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엇으로 함께가 되어볼까 - 온 세상이 QW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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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에는 아무 영어 글자들을 붙여둔 줄로만 알았다. 그 다음에는 컴퓨터 자판을 보다가 왼쪽 최상단에 있는 네 개의 글자를 그저 함께 써둔 걸로 알았고. QWER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걸로 기억한다. 정말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나는 이번에 <온 세상이 QWER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QWER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룹명이 롤 공격스킨 이름이란 것, 바위게라는 팬명조차 롤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 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유행보다는 '취향'에 관심이 있는 한 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패션, 노래, 드라마 등 그 어떤 것의 흐름에도 타본 적이 없었다.
패션은 그저 내가 편한 것, 내가 좋아하는 색과 디자인인 옷을 입었다. 노래의 경우에는 새로운 노래를 접하면 3~5초 정도를 듣고 마음에 안들면 그대로 끄고 마음에 드는 노래만 무한반복해서 들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거나 좋아하는 노래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면 친구들이 나에게 그게 무슨 곡이냐고 되묻거나 정말 옛날 곡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노래방에 가면 항상 부르는 곡들이 있는데(물론 지금은 더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오래된 2곡을 꼽아 이야기해보자면 '총 맞은 것처럼'과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20대인 나에게는 옛날 곡일까. 그래서 나는 특정 가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노래 몇 개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한 곡 말고 여러 곡을 좋아하는 가수)를 꼽아보라면 악뮤와 이무진, 루시 정도일까? 드라마도 하나도 관심이 없다. 내가 본방을 챙겨본 드라마를 말해보라면 정말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경이로운 소문',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열혈사제 2(1은 아님)'만 내가 챙겨봤다. '선재 업고 튀어'도 '웰컴 투 삼달리'도 넷플릭스나 디즈니 등에서 하는 OTT들도 하나도 보지 않았다. 물론 쇼츠나 릴스로는 보기는 하지만.
그러다보니 나는 언제나 주변의 유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배우나 연예인, 아이돌들도 그렇다. 그냥 이름을 들어본 정도랄까.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뉴스나 인터넷에 계속해서 올라오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그룹 이름 정도는 자주 접했다. 하지만 배우나 연예인에 있어서는 심할 정도로 몰랐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임에도 다른 곳에서 발견했을 때 언제나 저 사람 누구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알더라도 '어 누구누구다.'가 아니라 '어 저 사람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사람인데. 그 무슨 그 역할로.' 정도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런닝맨이나 송중기, 현빈, 손예진, 공유, 이동욱, 김고은 등 정말 유명한 사람들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외국 배우들은 더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온 세상이 QWER이다>라는 책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 해당 책의 저자가 어떻게 QWER이란 그룹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떤 덕질 일기를 작성하였는지가 아니라 아이돌이나 사람을 덕질한다는 것 자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긴 어렵다. 아이돌이나 배우 등 사람을 덕질하지 않을 뿐 나도 좋아하는 애니나 캐릭터(도라에몽 등)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소설들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는다. 그러니 '덕질을 하는 것' 자체에 궁금증을 느꼈다기 보다는 아이돌을 좋아하고 덕질하면 어쩌다가 좋아하게 됬는지, 어떤 일이 있는지, 또 어떤 감정이 드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나는 현실의 인물을 덕질하지는 않다보니 계속해서 덕질할 요소가 나오거나 공연을 보러간다거나는 당연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QWER
QWER은 뿌까머리 무력 리더의 갭모에 '쵸단', 진정한 성장형 아이돌 '마젠타', 만찢녀 덕통령 '히나', 진심의 화신, 마지막 열혈 아이돌 '시요밍'으로 이루어져 있다.
운동 유투브 '김계란'이 모아 초단기 프로젝트로 시작한 성장형 걸밴드인 QWER의 시작부터 데뷔 1년 만에 음악방송 3관왕을 기록하기까지의 기록들이 적혀 있는 이 책은 나에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QWER은 물론 어떤 아이돌에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런 방향의 덕질에 있어서는 철저히 외부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온 세상이 QWER이다>를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내부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바위게(QWER 코어 팬덤)이 된 40대 아재의 QWER 덕질 일기를 읽게 되었고, 저자가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단한 용어 설명들을 중간중간 덧붙여서 적어준 덕분에 잘 모르는 분야임에도 술술 읽어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면 제대로 느끼지 못할 분위기나 티키타카와 같은 것들도 알 수 있었다.
덕질
덕질이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하거나 보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것이다. 어쩌면 돈까지도.
그게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누구를) 덕질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유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내는 사람은 잘 만나기 어렵다. 아이돌도, 노래도, 패션도, 음식도, 배우도, 드라마도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고 지금까지 어떤 OTT도 구독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유행을 따르고, 내 취향에 맞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했었다. 아무리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지만 나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 유행한 탕후루와 마라탕도 그렇다. 탕후루의 경우에는 친구의 것을 한 번 얻어 먹고 너무 달고 맛없어서 그 뒤로 다시는 먹지 않는다. 마라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노래? 축제나 콘서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대학교 축제도.
이런 편이다 보니 나에게는 유행을 잘 알고 소통하는 그런 '거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웠고, 한 발짝 물러나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살아왔지 싶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은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즐거울 수 있지만 또 반대로 '나의 취향'을 정확히 알거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내 취향과 내 적성, 내 기분 등을 모두 인지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도 화면 속의 캐릭터를 덕질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굿즈나 소품샵, 가챠 등이 응당 있지만 그에 많은 돈을 쓰고 있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덕질하는 마음이 적다기보다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덕질하는 모든 것들에 최애나 차애, 삼애 등이 없다는 것. 나는 모든 등장인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리 덕질하는 것의 굿즈고 상품이더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이 가격에 살 만한 것인지, 또 이걸 샀을 때 내가 잘 쓸 것인지, 그리고 이 상품에 있는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생각해본 뒤에야 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너가 아직 진정한 덕질을 하고 있지 않은 거라고. 정말로 좋아하게 된다면 그런 퀄리티나 가격을 떠나 굿즈라는 그 자체로 구매한다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굿즈를 잘 구매하지 않으면 진정한 덕질이라고 하기 어려울까? 꼭 그런 것들을 현실로 가지고 있어야 할까? (나는 보통 2차 창작물을 많이 보고 사진과 같은 것들로 소장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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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을 보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2021년에 <아무튼, 아이돌>을 출간한 윤혜은 작가가 책에서 덕후에 대해 적은 문장이 있다.
"사실 가까운 과거만 돌아봐도 덕후는 사회적 관계를 등한시하고 음지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처럼 비춰졌으나 오늘날엔 어떤 분야에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갖고 몰두하는 사람으로 통용되고 있어 덕후적 자부심이 차오르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무언가에 진심을 다하는 게 머쓱하고 어려우지는 가운데 덕후는 남녀노소를 막론, 언제고 순진해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구원할 것이므로 덕후로 사는 삶은 이로울 수밖에."
누구든지에 상관없이, 무언가에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갖고 순진무구해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덕후로서 덕질하는 것은 나를 구할 수 있게 하고, 삶이 이로워질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나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또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 현생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한다면 그보다 행복하게 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결국 현생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이 그 무엇을 덕질하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애정을 보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가 되고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길. 덕질이 현생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손수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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