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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어른이 될 수 없었던 아이의 노래 - 뮤지컬 '팬텀' [공연]

전동석 배우의 뮤지컬 〈팬텀〉을 보고

by 윤하원 에디터
2025.07.01 14:44

 

 

팬텀 포스터.jpg

 

 

뮤지컬 〈팬텀〉을 보고 왔다. 지난 주말, 전동석 배우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급하게 티켓을 구했다. 2022년 〈프랑켄슈타인〉 이후 3년 만의 관람이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이 갈수록 오르는 데다 좋은 좌석을 예매하는 것도 어려워져서 한동안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무대와 가까운 자리를 정가에 양도받은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었다.


관람 전, 내가 뮤지컬 〈팬텀〉에 관해 아는 것은 대략적인 것뿐이었다. 세계적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원작을 공유하지만 세부 내용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팬텀의 대표 넘버 〈그 어디에〉와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 정도.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채로 감상한 〈팬텀〉은 생각보다 놀라웠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감상을 말하기 전에 간단하게 〈팬텀〉의 줄거리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극의 배경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다. 아름답고 화려한 파리의 오페라극장 지하에는 유령(phantom)으로 불리는 에릭이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흉측한 얼굴을 지닌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못하고, 평생을 오페라극장 지하에서 가면을 쓴 채 숨어 지내왔다. 어둡고 외로운 그의 삶의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다. 그가 오직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죽은 어머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할 ‘음악의 천사’다. 어느 날, 에릭이 그토록 바라던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크리스틴이 오페라극장에 나타난다. 크리스틴의 노랫소리를 들은 에릭은 단숨에 매료된다. 그는 크리스틴을 디바로 만들기 위해 노래를 가르치고, 덕분에 완벽하게 소리를 가다듬은 그녀는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데뷔한다. 그러나 마담 카를로타의 음모로 데뷔 무대는 엉망이 되고, 이에 분노한 에릭은 크리스틴을 지하로 데려간 뒤 카를로타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킨 에릭은 결국 경찰들에게 쫓겨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팬텀〉의 에릭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잔혹하고 공포스러운 유령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과 크리스틴의 무대를 망친 카를로타를 죽여버리는 잔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보다 연약하고 미숙한 아이 같은 내면이 강조되는 인물이다. 그의 내면은 불안정하다. 흉측한 외모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지하에 몰래 들어 사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되기에 불안감도 높다. 극장장이었던 카리에르 외에는 교류란 걸 해본 적 없어서 사회성도 한참 결여되어 있다.  에릭의 어리숙하고 감정적인 모습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극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그 어디에〉와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 넘버가 나오는 맥락이었다. 관람 전에는 두 넘버 모두 주인공이 절절한 사랑을 하던 도중 부르는 곡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어디에〉는 크리스틴이라는 존재를 알기도 전,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는 상상에 심취해 부르는 노래였고,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는 에릭과 크리스틴 사이에 묘한 기류는 흘렀지만 깊은 애정을 나누지도 않은 시점에, 크리스틴과 샹동 백작 사이에 호감이 싹트자 격하게 서글퍼하며 부르는 노래였다. 에릭의 특수한 성장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관객이 그에게 이입할 만한 맥락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1막에서 단순히 상황만 두고 보면 과하고 갑작스러운 감정선이었다. 그래서 팬텀을 연기하는 전동석 배우의 압도적인 성량과 웅장한 선율에 감동하는 한편, ‘저렇게까지 반응한다고?’ 싶은 생각에 속으로 실소했다.


두 넘버 뿐만 아니라 팬텀은 작품 전반에 걸쳐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 크리스틴이 마담 카를로타의 계략으로 데뷔 무대를 망친 대목이 특히 그런데, 크리스틴이 독약을 마시고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자 그는 냅다 샹들리에를 추락시킨 뒤 크리스틴과 함께 지하로 도망친다. 그녀를 세상의 추악한 시기와 질투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참혹하게 크리스틴을 짓밟은 자를 벌하겠다며 마담 카를로타를 죽이기에 이른다. 뮤지컬인 만큼 극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인 행동이다.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그의 내면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준다. 화려한 가면과 옷을 두른 채 음악의 황제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지만, 내면은 전혀 성숙하지 못한 여린 아이였던 것이다.


