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후덥지근했다. 자전거를 타기 썩 좋은 날씨는 아닌 것 같았다. 곧장 카페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피부는 언제 태우지? 자전거를 타며 나름 피부를 그을려 보겠다고 민소매를 입고 태닝로션까지 바르고 나왔는데. 그렇지만 너무 덥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냇가에 앉아 있자니, 며칠 내내 비가 내려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맘 편히 앉을 수 있는 양지 바른 돌도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인내력이 바닥나 도통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모르는 요즘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해 할 게 뻔했다. 한참을 망설이며 서성이던 중 바람이 불었다. 제법 시원했다. 결국 따릉이를 빌렸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웠다. 부모님은 수영이든 자전거든 하나뿐인 자식의 체육적인 능력을 육성하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당신들도 체육에 취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스물한살, 당시 사귀던 전남자친구와 한강 데이트를 갔을 때 처음 두발자전거를 타봤다. 평소 가르치려 들기 좋아했던 그 애가 자전거 타는 법을 쉽고 빠르게 가르친 덕분에, 나는 배운 지 30분만에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뻗어나가며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그 뒤로 한강공원에 가거나 시골 친척집에 갔을 때를 빼면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았다. 자전거에 올라타 도심을 누비는 이들이 부러웠지만, 겁이 많은 내게 사람들과 차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경사진 길을 빠르게 내달리는 일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회사 동료들과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운동 신경이 좋은 그들에게 자전거 타기란 걷거나 달리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신체 활동 능력이었다. 누군가 한강공원에서 사무실 근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다. 평지와 공원을 벗어나 자전거를 타본 적은 없었지만, 가장 어린 내가 마다할 수는 없었다.
결국 능숙하고 대수롭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료들의 뒤를 바짝 긴장한 채 느리게 따라갔다. 15분 남짓한 아주 짧은 라이딩이었지만 내게는 시간이 두배는 느리게 흘러간 것 같았다.
그리고 곧장 배탈이 났다. 안 그래도 점심으로 소화가 잘되지 않는 기름진 음식을 먹은 참이었다. 겁 많고 운동신경도 좋지 않은 내가 몇 년 만에 자전거를, 그것도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에서 처음 타다 보니 머리와 몸이 잔뜩 굳어버린 탓이었다. 덕분에 이미 낮 최고 온도 30도를 찍은 5월의 한낮에 핫팩으로 배를 덥혀야 했다. 동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이 일은 그 뒤로도 종종 동료들에게 회자되며 농담거리가 되었지만, 나는 꽤 부끄러웠다. 이 나이 먹고 자전거 하나 제대로 못 타는 게 너무 멋이 없어 보였다. 어른 여자라면 무릇 자전거쯤은 능숙하고 태연하게 탈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서 보문에 올 때마다 종종 따릉이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 보관소에서 성북천 자전거 도로까지 가는 길은 사람과 자동차 사이를 피해 다니는 연습을 하기 좋았다. 천변으로 들어서면 자전거 도로가 길게 나있어 조금은 마음을 놓고 달릴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형편없는 코어 근육 때문에 방심하면 앞바퀴와 핸들이 비틀거리고, 사람들이 둘만 지나가도 긴장이 되어 판단력이 흐려지곤 했지만, 계속 타다 보니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에 가기 전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 마침 날이 무더워 천변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성북천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비를 맞은 성북천은 초록으로 무성했다. 넝쿨, 풀, 숱이 많은 커다란 나무들.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군데군데 핀 이름 모를 꽃들과 다홍빛 능소화. 10초마다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는데, 그게 전부 잎과 풀과 꽃이어서 좋았다. 바람이 불고, 녹음은 짙고, 천은 졸졸 흘렀다.
이어폰을 연결해 지소쿠리클럽의 노래를 들었다. 지난 5월 페스티벌에서 본무대도 아닌 리허설 무대를 보고 반해버린 밴드였는데, 여름과 청춘에 더없이 어울리는 노래를 했다. 감미로운 음악까지 더해지니 너무나 완벽했다. 욕을 연발하며 슝슝 내달렸다. 젊음과 여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될 또 하나의 여름 속 장면을 오랜만에 만들었다. 나시를 입고, 노래를 들으며, 몸에는 태닝 로션을 바르고, 얼굴엔 썬크림을 바른 뒤 성북천을 자전거로 쏘다니는 것.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무성한 녹음을 눈으로 담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눈과 귀와 코와 피부로 여름을 느꼈다. 신경 쓸 사람 없이, 오직 내 감각 속에 자연스럽게 머무를 수 있었다. 너덜해졌던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또는 뭉친 근육이 마사지를 받은 뒤 말랑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터넷으로 본 사주풀이에서 나는 물이 필요해서 혼자 물가에 가서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운이 트인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그 뒤에 내 아지트와도 같은 카페에 들어왔다. 이 행복했던 순간을 놓칠 수 없어서 곧장 일기장을 폈다. 덥지 않을 정도로만 틀어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하고 녹녹한 초코 파운드 케이크를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asmr을 들으며 세 장을 내리 썼다. 한번에 쉬지 않고 이 정도로 쓴 것이 오랜만이었다. 근육 없는 팔이 들뜬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최근 PT를 했다고 근육이 생긴 건지. 어쩐지 허벅지도 아프지 않았다. 그래도 체력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운동은 내 삶을 이런 식으로 조금 더 낫게 해주나 보다. 좋은 순간을 더 오래 붙잡고 있게 해주는 체력을 주고. 그래서 즐거웠던, 행복했던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고 곱씹을 수 있게 하는 힘을 줘서 삶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들고. 거르지 말고 운동해야지. 어른 여자라면 또 일주일을 거뜬히 견뎌내는 체력이 있어야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