분리하여 해석한 명칭으로 동일 시리즈의 앞선 작품들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와 동일하게 ‘: ~’의 형식을 적용한 것이다. 즉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에서 ‘||’가 핵심에 해당한다. 그리고 ‘||’, 피네(Fine)는 ‘끝, 마침’이라는 의미의 음악 기호이다. ‘마지막 에반게리온’이란 속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마지막 작품의 제목을 왜 이토록 모호하게 설정한 것일까. 예로부터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즐기는 감독의 성향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이 모든 제목의 의미를 ‘전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2. 현실을 향한 메타 픽션
다음으로 살펴볼 공통점은 두 작품의 메타적 특성과 그것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두 작품은 모두 ‘에반게리온에 대한 에반게리온’이자 ‘픽션에 대한 픽션’, ‘허구에 대한 허구’이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2D(이야기)에서 3D(현실)로 전환되는 실사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살펴보겠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실사 구간(넷플릭스 기준 1:12:55 ~ 1:16:57)에는 극장에서 촬영한 관객들의 실제 모습이 담겨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인류보완계획을 발동시킨 신지가 보는 심상 이미지이자 주제 의식의 핵심이 담긴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이어진다.
자막 : 기분, 좋아? (마지막 대사인 '기분 나빠'와 대치를 이룬다.)
신지 : 모르겠어... 현실은, 잘 모르겠어.
레이: 타인의 현실도, 자신의 현실도 잘 파악할 수 없구나.
신지 : 행복이 어디 있는 건가, 모르겠어.
레이 : 꿈속에서밖에 행복을 발견할 수 없구나.
신지 : 그러니까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아무도 없는 세계야.
레이 : 그래, 꿈.
신지: 그러니까 여기에는 내가 없어.
레이 : 둘러대기 알맞게 만드는 일로 현실의 복수를 하고 있었구나.
신지: 안 된다는 거야?
레이 : 허구 속으로 도망쳐서 현실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신지 : 나 혼자만의 꿈을 보는 게 안 된다는 거야?
레이 : 그건 꿈이 아냐. 그냥 현실 도피야.
여기서 ‘꿈’과 ‘허구’를 지우고 ‘에반게리온’을 넣은 뒤 ‘레이’를 지우고 ‘안노(감독)’를 넣으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오타쿠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와 거의 비슷해진다. 즉, ‘방구석에서 에반게리온 좀 그만 보고 밖으로 나와서 현실을 봐라 이 오타쿠들아’가 이 작품의 주제 의식 되겠다. 참으로 도발적이고 기분 나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반게리온 오타쿠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실사 장면은 엔딩에 등장한다. 모든 에반게리온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신지와 마리의 모습이 현실의 풍경(감독의 고향인 우베 시에 있는 우베신카와 역) 속에 담겨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신지는 관객들이 이입하기 가장 쉬운 인물이자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관객들을 같은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에반게리온과 함께한 기나긴 여정을 끝마친 신지는 새로운 타자인 마리와 함께 또 다른 세계, 즉 현실 속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에반게리온의 감독이 관객들에게 바라는 모습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서는 픽션이 픽션임을 상기시키고 그밖의 현실을 이끌어 내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과 픽션을 둘러싼 현실을 돌아보게 하려는 시도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공통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가지를 요약하면 ‘에반게리온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두 작품이 ‘에반게리온’과 ‘마지막’을 정의하고 접근하는 방식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해석의 핵심이다. 이 글을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마지막이고, 끝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끝나고, 어떻게 마지막이 되는가.
2-1. 무엇이 마지막이고, 끝나는 것은 무엇인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에반게리온의 마지막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에반게리온’은 대체 무엇인가. 같은 에반게리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의 정의는 두 작품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에반게리온이 가지는 의미는 이전 챕터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꿈과 현실의 대비 속에서 드러난다. 다음은 위에서 인용한 대사의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대사이다.
신지 : 그럼 나의 꿈은 어디?
레이 : 그것은 현실의 연속.
신지 : 나의 현실은 어디?
레이 : 그것은 꿈의 끝이야.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서 꿈은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꿈과 현실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현실을 볼 수 없고, 현실에서는 꿈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사실 맞닿아있다. 우리는 현실을 통해 꿈을 꾸고 꿈을 통해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위의 대사에서는 이와 같은 사유가 함축되어 있다. 꿈을 말하며 현실을 가리키는 것. 그것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며 따라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끝맺고자 하는 에반게리온은 ‘꿈’이다.

