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훔친 거 아닌데요?
<도둑맞은 미술관>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물론 내가 훔친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 보니 어쩐지 나까지 도난당한 미술품을 찾는 일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유명한 그림들이 어떻게 도난당했고, 범인들은 어떻게 작품을 훔쳤는지를 알아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단순한 미술품 도난 사건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품 도둑질은 마약 밀매, 자금 세탁, 무기 암거래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큰 범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술작품일수록 높은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미술품과 유물에 대한 대규모 약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도난당한 작품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훔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작품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이른바 '장물아비'라는 비밀 수집가들이 존재했고, 작품을 둘러싼 소동이 잠잠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숨겨두었다가 은밀하게 거래하기도 한다. 너무 유명해져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작품을 파괴하거나 협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모든 도둑이 돈을 목적으로 미술품을 훔친 것은 아니었다.
2부 ‘되찾은 미술품’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화장실에 두고 간 걸작들’이라는 이야기였다. 도둑들은 건물 뒤편의 강철 문을 세게 들이받거나 여러 차례 공격해 강제로 침입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마거릿 필킹턴 전시실에서 작품을 훔쳐 갔다.
영국 맨체스터, 휘트워스 미술관 추정 가치 800만 달러에 달하는 도난 작품 중 <레 미제라블>, 파블로 피카소 1903년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미술품 도난 사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며칠 후 익명의 제보를 통해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공중화장실에서 도난당한 그림들이 발견됐다. 마분지로 된 원통 안에 그림들이 들어 있었고, 그 옆에는 짧은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우리는 이 그림들을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안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럴 거면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훔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철 문까지 부수고 침입한 사람들이 그림을 챙겨 달아난 것이 아니라, 결국 공중화장실에 작품을 두고 갔다는 결말도 황당했다. 약간 손상된 작품들은 곧바로 복구되어 미술관으로 돌아왔고,범인의 정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미술품 도난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돈을 위해 훔치고, 누군가는 소유하기 위해 훔치지만, 이 사건의 범인들은 미술관의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리기 위해 작품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물론 실제 의도가 정말 그것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 작품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범죄 수법이나 도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미술품의 가치’였다.
나는 미술품이 소중한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옛 화가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 그렸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오래된 작품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술품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더 컸다.
도둑맞은 미술품과 유물은 우리가 직접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보여준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 창의성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삶과 관점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결국 미술품 한 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비싼 그림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과거의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미술품이 도난당했을 때 도둑들이 우리 모두에게 끼치는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작품의 가격은 숫자로 표시할 수 있지만,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의미,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험까지 가격으로 매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 대부분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집에 걸려 있을 수도 있고, 이미 파손되었을 수도 있다. 범인이 작품의 행방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서 그 비밀까지 함께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도난당한 뒤 아직 찾지 못한 미술품 목록만 약 2만 5,000점에 달한다.
<도둑맞은 미술관>은 1부에서 아직 되찾지 못한 미술품을, 2부에서는 도난당했지만 다시 돌아온 미술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50가지 주요 미회수 작품의 목록도 소개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누가 그림을 훔쳐 갔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오히려 “그 그림들은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남았다.
그래서 이제는 도난당한 미술품을 되찾는 일이 단순히 그림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의 한 조각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제목을 떠올려본다.
제가 훔친 거 아닌데요?
그래도 이제는 그냥 남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