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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강도 경쟁 사회에서 다양성과 인정의 사회로 가는 길 [문화 전반]

김예슬의 자퇴 선언에서 푸코의 ‘존재의 미학’까지, 존엄을 되찾기

by 신동하 에디터
2026.08.16 14:58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세계 10~12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춘 선진국에 진입했다. 절대적 빈곤이나 기근에서 벗어난 지 오래며, 가족 관계 역시 타국 대비 상대적으로 화목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행복의 질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OECD 회원국 중 행복지수는 수년째 최하위를 다투며, 전 세계로 대상을 넓혀도 바닥을 면치 못한다. "가난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발전주의적 신화가 완벽히 파산한 셈이다.


정부와 연구 기관의 조사 결과를 재분석해 보면, 한국인이 겪는 극심한 불행의 뿌리에는 물질적 결핍이 아닌 ‘긍정적 자기관계(자긍심 및 자기 긍정)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자아존중감을 단단히 파괴하는 핵심 기제가 바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시’다.


서울여자대학교 문성훈 교수(현대철학)는 서양 인정철학의 유산을 끌어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불행의 본질이 만연한 무시 문화와 이를 떠받치는 서열화 구조에 있음을 정면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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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철학과 한국 사회의 '무시의 그물망'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생존만을 도모하는 존재가 아니다. 서양 현대 사회철학의 중요한 한 줄기를 형성하는 ‘인정철학’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존중받고자 하는 근본적 욕구, 즉 ‘인정’을 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철학적 논의의 물꼬를 튼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 W. F. Hegel)은 『정신현상학』에서 인간 자의식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며 '인정투쟁'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은 타자에게 자신의 주체성과 가치를 승인받기 위해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하며, 이 인정투쟁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이라는 진단이었다.


이러한 헤겔의 통찰을 현대 비판이론으로 발전시킨 악셀 호네트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3가지 형태의 인정(사랑·법적 권리·사회적 연대)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 인정의 틀이 부정당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인 ‘무시’에 주목했다. 인정철학의 시각에서 무시란, 타인을 대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고 특정한 서열이나 기준의 하위로 치부하여 그 존재적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다. 무시는 단순한 기분 상함을 넘어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파괴하고 사회적 모멸감을 낳는다.


 

"한 연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에서 가장 취약한 게 무엇이냐' 물었을 때 1위로 나오는 것이 바로 '긍정적 자기관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합니다.


이걸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딱 바라보면 답이 바로 나옵니다. 바로 사회 속에서 겪은 '무시의 경험' 때문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경험보다 무시당하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무시당한 사람은 결코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무시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학벌, 학력, 외모, 키, 거주지, 직업, 재산은 물론, 최근에는 출신 국가나 인종까지 무시의 잣대로 활용된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 그물망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사회 전체가 무시의 체계 속에 갇혀 있어 그 누구도 이 그물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더 심각한 대목은 무시를 당한 개인은 그 자리에서 정당하게 항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가 상대의 서열 기준(돈, 스펙 등)을 내면화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가슴속에 쌓인 억울함과 모멸감은 건전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 나보다 약해 보이는 제3자를 찾아 다시 무시함으로써 분풀이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 상처가 내면으로 축적되면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변질되다. 최근 청소년층의 자해 유행, 사회적 고립(히키코모리), 타인을 향해 폭발하는 묻지마 폭력 등 극단적 사회 병리 현상은 무시의 모멸감이 한계점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누군가 나를 무시했다고 해서 그 무시의 경험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무시의 경험은 연쇄적으로 또 다른 무시를 낳게 됩니다. 내가 무시를 당하면 가슴속에 억울함과 모멸감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보다 강하거나 서열이 높으면 그 자리에서 정당하게 항의조차 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 쌓인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보다 약해 보이는 제3자를 찾아가 다시 무시하며 분풀이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무시당한 억울함을 남을 무시함으로써 해소하려다 보니 사회 전체에 무시가 끝없이 번져나가는데, 저는 이러한 상황을 '무시의 무한 분열' 메커니즘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사람의 가치를 획일적 서열을 통해 규정하고 부품화하는 사회 구조에 정면으로 파문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10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김예슬 씨의 자퇴 사건이다. 당시 그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대학을 떠났다.