극이 진행되며 에릭의 모습이 익숙해질수록 당혹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커져갔다. 크리스틴은 에릭의 조언대로 비스트로에서 노래를 선보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축하하고 대화를 나누는 와중 에릭은 어두운 구석에서 멀뚱히 지켜만 본다. 모든 것이 에릭의 의도대로 흘러갔지만, 그의 모습은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강력한 배후라기보다는 무리에서 철저히 배제된 아웃사이더 같다. 기쁨과는 거리가 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연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하로 데려온 크리스틴과 피크닉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분명히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릭에게 완전히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그는 크리스틴에게 숲으로 피크닉을 가자고 제안하는데, 그가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숲은 버려진 무대 세트로 조악하게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에릭은 꾀꼬리도 있고 부엉이도 있다며 천진하게 웃으며 뛰어다닌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넣은 장면일 텐데, 그의 순진한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오면서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틴의 마음을 얻는답시고 고작 무대 세트를 자랑하는 모습에서, 어린 아이와 다름없는 그의 내면이 엿보였고, 또 지하에 홀로 숲을 만들면서 위안을 삼았을 그의 쓸쓸한 모습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비극적인 이야기 Reprise〉를 듣고 나서는 그를 향한 연민과 애틋한 감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에릭이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보고 크리스틴이 달아나자 절망하며 부르는 넘버인데, 그의 비극적인 삶이 가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증오뿐인 삶에 사랑을 깨닫게 했어 / 널 주신 신께 감사해 크리스틴 / 나는 너를 노래해 크리스틴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크리스틴 / 널 사랑하는 내 맘 용서받지 못할 걸 알아 크리스틴

하지만 너는 내 사랑 / 절대 빼앗길 수 없어

저주해 / 너를 사랑해 / 사랑해 널 저주해

 

 

그는 증오뿐인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고, 자신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마음이 용서받을 수 없는 걸 안다고 자조한다.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일까. 크리스틴이 깊은 상처를 남겼음에도, 고작 저주한다고 두 번 말하고는 내내 여전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예찬한다. 게다가 이후 크리스틴이 사과하자 그녀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너그럽게 용서한다.


전동석 배우에 대한 애정에 더해 애처로운 캐릭터성과 서사까지 합쳐지니, 에릭이라는 인물에 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에릭에 대한 애정은 극이 끝나고 난 뒤에 훨씬 커졌는데, 극에서 보여준 에릭의 말과 행동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되기까지 그가 살아왔을 지난한 삶을 헤아려볼수록 더욱 애달파졌기 때문이다. 과거 전동석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팬텀의 여러 감정이 더 깊게 들어와서 너무 슬펐다고 말한 것처럼, 〈팬텀〉 속 에릭은 극이 끝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마음에 남는 캐릭터였다.


음악의 천사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전동석 배우의 감미롭고 폭발적인 노래와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 팬텀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점만으로도 뮤지컬 〈팬텀〉을 보러 갈 이유는 충분하다.


여기에 〈팬텀〉의 상징과도 같은 샹들리에를 비롯한 다채로운 스펙터클과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넘버들이 극에 재미를 더한다. 1막이 끝날 무렵에는 천장의 샹들리에가 무대로 떨어지고, 2막에서는 연기가 가득한 무대 위에서 에릭이 배를 몰거나 마담 카를로타를 죽이기 위해 탑에 불꽃을 붙이는 장면 등 화려한 무대 장치와 연출을 볼 수 있다. 또한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극인 만큼,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작품을 연기하는 장면과 고난도 성악 기교를 선보이는 크리스틴 다에의 넘버도 감상할 수 있다. 에릭의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발레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온갖 예술적 요소를 한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즌 이후로 대대적인 변화를 거친다고 하니 한번 관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호소력 짙은 주인공과 넘버, 화려한 연출은 분명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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