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2023년 발행한 "교육을 통한 혐오 표현 대응: 정책 입안자를 위한 안내서(Countering hate speech through education : A guide for policy-makers)"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12월 사이 트위터(현재 "X")의 혐오 표현 정책을 위반하는 트윗은 160만 건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에서 만연한 혐오는 가상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까지 빠른 속도로 전이되고 있다. 이는 일부 여론과 정책 입안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고 몇몇 정치인은 이념의 탈을 쓴 혐오로 많은 지지를 얻기도 한다.
이로써 '혐오의 시대'가 현시대의 주소임은 자명하다. 아직은 이렇다 할 돌파구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로부터 자신이 지닌 생각의 힘을 지키는 방법은 있다. 바로 이해와 공감의 회복이다. 혐오는 근본적으로 이해의 포기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이 누려왔던 혜택이 줄어드는 현상이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아닌, 권리의 박탈이라 여기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공생하고 있다는 전제를 간과한다. 몰이해와 공감 능력의 결여에서 출발한 증오심은 다른 집단을 매도하게 하며 이들은 구시대의 지위로의 복권을 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과 직접 대화해 설득하려 하는 일은 쉽지 않고 때로는 위험하다.
남형도 기자의 '남기자의 체헐리즘' 같이 사회적으로 차별과 핍박에 노출된 자리에 직접 찾아가 이해와 공감에 이르는 여정의 과정을 보여주는 미디어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혐오에 맞서지는 못해도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 혐오 정서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혐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고 간접적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곰곰출판에서 발간한 최은영의 『한국 영화의 안과 밖』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미디어 중 하나다. 이 책은 종종 영화를 보는 대중은 물론 연구자의 관심 밖에 놓이는 지역, 여성, 재난에 대한 서사에 주목한다. 연구자가 실제 현실 속에서 구조적인 차별을 겪고 있는 지역, 여성, 동물 등과 같은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의 서사를 밀도 있는 분석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의 확장에 일조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 영화의 안과 밖』을 통해 독자는 영화 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을 연구자의 시선을 빌려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 시선 밖에 놓인 존재와 사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연구자가 여성이라는 점도 상기하게 된다. 주변부로 밀려나곤 했던 여성이 주체가 되어 소외당하던 영역을 비평의 중심부로 소환한다는 점에서, 연구자의 당사자성이 더해져 큰 의미로 새겨지고 더욱 책 속의 논의에 빠져들게 만든다.
혐오의 시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영화를 봐야 할 이유
『한국 영화의 안과 밖』은 152페이지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내용이 각 부의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밀도 있게 전개된다. 우선 '1부. 전북 지역 영화의 안과 밖'에서는 전북 영화가 한국 영화 산업에서 갖는 역사적 위치와 의미를 설명한다. 1부는 영화 산업의 주변부라고 여겨지는 지역, 그중에서도 전북 지역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1부는 전북 지역이 특히 전쟁 당시 영화인들의 활동 무대이자 영화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는 극장을 보유한 문화 중심지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해당 대목을 통해 여전히 상당수 한국 콘텐츠가 서울을 주 배경으로 삼고 지방은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서사에 일부 편입된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지방의 서사는 수도의 서사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미디어의 서울 중심 세계관에 자주 노출되는 우리가 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책에서는 여기에 더해 전북 지역의 영화가 지닌 서사의 의미를 언급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북 지역이 배경이 된 <피아골>이 중앙집권적이고 강압적인 정부 검열에도 불구하고 당시 반공 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메시지를 담아냈다고 설명한다. 당시 반공 영화에 요구되는, 국군과의 직접적인 대립 구도와 같은 직관적인 공식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봉되지 못할 위기에 놓이자 <피아골>은 일부 재편집된다. 일면에서는 <피아골>을 반공 영화로서 훌륭하다고 평가하지만, 책에서는 빨치산을 적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인간으로 비추며 휴머니즘 영화로 나아갔다는 점을 강조한다.