 
"김예슬 씨의 선언은 단순히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자퇴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경쟁하기 싫다. 이 사회와 자본이 요구하고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그 우수한 상품이 되어, 타인에게 간택받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 사회와 대학이 정해놓은 거울에 나를 맞추는 식의 삶을 이제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만의 다른 삶을 살겠다'라는 단호한 고발이자 결단이었습니다. 유년기부터 스펙을 쌓고 경쟁에서 이겨 자본에 잘 팔리는 유용한 상품으로 간택받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서열 체제 자체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자본과 사회가 정해놓은 '유용한 상품'으로 간택받기 위해 유년기부터 스펙 쌓기와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삶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대학마저 진짜 학문과 역량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자본에 잘 팔리기 위한 자격을 시험하는 '자격증 장사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학내외에서 큰 찬사와 동시에 "철없는 행동", "경쟁 탈락자의 핑계"라는 차가운 외면과 냉소를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문성훈 교수는 이 사건이야말로 무시를 양산하는 사회적 서열 체제에 대한 주체적 거부이자, 타인의 시선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단호한 선언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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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존엄성의 회복… 획일적 잣대를 넘어서는 철학적 시선


 

문성훈 교수는 획일적 서열 체제 아래서 신음하는 개인들에게 "결단코 당신의 탓이 아니다"라는 위로와 확신을 건네며, 서양 지성사를 관통하는 철학적 전통을 연대순으로 짚어내며 인간 존엄성의 근본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 출발점은 성서의 창세기 전통과 르네상스 휴머니즘에 닿아 있다. 성서에서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의 형상에 따라 지었으나, 이는 신의 물리적인 외형이 아니라 대상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의지'의 부여를 의미했다. 세상을 창조하기 전 그 어떤 외부의 제약도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했던 신처럼,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 역시 정해진 삶의 궤적을 고분고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뜻에 따라 삶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존엄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특정한 삶의 모습을 일률적으로 정해두지 않고 자유를 허락했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는 필연적으로 다채롭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벌이나 금전이라는 단 하나의 획일적 척도를 세워두고 모든 인간에게 한 가지 방향의 삶만을 강요하는 서열화 사회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와 존엄함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구조적 폭력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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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존재의 가치는 20세기 초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이르러 개개인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고유함으로 확장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주 사소한 존재조차 그 하나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온 우주의 조건과 수많은 관계망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야만 한다. 하물며 하나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모와 가족, 사회적 역사와 자연, 나아가 우주 전체가 오직 그 지점에서 유일무이하게 결합하여 탄생한 우주적 걸작이다.

 

나아가 20세기 후반 미셸 푸코는 '존재의 미학'을 통해 이러한 고유함을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푸코는 인간의 삶이 사회나 자본의 요구에 발맞추어 규격화된 '상품'으로 정돈되는 현실을 경계하며, 정해진 정답이나 모범답안이 없는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 작품'처럼 스스로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 작품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타인의 평가 기준이나 규격화된 제작 방식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창작자의 고유함과 개성을 담아내기 때문인 것처럼, 인간의 삶 역시 외부의 간택을 기다리는 상품이 아닌 자신만의 예술적 창작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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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강도 경쟁'에서 '저강도 경쟁(다양성) 사회'로의 전환


 

문성훈 교수는 이러한 구조적 개혁을 위해 한국 사회를 현재의 '고강도 경쟁 사회'에서 '저강도 경쟁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시와 서열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인에게 자아성찰이나 마음가짐을 바꾸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의 경험'을 제도적으로 확충할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재조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성훈 교수가 직접 개념화한 '고강도 경쟁 사회'란, '돈(금전)'이라는 단 하나의 재화만 획득하면 학벌, 권력, 명예, 건강, 사랑은 물론 심지어 종교적 구원까지 모든 사회적 재화를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막대한 헌금을 내거나 사찰 대웅전 불상 바로 옆에 거액의 등값을 내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들 만큼, 돈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금전만능주의 사회가 바로 고강도 경쟁 사회의 본모습이다.


이때, ‘돈’이라는 하나의 기준이 다른 모든 가치를 통합해 버리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5,000만 명 전체가 오직 그 목표만을 향해 달리게 되며 이 과정에서 경쟁은 극도로 치열해지고, 실패자에게는 심각한 모멸감과 부정적 자아상이 남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가치가 독립적으로 인정받는 저강도 경쟁 체제가 갖춰질 때, 비로소 타인을 획일적 서열의 잣대로 무시하지 않고 개개인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긍정적 자기관계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돈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니라, 가치가 다변화된 '저강도 경쟁 사회', 즉 다양성 사회가 되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물론 가치가 있지만, 리더십이 뛰어난 것, 정의감이 있는 것, 예술적 감각이 있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등 수많은 가치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된 재화로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내가 비록 학업 성적 경쟁에서는 밀렸을지라도 리더십이나 정의감의 영역에서는 사회적으로 높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지향하고 소망하는 가치가 다채로워지면 한곳으로만 쏠리던 경쟁이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완화됩니다.


특정 영역에서의 열세가 인생 전체의 실패나 열등감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보고 서열화로 인한 무시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이번 자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한 '길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전문단체 '아트다락'과 쌍문동 카페 '숲오'가 협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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