이처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의 에반게리온(꿈)이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데 반해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에반게리온과 현실의 관계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신지와 겐도가 마지막 전투를 벌인 뒤 주요 인물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해당 구간에서는 계속해서 과거 회상이 이어진다. 어두웠던 삶에 희망을 비춰준 유이를 잃은 뒤 신지를 대하는 것이 두려웠던 겐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했던 아스카, 수없는 윤회 속에서 신지를 위해 살면서 의미를 찾고자 했던 카오루, 초호기 속에서 신지의 행복을 바라며 긴 시간을 기다려온 레이는 신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만나면서 퇴장한다.
그 뒤 신지는 마리와 함께 현실의 우베신카와 역으로 이동한다. 이때의 신지와 마리는 14세의 어린 모습이 아닌 28세의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신극장판 시리즈 고유의 설정과 관련이 있다.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파일럿들은 신체의 성장이 14세에서 멈추게 되는데, 이를 ‘에바의 주박’이라 한다. 과거의 주박에서 풀려나 현재를 되찾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신지의 모습은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서 끝을 맞이한 에반게리온은 ‘과거’이다.
사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은 24년 전에 만들어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오마주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미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개인사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소재인데,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온 그가 아내 모요코를 만나 안정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을 맞이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달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희망찬 결말은 감독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준다.
2-2. 어떻게 끝나고, 어떻게 마지막이 되는가
두 작품에서의 에반게리온이 서로 다른 것이라면 그것을 끝맺는 방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꿈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오타쿠들을 방구석에서 내쫓는다고 언급했다. 내가 이렇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이 작품 자체가 과격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이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겠지만, 개봉 당시 이 작품을 처음으로 극장에서 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직접 감상해 보면 알겠지만, 러닝타임 내내 뒤통수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속되는 살상과 전투의 잔인함, 난해하고 극단적인 전개, 그리고 세상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결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감독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에반게리온을 부수고 있다.

서드 임팩트로 파괴되어 가는 세상
그리고 이러한 파괴적 속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설정이 작품의 중심 소재이기도 한 대폭발, ‘임팩트’가 아닌가 싶다. 서드 임팩트로 인해 인류는 거대한 바다로 변하고 세계는 종말을 맞이한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세상의 끝으로 오타쿠들을 내몬 감독은 라스트 씬에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아스카가 자신의 목을 조르다 눈물을 흘리는 신지를 차갑게 올려다보며 막을 내린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엔딩 크레딧이 중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전반부인 25화와 후반부인 26화의 사이에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때문에 라스트 씬이 정말로 라스트 씬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면 “기분 나빠”라는 아스카의 마지막 대사로 한 대를 맞고 새하얀 배경 위에 너무나 선명하게 새겨진 ‘종극’이라는 글자로 한 대를 더 맞고 곧바로 암전되는 스크린과 함께 켜지는 조명으로 마지막 한 대를 맞게 된다(나도 직접 경험했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다음과 같이 호통을 치는 것 같다.
꿈 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에반게리온과 에반게리온을 둘러싼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부숨으로써 꿈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즉,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끝’은 ‘파괴’이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또한 파이널답게 이러한 파격성을 어느 정도는 보여주지만 근본적인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꿈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깨어나면 된다. 그렇다면 과거를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꿈이 환상이라면 과거는 지나간 것, 끝난 것이다. 이미 끝난 것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단 말인가. 끝난 것을 끝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끝난 것인가? 나는 여기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경유해 답을 도출하고자 한다.

TMI : 프로이트의 사인(死因)은 오랜 흡연으로 인한 구강암이다.
프로이트를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오늘날의 심리상담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무의식을 최초로 발견했는데, 정신분석이란 바로 이 무의식을 다루는 치료를 말한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먼저 ‘트라우마(trauma)’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을 말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원초적 장면(primal scene)’이라 한다. 환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발화하는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에 자리한 원초적 장면을 재구성하면서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행동이나 욕망이 단순히 과거와 유아기의 삶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결정론적 입장으로 자주 오해받는다. 그러나 ‘사건 이후(after the event)’는 어떤 경험이나 인상, 기억들이 이후의 새로운 경험들 속에서 변형된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원초적 장면은 현재의 관점을 통해 굴절되어 만들어지는 허구적 재구성물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시간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며,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
나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이러한 정신분석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트라우마의 본질적인 특성은 반복(재경험)이다. 과거의 사건이 무의식에 남아 계속해서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정말로 끝난 것이 아니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에반게리온에서 비롯된 괴로운 경험(트라우마)으로부터 회피하며 줄곧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던 신지는 레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초호기에 탑승하고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겐도와의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한다(참고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를 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대표적 트라우마이다).

