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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시공간 너머의 대화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도서]

역사 애호가가 마주한 영원의 찰나

by 손수민 에디터
2026.08.16 14:10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의 역사 사랑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많은 아이가 그렇듯 유년기의 나는 다양한 박물관이나 역사적인 장소, 유물 등을 직접 보고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다만, 나는 그렇게 경험한 ‘역사’에 아주 큰 매력을 느꼈고 어느새 스며들어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그렇게 성장한 한 명의 역사 애호가가 이 책을 접했다. 유물과 대화하며 기록한 사진과 그 과정에 대한 글이라는 점은 더없이 나에게 매력적인 부분으로 다가왔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

 

 

이 책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 사진작가 서헌강'이 포착한 이야기와 그 과정을 담고 있다. 공간과 사람, 유물, 삶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시간이 품어온 한국의 숨결을 기록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독자가 아니라 그 사진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역사 애호가로서 나는 유적지에 방문하거나 박물관에 가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즐긴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일정이 잡혔을 때부터 신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장소에 방문했을 때 사진을 찍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기보다는 눈으로 담고자 한다. 이 공간을 온전히 눈으로 담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특정 장소나 그 공간을 연출한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느낌에 압도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사진으로는 전하기 힘든, 그 공간과 그 구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으면 나는 사진을 찍는 그 짧은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사진을 찍기를 포기했던 이유가 단지 내가 생각했던 이유만이 아니라 사진에 담아내고 싶은 만큼의 이야기를 내가 찍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언젠가 더 사진을 잘 찍게 되고 좋은 성능의 도구를 가지게 된다면 내가 깊은 감명을 받고 전하고 싶은 공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 


 

책 229p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있다.

 

결국 사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이다. 그렇다면 '시선'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삶의 경험과 감정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고유한 관점과 철학이다.

 

사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성을 아주 어릴 적에 크게 느낀 적이 몇 번 있다. 유년기 시절에 다양한 박물관과 문화유산, 유적지들을 보면서 엄청나게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던 곳이 있다. 그런 장소들은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고, 나로 하여금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시선의 중요성을 느낀 공간은 경주에 있는 '석굴암'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일 때 방문했는데 아버지가 나를 번쩍 들어 본존불상의 머리가 정확히 뒷 벽에 있는 두광(머리 뒤쪽의 커다란 원형 장식)의 중간에 위치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셨었다. 그렇게 불상을 바라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른 구도에서 바라봤을 때와는 달리 그 높이에서 정확히 바라봤을 때 포착할 수 있는 그 느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날을 떠올려도 아직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석굴암 본존불상.jpg

 

 

또 다른 공간들로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회랑)'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종묘’를 꼽을 수 있다.

 

사유의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릴 적에 역사 수업에서 본 곳이다. 전사자 명비에 빼곡하게 새겨진 이름들에 압도당하고, 팔만대장경의 장수와 해인사의 위치 선정 때문에 놀라고, 고요하게 눈이 덮인 종묘의 겨울 모습에 감탄만을 내뱉으며 한동안 멈춰 있었던 순간들은 석굴암의 본존불상처럼 나에게 아주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사비 회랑 01.jpg

 

겨울 종묘 01.jpg

 

 

가장 최근에 방문한 사유의 방은 친구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했다가 보게 된 공간이다.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넓은 방 안에 반가사유상 두 개가 고요한 침묵 속에 있는 모습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그 불상들을 보고 느낀 점들에 잠시 지배당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자연스레 엄숙하고 단정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내 경험과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문제나 글도 반복해서 보면 또 다른 시선에서 보이듯이,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갔을 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겠다고. 그리고 이미 가봤던 장소더라도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고.

 

 

 

사진 = 생각의 타임머신 


 

사진은 멈춘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춘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도구이지만, 한편으로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끄집어내서 지금의 나를 반추하게 한다. 그래서 사진은 대상 그 자체보다 그것에 깃든 시간의 흔적을 포착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163p)

 

지금 내 앨범 속에는 직접 찍었던 사진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몇 개 있다.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부터 가족들끼리 산책을 하다가 찍은 사진들까지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그 순간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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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은 사진들은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그 순간의 찰나를 담아내는 것임과 동시에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상황과 느꼈던 감정, 했던 이야기 등을 종합적으로 떠올리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

 

그래서 나는 작가가 쓴 위의 문장에 동감한다. 내가 경험한 한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과 달리, 문화유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까다롭고, 그만큼 큰 책임감이 따르는 작업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품은 이야기들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서헌강 사진작가의 노고가 더욱 크게 다가왔고,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또 사진이라는 것은 눈으로 본 무언가를 온전히 담아내기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눈앞에서 아름답다고 느꼈던 풍경이나 사물도 막상 사진으로 남기고 나면 그때의 색감이나 분위기, 감동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단순히 문화유산의 외형을 아름답게 촬영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온 역사와 의미, 그리고 각 문화유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까지 사진 한 장에 담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책 속에서 한 장소를 수없이 다시 찾고, 원하는 순간을 담기 위해 날씨와 빛의 조건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 장의 사진 뒤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여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책 속 사진들은 단순히 문화유산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라, 그가 문화유산과 오랜 시간 나눈 대화와 그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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