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는 삶을 사랑하기 위해 음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음식을 무시하는 사람은 과연 본인의 삶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삶에 애착이 있는 만큼,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찾는 욕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내 마음가짐이 건강하지 않을 때는 입맛부터 없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먹고 싶은 것도 없어져 그냥 잠만 자고 싶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찾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요리다.
내가 요리에 눈을 뜨게 된 건 네덜란드에 간 이후였던 것 같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 재료를 사기 위해 동네 마트나 시내에서 열리는 3일장 장터를 가기도 하고, 아시안 마켓을 찾아가기도 했다. 레시피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시도하다가 망쳐본 적도 많고, 처음 보는 식재료를 호기롭게 사와 써봤다가 운 좋게 성공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내가 가장 자주 해 먹던 음식은 샌드위치였다. 네덜란드의 마트 물가는 한국보다 살짝 저렴한 편인데, 특히 빵, 치즈, 햄 같은 식재료는 종류도 다양하고 훨씬 더 저렴하다. 마트에 처음 갔을 때, 이 식재료들로 마음껏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설렜다.
샌드위치는 마법의 메뉴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재료를 섞어가며 만들어 먹었고, 일주일 중 여섯 번은 샌드위치를 먹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두 가지 샌드위치를 소개하자면, 햄치즈 오이 샌드위치와 베이컨 샌드위치다.
햄치즈 오이 샌드위치는 이름에서 이미 재료가 다 드러난다. 마요네즈에 꿀을 조금 섞어 빵 양면에 바른 다음, 햄-치즈-오이 순으로 올리면 끝이다. 정말 간단하지만 맛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친구들에게 이 샌드위치를 만들어줬는데, 그 후로 우리 사이에서 작게 유행처럼 번져 매일같이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다.
베이컨 샌드위치의 포인트는 케첩이다. 빵을 살짝 구운 다음 마요네즈와 꿀을 발라주고, 버섯과 베이컨을 잘게 썰어 함께 볶는다. 볶은 재료 위에 케첩을 약간 뿌리고 치즈를 얹어 마무리하면 되는데, 한 입 먹으면 꼭 햄버거처럼 진한 맛이 난다. 수십 가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두 가지다.
포케도 자주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다. 원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생각해 시도조차 안 했는데, 어느 날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꺼내놓은 재료들을 보다가 ‘이거 다 포케 재료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본 포케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친구들에게 조금씩 재료를 빌려와 와사비와 마늘 후레이크까지 얹어줬더니, 한국에서 사 먹던 포케보다 훨씬 맛있었다.
먼저 그릇에 밥을 담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후, 한김 식힌다. 청상추는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얹고, 그 위에 냉장고 사정에 맞춰 준비한 채소들을 올린다. 나는 주로 양파, 오이(햄치즈 오이 샌드위치 때문에 늘 냉장고를 지키고 있었다), 베이컨, 옥수수캔, 방울토마토를 자주 사용했다. 한 입 크기로 썬 재료들을 보기 좋게 담아내고, 와사비·마요네즈·올리브오일·소금·후추로 만든 간단한 소스를 뿌리면 완성이다.
파스타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네덜란드에서는 파스타 한 봉지가 0.8유로 정도였으니, 가장 저렴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알리오 올리오 같은 원팬 파스타는 만들기 쉽고, 재료도 파스타면, 마늘, 올리브오일, 페페론치노 뿐이어서 자주 해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파스타는 버섯 토마토 루꼴라 파스타였는데, 까르보나라나 라구 파스타처럼 이름부터 복잡한 메뉴에 비해 훨씬 만들기 쉬웠다. 지금 한국에 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루꼴라 가득 담긴 파스타다. 루꼴라가 가득 들어있는 한 봉지 가격이 겨우 1유로도 안했는데, 한국에서는 10가닥 남짓 들었는 한봉지가 5천원이나 하니깐, 마음편히 사 먹기 어렵다.
건강하고 좋은 재료들을 사다가 재료를 다듬고, 요리 레시피를 정독한 후 ‘맛있게 만들어져라’라는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하면 우울했던 내 마음도 금새 돌아온다. 요리를 하는 그 시간동안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오직 나를 위한 요리를 먹을 때면, 그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어느샌가 우울감은 다 잊혀진 채, 내일은 또 어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곤 한다.
요리는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그리고 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