'2부. 트랜스미디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는 여성에 대한 소문, 구술의 서사화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판사>에 관한 비평은 영화와 현실의 소문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여성 서사의 특징을 발견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에의 공감을 유도한다. 실제로 있었던 '여판사 변사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여성 감독 홍은원이 영화화한 <여판사>는 항간에 떠돌아다니던 여판사의 죽음에 관한 소문을 재구성한다. 여판사의 사인이 독살이라는 둥, 고부 갈등이 심했다는 둥, 남편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아내에게 열등감을 가져 앙심을 품었다는 등의 소문은 영화에서 핵심 플롯으로 탈바꿈된다. 시공간뿐만 아니라 소명되지 않은 진실과 상상을 <여판사>는 넘나든다.
영화의 주역인 여판사는 실제 사건에서는 희생의 대상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문제 해결의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감독 홍은원은 여판사가 고부 갈등을 해소하는 데 적극 참여시키며 그를 가정과 화해시킨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가정과 여성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사회라는 공간 사이에, 여성이 자리할 곳에 대한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저자는 <여판사>를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근거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여성이 소문과 영화에서 재현되는 방식을 체감하게 하는 트랜스미디어의 함의를 제시한다.
'3부. 경계를 횡단하는 재난'에서는 비인간 주체가 영화에서 재현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주 내용이다. 포스트 휴먼의 시대를 상상하고 그려내는 한국 영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자는 인간 외의 존재와 눈을 맞추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두 영화 <카우>와 <당나귀 EO>를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생명이 아닌 식량으로 살아가는 젖소 '루마'의 생애를 그려내는 다큐멘터리 영화 <카우>에 관한 분석은 텍스트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카우>에서 짧은 생을 도살로 마감하는 한 젖소의 삶을, 내레이션도 배제한 채 카메라는 좇는다. 젖소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가 마주치는 순간 젖소는 루마라는 이름을 얻고, 이때부터 뭇사람들의 삶과 분리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듯했던 소의 생애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동물권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 중 <카우>가 갖는 의미가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카우>가 이러한 비인간 주체에 대해 동정심을 초월한 공감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권을 다루는 작품들에 대한 비평을 다리 삼아 저자는 자연스럽게 포스트 휴먼 담론으로 넘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단순히 신체를 부품으로 교체됨에 따라 인간성에 관해 질문하는 것만이 포스트 휴먼의 특징은 아니다. 포스트 휴먼은 다양한 인간의 특징을 포용하고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공감에까지 이르며 모든 구분과 경계를 가로질러 진정한 공생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들은 포스트휴먼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가?
<서복>과 <정이>는 외양뿐만 아니라 내적인 행동 동기 등 포스트휴먼 재현에 있어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작품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복'은 인간의 모습을 한 포스트 휴먼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외양과 같은 인간,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정이'는 최고의 용병 '윤정이'의 뇌를 복제해 탄생한 AI 전투 용병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딸인 '서현'에 대한 모정까지는 제거하지 못한다. 한국 영화의 포스트 휴먼의 인간다움에 대한 희구나 성역할에 갇힌 재현 방식은, 결국 신체적 한계를 초월한 인간을 그리는 데 그칠 뿐 인간 다음의 인간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젖소 루마에게 이름을 주고 눈을 맞추는 것처럼, 포스트 휴먼을 상상할 때 현재의 인간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인간 외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 절실히 느꼈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외치는 와중에, 더 나아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이 결국 인간다움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퇴보일 뿐이다.
『한국 영화의 안과 밖』은 앞서 언급한 몇 가지 분석 키워드를 축으로 영화를 보는 시야의 사각지대를 밝혀준다. 시리즈 중 첫 번째로 발간되었지만, 저자의 주변부 서사를 포착하고 그것의 의미를 사회의 후속 시리즈를 기대하게 됐다. 이렇게 혐오의 시대에 가장 어두운 곳에 직접 찾아가 더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는 시도는 무척이나 귀하기 때문이다. 필터 버블과 확증 편향의 굴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사고를 해방하려면 결국 논리적이고 자발적인 고찰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스스로 시간을 내어서 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영화의 안과 밖』은 연구자의 시선에서 의미 있는 틀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특정 아젠다에 대해 가져야 할 구체적인 고민의 지점을 짚어준다. 혐오의 시대, 서로를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된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언제나 부족한 고찰의 시간을 저자는 이미 가졌다. 그 시간을 거쳐 갈무리한 내용을, 저자가 내어준 그 시간을 압축한 결과물을 시간을 할애해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