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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는 국악이 좋다. 현대 음악과의 퓨전이라면 더더욱 좋아한다. 목소리의 떨림, 북의 울림, 나팔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짜르르 올라오는 전율, 국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추임새도 제대로 즐기는 법도 모르는 젊은이라 직접 국악 공연에 가본 적은 없지만, 종종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공연을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꼭 국악 공연에 가봐야지, 가봐야지 다짐하던 중, 우연히 [아리아라리]의 공연 소식을 접했다. 친숙한 아리랑에 퓨전 공연이라면 20대인 나도 손쉽게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국립국악원 예악당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만족도 200퍼센트의 공연이었다! 상반기에, 아니 요 몇 년간 본 공연 중 가장 완성도 높고, 최고로 즐겁게 관람한 공연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는 이 전율을 75분 내내 느낄 수 있는 신명 나는 공연이다. 시작부터 객석 곳곳에서 출몰하는 인물들의 부산스러운 인사와 함께하고, 끝 또한 그들이 무대에서 객석으로 뛰쳐나와 배웅하며 마무리된다. 친근함에서 시작해 웅장함과 감동, 웃음을 주었던 [아리아라리]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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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친근함


 

국악 공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판소리를 생각하면 으레 ‘얼쑤!’, ‘지화자!’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공연과 하나 되는 관객이 떠오르곤 한다. 관객의 참여는 공연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현대의 공연 감상 예절을 배우고 실천해 온 나로선 때때로 이 특유의 흥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리아라리]가 좋았다. 공연자들은 추임새가 낯선 현대의 관객들을 위해 박수로 호응을 유도하고, 극은 웃긴 장면에서 ‘하하하’ 크게 웃어도 민망하지 않은 유쾌함을 유지한다. 흥겨운 공연자들과 관객이 함께 공연을 구성하는 국악의 멋을 살리면서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창법과 장르로 관객의 집중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치밀한 기획력이 느껴졌다.

 

흥겨운 장면은 판소리와 사물놀이, 각종 국악기와의 조화로 신명 난 소리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정선 아리랑을, 슬픈 마음을 표현할 때는 뮤지컬 창법과 피아노를 적극 활용해 단 한 순간도 공연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소리 극과 뮤지컬의 절묘한 조화다.

 

다양한 연령대를 겨냥해야 하는 가족 뮤지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마당 공연의 필요 요소인 박진감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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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우리가 돌아갈 곳


 

[아리아라리]의 팸플릿을 보면, 정선군과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이 공동 주최/주관을 맡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 굳이 팸플릿을 보지 않아도 공연을 다 보고 나면 정선이라는 지역이 이 공연의 중심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다. 이야기의 두 주인공, 신기목과 신아리가 출발한 곳과 돌아가야 할 곳 모두가 바로 아내/어머니인 이정선이기 때문이다.

 

극은 정선에서 나고 자란 두 부부의 결혼식으로 시작해 정선 아리랑을 메인 모티브로 삼아 진행되며, 정선의 명산인 가리왕산, 실제 존재하는 정선의 지역명인 유천리와 여량리가(현재는 여량면) 언급되는 등 정선이라는 고장에 뿌리를 내린 후 뻗어 올라간다.

 

한양에서 길을 잃으나 결국 고향이자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정선으로 돌아가는 신기목의 서사와 정선의 아리랑인 ‘아라리’에서 딴 이름을 가진 채 아버지를 고향으로 인도하는 신아리의 역할, 모두의 돌아올 곳, 모두를 기다리는 고향인 이정선의 존재감이 정선에서 뻗어나간 선을 정선으로 되돌려 멋진 원 모양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괜스레 정선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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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연출과 화려한 단체 공연


 

인상적이었던 몇몇 장면을 지나칠 수 없어 적는다. 정선의 실제 사진이 아니라 마치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는 듯한 수묵화를 배경으로 택한 점이 참 좋았다. 수묵화 배경뿐 아니라 색이 들어간 채색화 배경, 파란 천을 활용한 파도 연출, 사면으로 움직이는 배경 패널을 활용한 부분 컷 연출 등 색다른 데다. 눈이 즐거웠던 연출이 참 많았다.

 

특히 2장 ‘나무 베기와 일상’과 3장 ‘험난한 여정’에서의 무대 배경 연출이 압권이었다. 마치 실제 나무 같은 나무 기둥들이 천장에서 쑥 내려와 산속 배경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좋은 나무를 베어 넘기기 전 산신에게 의식을 치르는 장면의 신성함 또한 제대로 살렸다. 베어낸 나무를 싣고 한양으로 가는 길, 뗏목을 타고 거센 파도를 넘어가는 여정을 멋진 액션으로 살려낸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 깊었다. 그들의 뒤로 펄럭이던 푸른 천이 역동적인 파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어 연기가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가장 흥겨웠던 장면을 꼽자면 역시 4장 ‘경복궁 중수’다. 목수들의 중수 작업을 난타로 표현한 것이 신선했고, 불을 켜고 지붕을 올리는 연출은 사뭇 장엄했다. 북에 나무 소품을 덧입혀 실재감을 더한 것 또한 좋았다. 너무나도 흥겹고 화려한 난타 공연이라, 공연을 보는 내내 ‘난타를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스트레스로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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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으로, 우리의 소리로


 

이번이 첫 국악 공연 관람이지만, 앞서 말했던 국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몇 년 전, 국악의 기본 이론을 배우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의 교수님을 정말 좋아했는데, 늘 실제 공연에 가서 국악의 매력을 느끼라고 강조하셨던 게 기억난다. 교수님께 이것저것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제대로 가르침을 따르고 있지 못한 기분이라 괜히 부끄러워 다가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막막했던 첫 국악 공연으로의 문을 즐겁게 열어준 [아리아라리]가 참 고맙다. 이제는 지나가다 그 교수님을 뵈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교수님, 저 몇 년 전에 교수님 수업을 들었던 학생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감사 인사를 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의 소리가, 짜르르 울리는 전율이 그리울 때 가끔 국립국악원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아라리가 그리울 때, 정선의 오일장을 찾아가야지. [아리아라리]는 이제 정선군의 오일장마다(토요일 제외) 정선군 아리랑 센터에서 오후 2시 공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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