3D 연출이 활용된 장면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은 심상 세계로 구체화된 마이너스 우주. 즉, 신지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다. 치열한 전투와 함께 신지의 과거를 상징하는 배경이 계속해서 전환된다. 아버지와의 문제가 무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신지는 아버지에게 대화를 제안하고, 겐도는 신지에게 ‘이매지너리’라는 존재를 보여준다.
‘에반게리온 이매지너리’. 가츠라기 박사가 예측한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가공의 에바다. 허구와 현실을 동등하게 믿는 생물, 인류만이 인지할 수 있지. 절망과 희망의 창이 서로 트리거와 제물이 되어 허구와 현실이 녹아 섞이면서 모든 것이 동일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의 인식, 즉 세계를 다시 쓰는 에디셔널 임팩트가 시작된다. 내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앞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에반게리온이 꿈, 혹은 허구라면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에반게리온은 과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둘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은 오히려 꿈과 허구를 통해서만 과거와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프로이트의 대표 저서는 『꿈의 해석』이다). ‘세계가 곧 자신의 인식’이란 말은 인간이 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관점에서 변형되며 허구적으로 덧씌워짐으로써 인간에게 인식된다. 과거는 현실의 일부이지만 지나간 것이기에 회고를 통해서만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현실과 허구가 중첩된 영역이다. 따라서 ‘허구와 현실이 녹아 섞이면서 탄생하는 정보’는 과거, 혹은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허구와는 달리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이 낳은 허구적인 과거는,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인간에게는 늘 진실이다. 인간의 정신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없다. 그저 억압될 뿐이며 그마저도 언젠간 돌아온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온전히 기억될 수도 없고, 항상 변화하는 현재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것. 이를 깨닫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다. 과거가 늘 현재와 함께함을 수용할 때 인간은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겐도는 이매지너리를 통해 자신의 소원(허구)을 현실화함으로써 유이를 다시 만나고자 했다. 그러나 신지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깨달은 겐도는 신지에게 용서를 구한 뒤 퇴장한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과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때의 신지는 마치 환자들을 치료하는 분석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이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신지는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신지 : 나도 에바에 타지 않는 삶을 선택할 거야. 시간도 세상도 되돌리지 않아. 그저 에바가 없어도 되는 세계로 다시 쓰는 것뿐이야. 새로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로.
레이 : 세계의 새로운 창생, 네온 제네시스.

이때 배경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구작)의 로고가 나타나 있다. 허구와 현실을 뒤바꾸고자 했던 겐도와는 달리 신지는 에반게리온이 없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시간도 세상도 되돌리지 않기에 에반게리온이 존재하는 기존의 세계는 그대로 남아있다. 신지는 단지 그곳을 떠날 뿐이다. 이는 ‘도망치면 안 돼’라는 대사로 상징되는 신지의 성격적 특성, ‘회피’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랑했던 이들을 제대로 떠나보내기 위해 스스로 진심을 건넸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거로부터의 탈피에 가깝다. 모든 이들과 이야기를 마친 신지는 마지막 계획을 감행하고, 곧이어 롱기누스의 창이 에반게리온 기체들을 관통하는 장면과 함께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등장한다.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
이 대사는 포스터에도 적혀있을 만큼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에반게리온을 떠나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에반게리온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파괴하려 했다면,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서 신지는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진지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과 ‘작별’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다소 충격적인 포스터 문구 ‘그러니까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역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의 다정한 인사와는 대조적이다. 포스터 외에도 이러한 이별의 정서는 주제가인 [One Last Kiss]나 [VOYAGER~日付のない墓標(날짜 없는 묘비)]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One Last Kiss]에 얽힌 비화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우타다에 의하면, 이전까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 제공한 악곡은 대략적인 줄거리만 듣고 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 곡은 대본을 직접 읽으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서 제작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타다는 2013년에 어머니 후지 케이코를 잃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을 오랫동안 앓았으나, 본 작품의 제작에 이르러서야 중요한 것은 슬픔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항상 가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해했다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새로운 세계에서도 에반게리온의 기억은 여전히 신지와 함께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베신카와 역의 성숙해진 에바 파일럿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단순히 기존 파일럿들의 환생체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레이와 아스카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에서 이미 사망한 카오루와는 달리 레이와 아스카는 멀쩡한 모습으로 신지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의 아스카, 레이, 카오루는 신지의 새로운 현실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고 본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의 완전히 파괴된 세계와는 달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서는 에반게리온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세계(허구)를 온전히 남겨두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현실)와 중첩시킨다. 그와 동시에 신지의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과거는 억압할수록 되살아나고, 말을 건넬수록 멀어진다. 괴로운 과거를 수용함으로써 그것의 주박으로부터 풀려나 진정한 마지막에 도달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간 신지의 이야기는 정신분석과 닮아있다. 우베신카와 역의 어른이 된 아이들은 신지의 남은 삶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신지가 성장하고, 늙어감에 따라 그들도 변해갈 것이다. 그렇게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