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로 알려진 벤야민의 이야기 선집. 철학자가 쓴 이야기들이라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나 같이 재밌으며 ‘철학적’으로 강렬하다.
꿈과 몽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으로 이뤄진 각각의 테마가 따로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묘한 특징이 있다. 모두 다 전형적이지 않고, 고착화되지 않으며 즉흥적이라는 점에서 생동감이 넘치게 느껴지는 한편, 깨어나고, 끝나고, 지나간다는 점에서 모두 고독한 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꿈과 몽상 파트는 독자를 어느 상인한테서 ”이 열쇠들 중 네가 써도 되는 건 아래층 것들뿐이라는 것은 너도 잘 알겠지. 위층에 올라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p.25~26)라는 말을 들으며 열쇠를 받아 든 아이의 심정이 되게 한다. 올라가지 않아도 계속 생각날 것이고 올라가면 거기에 있게 되니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다.
꿈과 몽상은 그런 방식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다. 곳곳에 서술된 꿈의 세계는 지구가 달의 위성이 되는 등 질서와 무질서마저 섞여서 나타나는데, 생생한 묘사로 꿈의 위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꿈과 몽상이 지겹지 않은 건, 그것이 전부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나까지. 꿈속의 그리움도, 슬픔도, 강렬한 순간도 모두 나에게서 비롯됐다는 점, 그것이 꿈을 여전히 꿈답게 만든다. 벤야민의 꿈과 몽상도 전부 꿈답고 몽상답다.
여행 파트서부턴 이야기가 스쳐가는 단상에서 벗어나 이야기다운 골조를 갖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 <고독의 이야기들>처럼 나를 화자로 삼아 떠났던 곳으로 돌아간 사람과 자신이 목적지에 와있다는 걸 모르던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하고, <흙먼지로 흩어져버린>, <마스코테호의 항해>의 경우처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선인장 울타리>의 경우 내가 화자로 등장하지만 중심인물, 이야기 속에서 길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브라이언이다. 제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교훈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된다는 건 그 사건이 누군가 겪은 일이라는 가상의 실체를 획득하게 함으로써 이야기에 탄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타인을 향하는 전달이기에 이러한 탄력은 필수적이다.
가장 재밌었던 파트가 놀이와 교육론이다. 그가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했던 걸 알게 되어 놀라기도 했고, 아이들이 단어를 가지고 여러 문장을 만들어내거나 그가 제시한 수수께끼인 난제들도 재밌었지만 역시 묘미는 도박에 관해 다룬 <행운의 손>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되고 있다는 특징과 교훈을 준다는 점도 좋지만 이야기의 앞과 뒤가 묘하게 연결되는 점이 훌륭한 이야기다.
이 42편의 이야기집에는 몇몇 책에 관한 벤야민의 서평도 실려있다. 서평은 그가 주목했던 테마를 이야기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탐구해 갔는지를 보여준다. 기차를 신화로 비유한다든지, 저자의 한계를 짚으며 시대의 사조를 새롭게 조명한다든지 하는 비평 실력 자체도 뛰어나서 놀랍지만 이야기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만의 시각이 담겨 있어서 좋다.
가령 놀이와 교육론 파트에서 벤야민은 교육에 대해, 아이가 어른이 되도록 돕는 게 아니라 아이가 아이다움을 계속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을 ‘현대인의 감수성’에 길들이게 하는 것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괴물담 등에 담긴 거짓과 과장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게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여러 책들을 비판하고 칭찬한다.
그가 단순 재미를 위해 그 주제들을 이야기로 만든 것 이상으로 학술적으로는 어떻게 매진했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말하자면 이야기와 해설을 동시에 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구분이 뚜렷하면서도 구분할 수가 없이 총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