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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위로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예술 - 뱅크시 : Still Here [전시]

뱅크시라는 동사(Verb)

by 백승원 에디터
2026.08.15 15:14

뱅크시_Still Here_포스터_260619.jpg

 

 

대학 시절, 현대미술 교양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의 시작은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고전이 되어버린 마르셀 뒤샹의 샘(1917)에서 미약하게나마 현대미술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흔히들 어느 작품과 장면을 두고 현대미술 같다고 하는 건 비아냥에 가까워진 지 오래다. 캔버스에 점만 딸랑 있는 작품이 경매에서 고가로 팔린다는 사실이 단번에 이해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와 같은 선상에서 결국 지금의 예술은 어떤 맥락 안에서 관람객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면 그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실적이거나 아름다운 미학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이미 사진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그래픽, 나아가 AI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수업의 후반부에서 만난 뱅크시는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예술과 범죄의 사선을 넘나드는 이 얼굴 없는 예술가는 직관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명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쩌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까지가 그의 예술이자 메시지일 수 있겠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체 모를 예술가가 남기고 사라진 그림에서 우리는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유머, 최상급의 공감



유머는 고도의 지능을 발휘한 설득이다. 흔히들 코미디언의 천재성을 언급하곤 한다. 개그의 3요소는 공감, 반복, 반전이다. 순간 허를 찌르는 공감이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그것이 반복되면서도 어느 순간 반전의 타이밍을 잡을 때 웃음은 배가된다.

 

 

Love Rat_Banksy.jpg

 

 

뱅크시의 연작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개그의 3요소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가령 「러브 랫(Love Rat)」 연작이 있다. '러브 랫(Love Rat)'이란 영어권에서 '연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배신자'를 의미하는 속어로, 표면적인 'Love'의 상징성과는 동떨어진 단어다. 심지어 그림 속 쥐가 그린 하트의 붉은 페인트는 마치 상처에서 흐르는 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이는 낭만적이고 달콤해 보이는 사랑의 허상, 그 이면에 숨은 상처, 고통, 거짓, 배신을 드러낸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선을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늦기 전에 떠나라(Get Out While You Can)」, 「Welcome to Hell(웰컴 투 헬)」 등 그의 작품에는 쥐가 자주 등장하며, 도시의 가장 낮은 계급인 쥐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는 아이러니가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뱅크시는 「러브 랫(Love Rat)」을 언급하며, '쥐는 허락 없이 도시를 누비며, 미움을 받고 쫓기지만 도시 전체를 굴복시킬 힘이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는 뱅크시 본인을 떠오르게 한다. 시궁창이 어울리는 쥐가 붓을 들고 벽에 흔적을 남기듯, 예술계의 체계를 벗어나 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느 예술가의 삶이 그려진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RAT'을 다시 놓고 보면 'ART'가 보인다.

 

 

Laugh Now_Banksy.jpg

 

 

이와 같은 결에서 「지금은 웃어라(Laugh Now)」도 분노 대신 유머를 택한 뱅크시의 페르소나다. 침팬지는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과 함께 유인원으로 구분되며, 그중에서도 유전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존재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과 비교해서는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지금은 웃어라(Laugh Now)」의 침팬지는 '지금은 웃어라,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지배할 것이다(Laugh now, but one day we'll be in charge)'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침팬지가 가리키는 대상 또한 이중적이다. 현재의 계급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복의 메시지일 수도 있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객관화 없이 인간을 흉내 내는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먼저, 웃는다. 공공재라는 벽에 과감하게 그려진 그림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뱅크시식 유머에 박장대소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질문하기 때문이다. 정말 이 작품을 보고 웃을 수 있는지 말이다. 누군가는 이 질문에 더 명쾌한 해답을 얻고 웃으며 떠날 것이다. 다만, 맘 편히 그의 유머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뱅크시 당했다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당일 뱅크시의 2006년작 캔버스 유화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가 약 104만 2천 파운드(당시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낙찰과 동시에 액자 내부에 숨겨져 있던 파쇄기에 의해 작품이 잘려나갔다. 뱅크시는 이에 작품명을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로 다시 명명했다.

 

 

Girl with Balloon_Banksy.jpg

 

 

경매장은 순식간에 뱅크시의 무대가 되었다. 이는 예술을 그 자체가 아닌 돈과 투기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본주의 경매 시장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었다. 본의 아니게 뱅크시에게 뒤통수를 맞게 되는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뱅크시 당했다(We got Banksyed)'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의 의미와는 반대로 작품을 파쇄하는 퍼포먼스가 이슈화되면서 상황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3년 뒤인 2021년 같은 소더비 경매장에서 해당 작품이 기존 낙찰가의 약 18배에 달하는 1,858만 파운드(한화 약 300억 원)에 거래된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작가의 저항마저 편입될 만큼 자본주의 미술 시장은 거대하다는 평을 내리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뱅크시조차 자본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메시지는 자본의 논리조차 설득했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곧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도 뱅크시 당했다(Even Capitalism got Banksyed)'. 뱅크시는 그 자체로 동사가 되어 여전히 예술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아래로부터의 예술


 

예술은 위로 받지 못한 자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_Banksy.jpg

 

 

예술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권위와 뗄 수 없는 관계여서 하나의 작품성으로서도 인정받지만, 그보다는 그것을 만든 사람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기도 했다. 뱅크시는 이 헤게모니로부터 철저히 분리됨으로써, 사회적 배경과 인구학적 특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물론 현재까지도 뱅크시 찾기 열풍으로 인해 그의 존재가 어느 정도 특정되기도 했으나, 오히려 그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을 작품이 더 선명해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올봄 백상예술대상에서 연출상을 받은 『미지의 서울』 박신우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쓸모가 없으면 도태되는 세상인데, TV 드라마는 가장 의지할 곳 없고 외롭고 어디 갈 시간도 없고 돈을 내고 무언가를 볼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존재해야하고, 그게 '드라마의 쓸모'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박신우 감독의 말에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도 있고, 흥미와 자극으로 생각을 지워버리는 예술도 있다. 어느 것이 중하냐 묻는다면 둘 다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답하고 싶다. 여전히 '고상한 예술'을 알고 싶다는 지적 허영심이 있는 한편, 진흙탕에 뛰어들어 헤집는 '날것의 예술'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 또한 있다. 때로는 자본에 저항하고, 어쩔 수 없이 그것에 편입되어 서로를 이용하게 된다.

 

박신우 감독이 말한 '드라마의 쓸모'와 뱅크시가 벽에 새긴 위로와 불편함은, 결국 같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예술이 있다면, 반대로 가장 낮은 자리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예술도 있어야 한다.

 

뱅크시는 알고 있을까. 지구 정반대편에서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래’를 향해 기꺼이 다가온 당신의 예술에 울고 웃는다는 것을.

 

 

 

컬쳐리스트_백승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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