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렸다면 기억을 잃기 전과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혹은, 기억이나 정신은 동일한데 외형만 바뀌었다면?
이러한 질문들은 <이터널 선샤인>이나 <뷰티 인사이드>와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시작됐다. 과거의 나는 기억에 큰 변화가 있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구성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기억과 경험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뷰티 인사이드>에서 나타나는 외형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는 민지가 식물인간이 된 아빠의 의식을 로봇에 넣으면서 시작한다. 그전에는 쌓지 못했던 아빠와의 추억을 로봇 아빠와 함께 쌓으며 둘은 가까워진다. 죽은 사람의 기억 등을 복사해 다른 사람 혹은 로봇에 이식한다는 개념은 오랫동안 영화에 등장했던 소재다. 그렇기에 '로봇 아빠'라는 소재와 '아빠와 딸의 관계'라는 주제는 어딘가 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소재와 주제 가운데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잡은 탓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식상하기보단 풋풋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사람들이 로봇 아빠를 무의식중에 물건으로 호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 아빠는 자신의 의식을 로봇 속에 넣었다는 기술력에 놀라기보단 죽지 않은 사람은 서비스 대상자가 아니지 않냐고 물어본다. 민지와 함께 면접을 보던 다른 지원자는 민지처럼 로봇 엄마를 데리고 다닌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이 기술이 영화 속 세계관에 꽤 널리 퍼져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를 볼 때 ‘그것’, ‘저것’처럼 물건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니 ‘겉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빠와 딸이 함께 강가에 앉아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로봇 아빠의 도움으로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후, 아빠와 딸은 함께 앉아 노래를 듣는다. 딸은 아빠에게 이 날씨에 바람 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말하고, 로봇 아빠는 날씨가 그렇게 춥냐고 반문한다. 감각 기관이 없고 철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진 그에게 날씨는 더 이상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의 체온을 느낄 수도 없고, 제대로 안아줄 수도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추억할 때 그날 불던 시원한 바람, 발에 닿던 바닷물, 공원을 채운 꽃향기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포옹과 같은 신체 접촉뿐만 아니라 서로가 함께 있는 순간의 어떤 부분이 그에게는 공백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기억과 신체 중 기억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신체라는 것이 그러한 기억과 의식을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 아빠와 보내던 시간은 아빠가 깨어났다는 전화를 받으며 끝이 난다. 로봇 아빠는 결국 가동을 종료하게 되고 민지는 다시 예전의 어색한 아빠와 함께하게 된다. 로봇 아빠와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아빠의 퇴원길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서로 눈을 피하기 바쁘다. 그러나 집에 온 아빠는 로봇 아빠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이제 바쁘지 않으니 여행이나 가지 않을래, 하고 넌지시. 그렇게 영화는 관계의 회복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장일 것이다. 일명 띄어쓰기의 중요성이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로봇 아빠가 민지의 가방에 들어가 길을 나서던 것과 퇴원한 아빠가 조용히 회복의 손을 내밀고선 방에 들어가던 모습을 떠올린다. 나를 구성하는 기억과 신체가 달라지더라도,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